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에게 던지는 질문 '이념 그리고 관계'비전향 장기수의 삶 다룬 독립영화

[시네마 타운] 송환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 '이념 그리고 관계'
비전향 장기수의 삶 다룬 독립영화


80년대 민주화 운동이 활발히 진행될 때 문화운동은 노래운동, 민중미술운동, 영화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일어났다. 그 중 영화운동은 대중 상업 영화에 저항, 민족 영화 혹은 민중 영화 구축을 목표로 광주항쟁, 노동계급, 혹은 소외 계층 문제를 다뤘다. 박광수, 장선우, 김홍준, 장윤현, 박종원, 이은 등 현재 주류 영화계의 중심에 있는 감독들은 그 시대에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바꿔보려던 꿈을 가졌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90년대 동구권의 몰락이 있었고,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의 예찬속에 80년대는 과거로서 드문드문 기억되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박광수, 1995),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이현승, 1995), <꽃잎>(장선우,1996) 등이 있었지만, 밀레니엄이 바뀌면서 80년대는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는 듯 했다.

남북 분단의 비극이라는 현실에서 출발, 픽션의 형태로 만들어진 주류 대작 영화들은 <쉬리>(강제규, 1998)와 <공동경비구역JSA>(박찬욱, 2000)의 흥행 성공을 거쳐 현재 <실미도>와 <태극기를 휘날리며>로 상업적인 장르로 자리잡았지만, 모두 분단이 가져온 비극의 형태를 재현하고 있을 뿐 그 원인과 해결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대중적 영화의 한계를 드러내왔다. 무엇보다 분단에서 비롯된 한반도의 복잡한 현실적 문제보다는 사랑, 우정, 동지애, 형제애 등 보편적인 정서에 호소하는 비정치적인 혹은 탈정치적인 성향이 두드러졌다.

<송환>은 이런 일련의 주류 상업영화의 대안인 독립 다큐멘타리다. 앞서 언급한 감독들이 모두 주류 영화계로 편입이 됐지만, 유일하게 80년대의 사회 비판 의식과 소외된 계층에 대한 시선을 멈추지 않고 있는 김동원 감독은 촬영 시작부터 개봉까지 12년이 소요된 비전향 장기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감독 자신의 보이스오버 나래이션이 자신의 개인적인 과거와 현재를 얘기하기도 하고, 장기수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를 설명해주기도 하고 그들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진솔하게 털어놓기도 한다.

- 촬영에서 개봉까지 12년의 세월

1992년 3월 7일 천주교 신자인 김 감독은 신부님의 요청으로 요양원에서 출소된 뒤 갈 곳이 없었던 비전향 장기수 조창손 김석형을 만나게 된다. 우연히 시작된 만남과 영화를 만들 것이라는 목적도 없이 촬영을 시작, 이들과 이들 주변의 비전향 혹은 전향 장기수들의 삶과 생각을 따라 긴 시간을 기록한다. 총 500개가 넘는 테이프는 800시간이 넘게 촬영이 됐고, 늘어나는 테이프 수만큼 정치와 남북간 정책이 변화를 거듭하지만 국가보안법만은 변하지 않는다. 마침내 2000년 9월 63명의 비전향 장기수가 북으로 송환되기까지의 여정은 감독을 눈을 통해서, 그리고 할아버지들의 귀향 일 년 후 북에서의 삶은 북의 자료 화면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방북이 불허된 감독 대신 평양을 방문한 감독의 지인에 의해 덧붙여 졌다.

<송환>은 간첩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에다 옆집 할아버지 같은 친근함으로, 한편으로는 공산주의에 대한 철저한 사상과 적대적 반미 감정을 갖고 있는 할아버지들에게 벽을 느끼는 감독의 시점을 따라간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할아버지들도 이웃이나 친구로 정을 쌓아가고 감독을 아들처럼 생각하고 카메라에 익숙해진다. 149분의 영화에는 영화에 등장하는 장기수들의 감옥 생활에 대한 폭로, 현재의 생활,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눈물과 웃음이 함께 한다. 그렇다고 <송환>은 휴머니즘이란 이름으로 모든 정치적 문제를 용해시키지는 않는다.

