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에 고개 든 분홍빛 자태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앵초
봄볕에 고개 든 분홍빛 자태

고운 봄 꽃 하면 떠오르는 식물 중에는 언제나 앵초가 들어 있다. 특별한 분홍빛 꽃잎을 하고서도 튀지 않고, 작은 포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무리지어 마음을 잡고, 축축하고 좋은 숲에 햇살을 자라는 자연스러움이 언제나 깨끗하고 신선하다.

앵초는 앵초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너무 귀하여 보기 어렵지도, 그렇다고 너무 흔해서 식상하지도 않을 만큼, 봄이면 이 땅의 산과 들에서 만나게 되는 앵초는 계곡이나 냇가 옆에 무리지어 피곤 한다. 항상 물과 가까이 자라지만 막상 앵초가 자라는 토양은 그리 습하지 않으며 밝은 곳이다.

한 포기를 그대로 분에 옮겨 놓아도 균형잡인 완전한 모습을 보이는 앵초는 잔주름이 잡힌 듯한 길쭉한 잎새가 땅에서부터 몇 장 자라나고 그 사이로 한 뼘쯤 되는 꽃대가 올라온다. 잎과 꽃대는 연한 녹색으로 작은 솜털이 보송하여 바라보기에 아주 포근하다. 둔한 톱니를 가장자리에 가지는 이 주름 있는 잎새를 보고 어린 배추잎처럼 생겼다고 한 누군가의 표현을 듣고 아주 동감한 기억이 있다.

꽃은 이 꽃대 끝에 적게는 7개에서 많은 것은 스무개씩 한 자리에 모여 사방으로 달리므로 아주 예쁘다. 너무 진하지도 연하지도 않은 적절히 고운 분홍빛 꽃송이들은 끝이 다섯 갈래의 꽃잎으로 갈라지고 다시 한장 한장의 꽃잎마다 가운데가 오목한 통꽃이어서 봄의 요정이 불다 버린 나팔과 같다. 이렇게 꽃까지 피어 있는 한 포기의 앵초를 바라 보노라면 세상 모든 근심을 잊을 수 있을 듯도 하다.

우리나라에는 앵초의 종류가 몇 가지 있는데 하나 같이 다 특색이 있다. 우선 키도 좀더 크고 잎이 단풍잎을 닮았으며 꽃빛도 진분홍인 것은 큰앵초이고, 가야산이나 한라산 같은 일부 고산지대에 가면 바위 겉에 붙어 자라는 작은 앵초가 있는데 설앵초이다. 또 드물기는 하지만 앵초 가운데서도 흰색의 꽃이 피는 흰앵초도 있다.

앵초란 이름은 한자로 앵초(櫻草)라고 쓰는 것을 보면 분홍색 꽃의 모양이 앵두꽃을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이밖에 풍륜초, 또는 취란화 등으로 부른다. 서양사람들은 앵초를 가지고 수많은 원예품종을 만들어 심고 있다. 앵초류만 모아 한 권의 책이 될 만큼 다양하다. 그만큼 앵초(서양앵초)를 아주 좋아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가 꽃시장에 가면 프리뮬라라고 팔고 더러는 화단에 심어 키우기도 하는 색색의 꽃들이 다 이런 서양의 앵초 원예품종들이다.

앵초는 뿌리를 포함한 식물 전체를 약으로 쓴다. 진해, 거담, 소종 등에 효과가 있어 기침, 천식, 기관지염, 종기 등에 처방한다. 이른 봄에 어린 싹은 살짝 데쳐 나물로 무쳐먹기도 한다.

그러나 역시 앵초의 가장 중요한 용도는 관상용이다. 원예시장에 가보면 앵초속을 통칭하는 프리뮬라(Primula)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원예품종들이 가지가지 모양과 색으로 개발되어 사랑을 받아왔다. 세계적으로 이러한 종류가 500종류 이상이며 특히 중국이나 유럽의 것들이 많이 개발되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어느 정도 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한국적인 눈에는 우리의 앵초처럼 새색시의 수줍고도 고운 자태를 가진 것은 흔치 않은 듯 싶으니 팔이 안으로 굽어서인가?

앵초의 꽃말은 행운 혹은 젊은 날의 슬픔이다. 아닌 게 아니라 봄날 앵초의 무리를 만나 그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길 수 있다면 이는 분명 행운이니라.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입력시간 : 2004-03-18 15:40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