[김동식의 문화읽기] 흥행대작의 빛과 그림자


영종대교를 타고 용유ㆍ무의 이정표를 따라가다 보면 잠진도 선착장에 닿는다. 이곳에서 배를 타고 약 10분만 가면 무의도에 도착하는데, 화제의 섬 실미도는 무의도를 거쳐서 들어가게 된다. 실미도는 배를 탈 필요 없이 걸어서 들어가는 섬이다. 무의도와 실미도 사이에는 하루 두 차례 3시간 가량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실미 모세길’이라고 불리는 바닷길을 5분 정도 걸으면 실미도에 다다르게 된다. 영화 <실미도>가 1,000만 관객을 불러모은 흥행 신화를 달성했다는 보도를 많이 접했기 때문일까. 몇 년 전에 다녀왔던 실미도의 풍경과 비릿한 갯내음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북파 공작원의 실화를 다룬 영화 <실미도>가 영화 관객 1,000만 명의 시대를 열었다. 인구 5,000만 명이 사는 나라에서 1,000만 명의 관객이 보았다는 것은 그야말로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실제적으로 관람이 가능한 관객을 대상으로 했을 때 대략 3명 가운데 1명이 영화를 보았다는 이야기니까, 가히 ‘실미도 현상’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개봉 후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극장을 찾았는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좋은 영화 또는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느낌을 갖지는 못했다. 매력적인 소재에 비하면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 버리기 어려웠다. 하지만 좋은 영화와 많이 본 영화가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별다른 생각 없이 영화관 앞에 몰려든 많은 사람들을 인상깊게 바라보았던 기억이다.

영화 실미도는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 왜 우리는 그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았을까. 북파 공작원이라는 소재에서 배어나는 역사적 호소력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영화는 1968년 4월 684부대의 설립에서 1971년 8월 무장군인들이 난동을 부린 대방동 사건에 이르기까지 북파 공작원의 실상을 담아내는 뚝심을 보여준다. 권력이 강요한 침묵의 사슬을 벗겨내고 정치적 금기에 정면으로 도전한 영화라는 점에서 관객들은 영화를 보기 이전부터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냉전체제와 분단상황 그리고 독재정권의 희생양이었던 실미도 대원들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 우리의 정치적ㆍ역사적 상황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기회를 갖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실미도 현상은 ‘냉전체제를 반추하는 문화적 제의(祭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실미도 현상은 오늘날 한국인들의 정치적 무의식을 보여주는 징후적인 사건이다. 영화는 타락한 권력집단에 의해서 이데올로기적으로 이용당하고 끝내 처절하게 죽어가는 실미도 대원들의 모습을 정치적ㆍ역사적 희생양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파 공작원들의 비극적인 운명에서 관객들이 보았던 것은 무엇일까. 1971년의 실미도 대원들이 국가 폭력의 희생양이었듯이, 2004년을 살아가는 관객들 역시 부패와 무능력으로 점철된 현실정치의 희생자라고 스스로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실생활에서 일반국민으로서 느끼고 있던 집단적인 피해의식이 실미도 대원들의 비극적인 운명을 통해서 객관화되는 기회를 얻었고 그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실미도>가 40대 이상의 중장년층을 극장으로 불러들여 꿈의 숫자라는 관객 1,000만명 시대를 열어놓은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실미도>의 화려함 너머로 드리워져 있는 어두운 그림자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영화를 만들고 홍보한 사람들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특정한 영화가 배급망을 장악하고 언론과 방송이 과도하게 홍보를 담당하고 많은 관객이 특정 영화에 집중되는 일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초특급 흥행대작이 나와서 영화판의 파이를 키우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다채로운 영화들이 다양한 취향을 가진 관객들의 사랑을 받는 여건이 조성될 때 문화적인 건강함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만을 질병으로 인식하는 사회적인 통념에 기대어 말하자면, 지나친 관객 쏠림 현상 역시 병리적인 징후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영화를 본 우리들이 거대 영화자본의 천진난만한 희생양이 아니었기를 바랄 따름이다.

영화는 자본의 예술이다. 하지만 자본이 영화의 질적 측면과 다양성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실미도>에 모여든 1,000만 명의 관객들이 또 다른 1,000만 영화를 만들어내는 일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200만 명이 보는 영화 5편을 만들어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입력시간 : 2004-02-26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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