처음 장기수를 만나 봉천동에서 함께 살게 되는 이야기에는 이 동네가 서울에서 이들이 지내기에 가장 적절한 곳이라는 말과 더불어 산동네의 공동체 정신을 보여준다. 여기에 포함되는 이미지에는 집에서 열리는 공연이나 학교 운동장에서 행복한 얼굴로 강강수월래를 하고 있는 장면들이다. 봉사와 협동,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동네 사람들과 할아버지들의 일상 생활은 대안적 삶을 위한 일상의 정치학을 엿보게 해준다.

- 비주류영화는 한국영화의 자양분

또한 비전향 장기수의 문제가 북송 포로 송환과 대립, 한 쪽에서라도 인도적인 행동을 취할 것인가 혹은 교환 법칙을 주장할 것인가의 쟁점을 고민하게 만든다. 감독은 북한 체제에 대한 믿음을 30년 이상 감옥에서 지켜온 이들이 북송 포로의 송환을 주장하는 남쪽의 가족들에게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장면과 이들을 빨갱이로 지칭하며 송환을 저지하려는 碩오?팽팽하게 대립시켜 관객의 정치적 입장과 태도에 대해 질문하게 만든다. 장기수의 역사와 현대 정치사를 이어오며 이들에게 의문을 가졌던 출발점은 장기수의 송환이 이루어질 것인가의 드라마를 지나 송환이라는 클라이맥스를 맞는다. 하지만 송환된 이들이 자유롭게 다시 남쪽으로 여행을 다닐 수 있어야 된다는 통일에 대한 의지와 전향 장기수의 송환이라는 문제 제기로 끝보다 다른 시작을 알린다.

영화학자 데이비드 제임스 교수는 “영화란 결코 메시지나 미학적 이벤트가 아니라 사람과 계급간의 중첩된 관계가 일어나는 영역”이라고 말한다. 그보다 더 이전에 프랑스 철학자이자 감독이기도 했던 기 드보르는 “영화는 이미지의 수집이 아니라 이미지에 의해 매개된 사람들 간의 사회적 관계”라고 주장했다. 이 두 학자들의 영화에 대한 정의는 <송환>에 너무도 적절해 보인다.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감독과 장기수들의 관계는 곧 정치적 사회적 관계이고, 관객은 이미지의 매개를 통해 우리와 그들의 삶이 어떻게 한반도와 미국의 정치적 관계와 갈등과 중첩되어 있는지, 문화적 동질감과 정치적 이질감의 모순이 발생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통일이 의미하는 것은 어떤 어려움을 내포하고 있는지 등의 중요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상품과 산업으로 거대해지고 있는 현재 한국영화가 진정한 자양분을 섭취할 수 있는 이런 작품은 너무도 중요하다. 강제규 감독이 <송환>의 프린트 제작비를 후원했다는 얘기도 주류 영화와 독립영화가 경쟁과 지지 관계를 반복해야 전체 영화 산업이 건실해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무척 고무적이다. 자막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운드의 불규칙함과 거칠게 보이는 화면과 편집은 김 감독과 푸른 영상, 그리고 독립 영화계의 험한 상황을 느끼게 해준다는 측면에서 다큐멘타리의 진실성을 돋보이게 만든다.

시네마 단신
   
- 미국판 <올드보이> 나온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의 해외 마케팅을 담당하는 씨네클릭 아시아는 9일 “최근 폐막한 아메리칸 필름 마켓(AFM)에서 <올드보이>의 리메이크 판권 판매 계약을 미국의 유니버셜 픽쳐스와 체결했다”고 밝혔다. 씨네클릭 아시아는 주연 배우에 조니 뎁과 브래드 피트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고 유니버셜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입력시간 : 2004-03-18 20:51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