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꽃 향기에 취하고 봄의 신기루에 홀리네천지사방이 꽃 물결, 섬진강 물줄기 휘돌아 봄의 절정을 연다

[주말이 즐겁다] 섬진강 매화마을
매화꽃 향기에 취하고 봄의 신기루에 홀리네
천지사방이 꽃 물결, 섬진강 물줄기 휘돌아 봄의 절정을 연다


겨우내 얼었던 몸을 푸는 섬진강 기슭. 아직 흰 눈 덮인 지리산과 백운산이 맑은 강물에 말간 얼굴을 씻고 있다. 봄나들이 나온 산골 새색시처럼 소박하게 흐르는 섬진강은 따사로운 정감이 넘치는 강이다. 또한 강변의 모래 곱다고 해서 예전엔 다사강(多沙江) 등으로 불렸으니, 금모래 은모래 어우러진 강변 풍경은 더없이 한국적이다.

- 3월 중순이면 매화로 뒤덮이는 청매실농원

평생 섬진강 물줄기만 바라보고 시를 써온 김용택 시인은 “섬진강에 오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말했지만, 이런 봄날엔 더욱 그렇다. 벚나무들이 연분홍빛 봄꿈을 잉태한 강변길 지나 매화 만발한 강나루 휘돌아 오르면…. 아, 언덕을 온통 뒤덮은 저 꽃물결! 봄을 그리워하다 본 신기루가 아니다. 강바람에 매화꽃 향기 가득 실려있으니 여기가 바로 ‘무릉매원(武陵梅源)’이 아닌가.

매화는 한 겨울에도 피어나는 꽃이다. 그래서 옛 시인은 ‘오동나무는 천년을 늙어도 늘 가락을 지니고, 매화는 평생 춥고 배고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桐千年老恒藏曲 梅一生寒不賣香)’고 그 고결한 지조를 노래했는데, 섬진강의 봄을 화사하게 빛내는 이곳 매화는 오늘을 위해 그 향기를 간직하고 있었나 보다.

언덕길을 올라서면 무리 지어 피어난 매화꽃이 반긴다. 눈부시게 하얀 건 백매화다. 하얀꽃에 푸른 기운이 섞인 청매화도 손짓하는데, 복숭아꽃처럼 붉은 빛이 도는 홍매화 꽃봉오리도 어여쁘다. 이곳 매화는 한겨울엔 드문드문 피어나다가 해빙기에 조금씩 영역을 넓히기 시작한다. 그러다 봄볕이 쏟아지는 3월 중순쯤이면 산기슭의 10만여 그루에 달하는 매화나무가 다투어 꽃망울을 터뜨린다.

매화마을의 청매실농원은 매화나무 집단 재배를 전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곳으로 이름 높다. 일제시대인 1930년쯤 김오천선생이 심은 70여년생 수백 그루를 포함한 매화나무 단지가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잘 가꾸어져 있다. 지금은 국가지정 매실명인인 홍쌍리 여사가 이 ‘매화의 언덕’을 지키고 있다. 17세에 시집온 후 60세가 넘은 지금까지 매화사랑, 매실사랑으로 살아온 홍씨가 매화에 파묻혀 일생을 보낸 이야기는 꽃보다 아름답다.

청매실농원 언덕에서 매화꽃 사이로 내려다보는 섬진강 풍경은 꽃과 산과 강이 한데 어우러져 멋들어진 풍경화가 된다. 농원 뒤편의 대숲 길도 제법 운치가 있다. 또 매실 식품을 만드는 데 쓰이는 2,000여 기의 전통 항아리도 맑은 강물과 어울려 고향의 봄 풍경을 그려낸다.


숙식 섬진강의 명물인 재첩은 바다와 강물이 만나는 곳에 사는 민물조개. 예전엔 낙동강 하류의 김해와 부산 같은 데서도 많이 잡혔지만 지금은 거의 멸종되다시피 했고 이곳 섬진강에서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재첩국은 국물맛이 매우 담백하면서도 시원해 좋다. 동흥재첩식당(055-884-2257) 등이 잘 한다. 청매실농원(061-772-4066)과 주변의 매화마을에서 민박이 가능하지만 방이 넉넉한 편은 아니다. 하동쪽 섬진강변에 숙박업소가 많다.

교통 경부고속도로→대전 통영간 고속도로→함양→88고속도로(지리산방향)→남원IC→3km→19번 국도→구례→하동→섬진교→매화마을. 서울에서 5시간 소요. 또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진월IC나 옥곡IC로 나와 2번 국도를 타고 하동방향으로 20여분 달리면 매화마을이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는 이 길을 따라 거니는 사람들은 행복한 미소로 가득하다. 연인들의 사랑은 깊어지고, 아이 손을 잡고 봄나들이 나오 가족의 미소, 은근한 미소로 옛 추억을 그리는 노부부…. 이런 풍경 덕인지 영화 ‘흑수선’에서 이미연이 자전거를 타고 매화나무 사이를 지나가는 장면을 비롯해 영화 ‘취화선’, 드라마 ‘다모’ 등 많은 영화와 드라마도 이곳을 그냥 지나치진 않았다.

- 3월13~21일에 매화축제 열려

매화꽃 축제는 섬진강 매화가 절정을 이루는 매년 3월 중순쯤 매화마을 일원에서 열린다. 올 매화의 절정은 3월 14일(일) 전후로 예상되는데, 축제는 13일(토)부터 21일(일)까지 9일간 매화마을과 섬진강 시민체육공원에서 열린다. 이 때엔 매화마을 청매실농원에서 매실발효농축액, 매실정과, 매실고추장아찌, 매실김치, 매실절임 등을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축제기간 주말에 이곳을 찾았던 적이 있었던 사람들은 교통체증 때문에 고생한 생각에 고개를 가로 젓는다. 번잡한 게 싫다면 축제 바로 직전이나 주중에 찾는 게 좋고, 축제 기간의 주말에 매화 구경을 하려면 아침 일찍 서둘러 다녀가는 게 좋다는 게 경험자들의 전언. 특히 아침 일찍 들르면 섬진강의 하얀 안개에 휘감긴 매화 언덕길을 천천히 음미하며 거닐 수 있어 더없이 좋다.

3월에 만개한 매화가 지고 나면 5월 말쯤부터 매실이 여물기 시작한다. 매실 수확철인 6월의 청매실농원도 가볼 만하다. 이때는 매실농원에서 매실 따는 일을 체험하고, 품삯대신 적당량을 공짜로 가져 올 수도 있다. 자세한 것은 광양매화축제 홈페이지(www.maewha21.co.kr)나 청매실농원 홈페이지(www.maesil.co.kr)를 참조하거나 광양시 문화홍보실(061-797-3363)에 문의.

민병준 여행작가


입력시간 : 2004-03-11 17:44


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