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교제로 반추해 낸 구원과 용서자극적 소재를 종교적 의미와 화해로 그려낸 탄탄한 구성

[시네마 타운] 사마리아
원조교제로 반추해 낸 구원과 용서
자극적 소재를 종교적 의미와 화해로 그려낸 탄탄한 구성


작년에 개봉된 김기덕 감독의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이하 <봄여름>)은 그의 작품 세계에서 일종의 분수령 역할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 <사마리아>를 보면서 들었다. <봄여름>에서 중요하게 사용된 종교적(불교) 비유 혹은 사유는 <사마리아>에서도 반복된다. 가장 흥행에 성공했으면서도 가장 비판을 많이 받았던 전작 <나쁜 남자>의 두 번째 이야기라는 타이틀과 원조교제라는 자극적 소재가 종교적인 의미와 멀어보임에도 불구하고 <사마리아>에서 강조되는 것은 ‘구원과 용서’이다.

- 바수밀다: 창녀가 남성을 구원하고 정화시킨다

<사마리아>는 ‘바수밀다’ ‘사마리아’ ‘소나타’라는 소제목이 붙은 세 장으로 분리되어 있다. 첫번째 장의 ‘바수밀다’는 인도의 불교설화에 나오는 창녀의 이름이다. 유럽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원조교제를 하는 재영(서민정)은 여진(곽지민)에게 바수밀다와 잠자리를 함께한 남자들이 그 다음날 모두 독실한 불교신자가 됐다며 자신을 바수밀다로 불러달라고 요구한다. 여진은 재영을 대신해서 만날 남성들과 연락을 하고 재영이 마치고 나올 때까지 모텔 앞에서 그녀를 기다린다. 여진은 재영이 누구와 만나는지 상세하게 기록하고 재영이 준 돈을 모두 상자에 차곡차곡 넣어둔다. 재영은 자신과 섹스를 하는 남성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들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여진은 관계를 끝낸 재영의 몸을 닦아주며 그 남성들이 더럽고 재영의 몸에 아무나 손을 대는 것이 화가 난다고 말한다. 아무도 없는 목욕탕에서 서로 마주 앉아 목욕을 하며 대화를 나누는 두 소녀에게서 동성애를 발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보인다.

여진이 당돌하고 반항아적이라면 재영은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입가에 미소를 잃지않는 천사 같은 소녀다. 재영이 천사 같다는 점은 곧 재영이라는 인물이 비현실적이라는 얘기와 같다. 병원에서 재영이 겨우 의식이 들자 여진은 부모에게 연락할 수 있는 전화번호를 묻지만 재영은 연락처를 가르쳐주기보다 자신과 마지막으로 관계를 맺었던 남성을 만나고 싶다고 말한다. 원조교제를 위한 채팅과 전화를 할 때도 모두 여진이 대신 했던 것까지 상기해보면 재영의 존재는 여진과의 관계와 남성들과의 관계에서만 발견될 수 있을 뿐이다. 재영은 실재하는 인물이기 보다 일종의 관계를 의미하는 관념에 가깝다.

- 사마리아: 소녀의 구원과 아버지의 응징

‘사마리아’는 여진이 자신의 수첩에 기록한 남성들에게 순서대로 연락해 섹스를 하고 재영이 받았던 돈을 고스란히 돌려주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재영이 원조교제를 하는 장면은 모텔 밖에서만 보여지지만 여진이 관계를 하는 장면은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 모텔 방안에서 보여진다. 그리고 여진이 모텔 밖에서 “어디서 뭐하고 온 놈 들인지도 모르는” 혹은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라고 불렀던 남성들은 여진과 침대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각자 다른 성격이 있는 인간으로 보여진다.

