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문화읽기] 4050세대의 문화향유


작년에 출간된 김우창 교수의 ‘풍경과 마음’을 읽고 있던 중에 핸드폰이 울렸다. ‘주간한국’ B 기자의 목소리였다. “요즘 들어서 40대 이상 중장년층의 문화향유 양상이 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영화 <실미도>가 1000만 관객의 신화를 달성하는 과정에서도 중장년층의 힘이 발휘되었고, 아바(ABBA)의 노래로 이루어진 뮤지컬 <맘마미아>도 40대 이상의 관객들로 성황을 이룬다고 하네요. 이러한 현상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다음 주 저희들 기획기사 주제거든요.”

같은 지면을 공유하다 보면 생각도 비슷해지는 것일까. 안 그래도 문화읽기의 주제로 중장년층의 문화향유를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속사정을 이야기하니까 전화기 저편으로부터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한국의 중장년층을 40대 이상이라는 연령을 기준으로 동질적인 세대로 묶어내기에는 곤란한 점이 많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전쟁 이후에 운명처럼 드리워졌던 경제적 빈곤을 몸으로 경험한 세대이고, 정치적인 억압을 견뎌내며 경제발전과 민주사회 건설을 위해서 노력했던 세대들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또한 1997년 IMF 구제금융 이후 급격하게 달라진 사회경제적 현실 속에서 정체성의 위기를 지속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문화적으로는 직장, 가사, 육아 등과 같은 생활의 문제 때문에 불가피하게 문화경험과 거리가 멀어지거나 제한적인 문화경험을 반복하는 양상을 보인다.

그 동안 중장년층은 자녀에 해당하는 젊은 세대의 문화경험을 뒷받침하는 경제적인 후원자로 여겨졌을 뿐, 문화적으로 동기화되지 않는 계층 또는 문화적 구매력이 약한 연령집단으로 생각되어 왔다. 영화 <실미도>와 <말죽거리 잔혹사> 그리고 뮤지컬 <맘마미아>에 대한 중장년층의 참여가 주목의 대상이 되는 이유도 이와 같은 사회적 통념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일반적인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보기에는 고려해야 할 점들이 많기는 하지만, 문화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긍정적인 움직임이라고 할 것이다.

<친구>의 800만에서 <실미도>의 1000만으로 넘어가는 데 있어서 중장년층 관객의 역할이 대단히 컸다는 사실, 그리고 작년부터 젊은 세대를 주요관객으로 설정했던 여러 영화들이 참담한 실패를 맛보았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장면이다.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10대와 20대를 대상으로 하는 문화시장의 외연이 확장될 대로 확장되어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고갈상태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징후적인 사건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0대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하는 문화시장은, 커질 대로 커진 파이가 이미 구워졌고 이제는 어떠한 비율로 나누어 먹을 것인가 하는 문제만 남은 상태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젊은 세대들의 문화적 소비패턴이 여전히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질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체감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은 어느 정도 분명해 보이며, 다만 이러한 상태가 일시적인 것인지 지속적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시간을 두고 지켜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시장의 잠재력이 체감단계에 들어서면 내부적인 경쟁은 치열해 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타개책은 외국시장을 개척하거나 국내의 미개척분야로 확장을 시도하는 것으로 집약된다. 한류(韓流)를 외국시장 개척의 대표적인 예라고 한다면, 중장년층을 문화적으로 호명(呼名)하는 방식은 국내시장을 내부적으로 확장하는 주요한 방법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젊은세대의 참여에다 중장년층의 호응을 결합할 수 있는 문화적 코드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코드가 있겠지만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복고 또는 향수(鄕愁)이다. 대표적인 예가 ‘광화문 연가’와 ‘꿈에’ 등과 같은 1970-80년대 노래들을 리메이크한 이수영의 앨범 ‘클래식’이다. 젊은 세대에게는 접하기 어려웠던 노래들을 새롭게 들려주고, 중장년층에게는 향수와 추억을 현재의 감수성으로 전달한다. 복고와 향수의 이름으로 다양한 세대가 지니고 있는 문화적 지평의 융합이 시도되고 있는 것이라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복고라고 해서 언제나 같은 복고일 수는 없다. 향유하는 문화주체에 따라서 복고의 의미는 다르게 나타난다. 지금까지의 복고는 인터넷의 매체통합적 성격에 근거한 젊은 세대들의 문화였고, 시간이 만들어준 자연스러운 패러디라는 성격을 지녔다. 하지만 중장년층에게 복고는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했던 실존적인 경험에 추를 드리운다. 복고는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했던 그 시절을 반추하는 일이며, 동시에 살면서 잊고 있었던 문화적 욕망을 새롭게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패러디로서의 복고가 아니라 문화경험으로서의 복고가 중장년층의 보다 광범한 문화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흥미롭게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김동식 문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4-03-04 16:27


김동식 문화평론가 tympa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