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읽기] 콩가루 정치권에 대한 단상


‘사랑을 팔고 사는 꽃바람 속에 / 너만은 지키려나 순정의 등불 / 홍도야 우지 마라 오빠가 있다 / 아내의 나갈 길을 너는 지켜라.’

널리 알려진 노래 ‘홍도야 우지 마라’의 1절 가사이다. 이 노래는 연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의 주제곡이기도 하다. 오빠의 학비를 벌기 위해 기생이 된 홍도가 정절을 지키며 참사랑을 만나 결혼하지만, 시어머니의 모진 구박에 시달리고 남편의 예전 약혼녀의 음모에 휘말려 결국에는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경찰이 된 오빠 철수의 손에 끌려가게 된다는 내용의 신파연극이다. 냉혹한 현실과 도덕적 순수함 사이에서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 오누이의 모습을 보며 꽤나 많은 사람들이 손수건을 적셨다고 한다. 이상하게도 요즘 들어서 이 노래가 입에서 맴돌곤 한다. 아무래도 김영하의 소설집 ‘오빠가 돌아왔다’ 때문인 것 같다.

김영하는 문단의 어른들에서부터 문학을 좋아하는 학생들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는 젊은 이야기꾼이다. 일상의 사소한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감수성,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특한 구성방식, 유머와 풍자를 자유롭게 뒤섞으며 삶의 아이러니를 펼쳐 보이는 전복적인 상상력 등은 이미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지 오래다. 이번 소설집에서는 작품 외적인 측면에서 두 가지의 새로운 시도를 선보였다. 몇몇 인터넷 서점을 통해서 예약판매를 했고, 만화가 이우일의 일러스트를 본문에 배치했다. 일반독자들이 소설에서 떠올리게 마련인 그 어떤 둔중한 이미지를 덜어내고, 소설이란 유혹하는 글쓰기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을 듯하다.

표제작 ‘오빠가 돌아왔다’는 어느 콩가루 집안의 이야기이다. 핵분열을 일으킨 핵가족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작중화자는 14살 된 여자아이 경선이다. 아빠는 술주정뱅이에 전문고발꾼이고, 엄마는 아빠와 이혼하고 함바집에서 식당을 하며, 오빠는 집을 나가 몇 년째 가출 중이다. 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돌아왔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얻어터지기만 했던 오빠는, 16살 때 처음으로 아버지를 때려눕히고 집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4년 만에 17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애를 끼고 집에 나타났다. 아버지와의 영역 다툼에서 승리한 오빠는 집안을 장악했고, 오빠의 천적인 엄마는 며느리를 보았다며 집으로 다시 들어오게 된다. 핵분열의 끝에 이르러 핵융합이 시도되는 것일까. 그때부터 가족 재건 사업이 시작된다. 난생 처음으로 가족 야유회를 가고, 스티커 사진이기는 하지만 가족사진도 찍는다. 그리고 경선은 동네 슈퍼 아줌마에게서 고양이를 얻어 키울 생각에 가슴이 부푼다.

오빠란 어떤 존재인가. 개별적인 인물로서의 오빠가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기호(記號)로서 오빠에 잠시 주목해 보는 것은 어떨까. 오빠는 가족 내부의 관계를 지칭하는 친족의 명칭이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제시하는 삼각형의 한 꼭지점에 위치한다. 사회의 계몽이나 가족의 변화와 관련될 때, 오빠는 아버지의 시대를 전(前)근대로 규정하는 힘이며, 시대의 가능성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청춘의 건강함을 상징한다. 반면에 가족관계 바깥에서 오빠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연애의 대상이 되는 남자를 지칭한다. 기생오라비라는 말이나 오빠가 아빠 된다는 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오빠는 연애의 주체이자 대상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반면에 단편 ‘오빠가 돌아왔다’에서 오빠는 무질서와 가치혼돈을 상징한다. 오빠는 선량(善良)과 불량(不良), 건강함과 건방짐을 정신없이 넘나든다. 아버지와 육박전을 벌이고 어린 여자애와 동거하는 오빠는, 그 자체로 무질서이자 가치혼돈이다. 그는 집에 돌아와서 가족을 통합하는 어떠한 일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오빠의 혼란스러운 성격이 가족 내부의 관계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는 힘으로 작용한다. 오빠라는 무질서에게 적당한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라도, 그 동안 분열상태에 있었던 가족은 융합의 지점으로 움직여나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가족은 무질서를 끌어안으려는 노력 속에서 하나의 질서로서 새롭게 태어난다. 아마 사회도 그러할 것이다. 어느 되바라진 소녀의 눈에 비친 콩가루 집안의 이야기에서, 사회적 통합에 대한 작은 희망과 가능성을 절박한 심정으로 엿본다.

김동식 문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4-03-18 21:41


김동식 문화평론가 tympa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