형사인 여진의 아빠 영기(이얼)는 우연히 사건 현장에 갔다가 건너편 모텔에서 원조교제를 하고 있는 딸을 발견한다. 충격을 금하지 못한 아빠는 그 뒤로 주체할 수 없이 여진의 뒤만 밟는다. 하지만 여진을 나무라기보다 여진을 만나러 온 혹은 만나고 온 남성들에게 화를 내다가 결국 살인을 저지른다. 그리고 여진에게 엄마 산소에도 갈 겸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 소나타: 화해의 시간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드라마틱한 영화라면 ‘사마리아’편에서 끝이 나야겠지만, ‘소나타(음악적인 의미보다 자동차 브랜드에서 따온 것)’로 이름붙여진 마지막 파트는 예상보다 오래 지속되면서 내러티브의 긴장보다는 여유를 주고, 사유할 시간을 제공한다. 영기와 여진은 여행 중에도 여전히 대화보다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시간이 많지만 이들이 놓여진 공간은 원조교제나 복수, 살인 같은 단어가 떠오를 수 없는 평온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자연의 풍경이다. 여행 길에서 여진과 영기는 화해의 시간을 갖는다.

엄마 산소를 갔다 오는 산길에서 길가에 쌓여있는 돌덩어리들 때문에 영기는 차를 잠시 멈춘다. 내려서 몇 개를 치워도 차가 꼼짝하지 않자 영기는 포기한 듯 눈을 감는다. 그러자 여진은 차에서 내려 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모든 돌을 치워놓는다. 차는 쉽게 멈췄던 길을 빠져 나와 여진과 영기는 산으로 둘러 쌓인 작은 마을에 도착한다. 이 장면이 여진이 영기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의미라면 영기가 여진에게 운전을 가르쳐주는 장면은 그 역이다. 영기는 여진이 차 안에서 잠든 사이 강 기슭에 운전 연습용 T자와 S를 만들어 놓는다. 노란색 페인트가 칠해진 돌들로 만들어진 코스에서 여진은 운전 연습을 한다.

여진의 측면에서 <사마리아>는 성장의 아픔이나 재영을 잃은 슬픔에 대한 영화이기도하다. 재영의 죽음은 친구의 죽음 그 이상이었고, 유일하게 소통했던 사람을 잃은 것이었다. 여진은 재영과 관계를 맺었던 남자를 만나면서 재영의 흔적을 찾는다. 여진이 민박 집에서 머물면서 한 밤중 혼자 밖에 나와서 엉엉 우는 장면은 자신에게 벌어졌던 일들에 대한 혼란과 자괴심을 나타낸다. 운전을 하는 것이 무섭다고 말하지만 결국 여진 혼자서 차를 몰고 가는 장면은 위태로워 보이지만 스스로 헤쳐나가야 하는 미래를 예견한다.

일본 여고생의 원조교제를 다룬 <바운스>를 감독한 하라다 마사토는 원조교제의 원인으로 아버지의 부재나 아버지의 역할 부재를 꼽았다. <사마리아>에 등장하는 아버지들도 역할 문제에 대해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진과 원조교제를 한 아버지는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자살하고, 한 아버지는 도덕이 어쩌고 하지만 이런 게 행복이라며 자신을 두둔하고, 영기는 여진의 등교길 차 안에서 해외토픽에 나온 천주교의 기적만을 얘기한다.

김기덕 감독은 논쟁적인 원조교제를 등장시키면서도 선악의 판단과 자본의 해악, 윤리와 도덕을 벗어나 전혀 다른 맥락에서 진행되어야 할 것 같은 종교적 구원과 용서를 제시하고 있다. <사마리아>는 <나쁜 남자>의 두 번째 이야기가 아니라 <봄여름>을 잇는 김 감독의 종교영화시리즈 2탄이다.

시네마 단신
   

- 황석영 소설 <무기의 그늘> 영화화

베트남전을 소재로 한 황석영의 장편소설 <무기의 그늘>이 영화화된다. 싸이더스의 차승재 대표는 "지난해 9월 황석영씨와 구두로 합의한 데 이어 최근 판권료 5,000만원에 러닝개런티를 주기로 하고 정식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올해 말부터 베트남에서 현지인 스태프와 출연진이 참여한 가운데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 장서희, <귀신이 산다> 여주인공에 캐스팅

장서희가 김상진 감독의 <귀신이 산다> 여주인공 연화역에 캐스팅, 차승원과 호흡을 맞춘다. <귀신이 산다>는 차승원이 우연히 싼 집으로 이사를 오지만 그 집에 귀신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리는 로맨틱 코미디. 장서희가 귀신 역할이다.


입력시간 : 2004-03-03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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