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뺨치는 아이들의 세계엉뚱하고 영악한 아이들의 모습, 로맨틱코미디 공식 답습

[시네마 타운] 아홉살 인생
어른 뺨치는 아이들의 세계
엉뚱하고 영악한 아이들의 모습, 로맨틱코미디 공식 답습


1970년대에 경상도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던 사람이 <아홉살 인생>을 보며 느끼는 향수와 70년대에 양재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던 사람이 <말죽거리 잔혹사>를 보며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얼마나 유사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아홉살 인생>을 보면서 들었다. 단지 폭력 교사로 등장하는 배우가 같은 사람이어서 혹은 시대가 같아서 그런 생각이 든 건 아니다. 그건 전자가 사투리를 쓰고, 지역적 배경이 다르고, 나이가 다르다는 점을 제외하고 학교는 억압적이고 폭력적이며, 부모는 자식의 교육에 대해 규율적인 방침을 갖고 있고, 남학생들은 폭력의 위계 질서에 순응적이고, 남학생과 여학생은 사랑에 빠진다는 모든 이야기와 에피소드가 유사하고 심지어, 이들의 대화는 <친구>를 비롯한 사투리 영화의 어른들 대사와 그다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 위기에 빠진 9살의 우정

이 영화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장치들은 9살의 천진난만하고 순수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아이들의 세계가 어른들의 로맨틱 코미디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삼각관계에서 발생되는 오해와 질투의 과정에서 너무도 성숙한 아이들의 태도와 언사에 폭소를 터트렸다면, 나이를 감안할 때 지나치게 폭력적인 교실의 체벌 과정에서 향수가 아닌 트라우마의 환생을 경험해야 하고, 어머니와 아들의 나이를 떠난 눈물겨운 애정에 눈시울이 뜨거워질 수도 있다.

<아홉살 인생>은 순수하고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어른들이 정화되기를 바라는 영화는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훈육의 대상이 되어야 된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어른과 같이 혹은 어른이 되어서도 겪게 되는 유사한 감정을 아이들도 경험한다는 것이고, 아이들은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을 어리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 못지않게 너무도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제목도 인생이라는 성숙한 용어가 포함되어 있다.

영화는 여러 명의 조연들이 포진해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을 생생하게 표현해내지만 무엇보다 중심축으로 등장하는 것은 사~나이 백여민(김석)과 새침떼기 공주 장우림(이세영), 그리고 여민을 친구 이상으로 여기고 있는 오금복(나아현)의 삼각관계다. 우림이 어느 날 서울에서 전학 오기 전까지 여민과 금복, 그리고 신기종(김명재)은 삼총사로 사이 좋게 지냈지만, 우림의 등장은 이들의 우정을 위기에 빠트린다. 바가지 머리와 맨발의 아이들에게 하얀 원피스와 하얀 레이스 양말을 신고 긴 머리에 헤어 밴드를 한 공주 같은 우림의 등장은 충격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여민 마저 우림에게 눈길을 주자 여학생들은 우림편과 금복편으로 나뉘어 말다툼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아홉살 인생>은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너무도 철저히 따르고 있어 후반으로 갈수록 여민과 우림의 러브 스토리가 너무도 진부해진다. 여민은 가난하지만 모든 면에서 완벽한 남성이고, 우림은 부자이고 외모가 예쁘기는 하지만 성격이 너무나 문제가 있어 본인의 별명이 종녀(종잡을 수 없는 여자)라는 점에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여민과 우림의 관계 또한 여민이 우림에게 끊임없이 따뜻함과 아량을 베푸는 것으로 지속되고, 우림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여민은 영웅처럼 등장해 그녀를 구해준다. 그런 과정에서 우림은 여민이 선생님께 꾸중을 듣도록 원인을 제공하지만 점차 여민과 반친구들에게 마음을 연다.

여민은 여러모로 <엽기적인 그녀>의 여주인공(전지현)을 연상시킨다. 그것은 특히 우림이 그토록 많은 거짓말과 성질을 부렸던 이유가 아버지의 죽음에 있으며, 痢꼬“?여민은 포용적인 남성이라는 아버지의 대체적 존재가 된다. 게다가 우림은 마지막 여민에게 선물과 함께 편지를 남기면서 여민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엄마이고 자신은 두 번째라는 걸 알았지만 기분 나쁘지 않다라고 말한다. 여민과 우림, 금복의 관계가 어른들의 삼각관계, 예쁘고 부자인 여성과 가난하지만 헌신적인 남성과의 연애와 다를 바 없기에 여민과 우림은 가부장적 질서까지도 그대로 답습한다.

- 과거에 대한 향수, 진부한 러브스토리

<아홉살 인생>에는 또한 미국에 대한 환상과 민족주의 담론이 아이들의 세력 관계를 통해 드러나 있다. 우림이 자신이 미국에서 살다 왔으며 자신의 모든 학용품과 옷이 모두 미국에서 아빠가 부쳐준 것이라고 자浩?때 무리의 여자 아이들은 우림을 부러워하고 미국과 미제 상품을 동경한다. 반면 우림이 여민을 빼앗았다고 생각하는 금복은 우림을 믿지 않고 그것이 사실인지를 밝혀내기 위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청소 시간 금복이 우림의 스타킹 바닥에 말표양말이라는 글씨를 발견하고 우림을 추궁하자 우림은 한국에서 만들어 미국에 수출해서 거기서 팔고 사기 때문에 미제라고 우긴다.

이들의 논쟁은 한국에서 태어난 아기가 미국에 입양되어 살면 미국 사람이 되는지 한국 사람이 되는지, 그리고 미국과 한국을 여행하거나 오가는 경우에 개인의 정체성은 계속 유지가 되는지 혹은 거주하는 장소에 따라 국적을 따르게 되는지에 대한 문제다. 금복은 자신이 어디에 있든지 자신은 오.금.복.이라며 거주지를 바꾼다고 해서 뿌리는 변하지 않는다는 민족주의적 태도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림에게 우호적이든 그렇지 않든 모두 우림이 표상하는 자본주의적 가치에 매료된다.

70년대를 회상하는 영화들에서 과거를 추억하는 즐거운 향수가 발견되기도 하지만, 시대를 지배했던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체제와 가부장적 질서가 학교라는 사회 집단을 통해 묘사되는 것은 당연하다. <아홉살 인생>이 아이들을 다룬다고 해서 이들의 이야기는 70년대의 그런 사회적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것은 이 작품이 주인공의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제외하고 학교가 등장하는 다른 향수 영화들과 어떤 차이점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아이들의 엉뚱하고 야무지고 영악한 모습이 어른들 세계와 다른 점이 없다는 것이 반복될수록 영화는 신선함에서 멀어진다.

시네마 단신
   
- 한국영화 휘날릴 일본

<실미도>와 <태극기를 휘날리며>가 6월에 일본에서 개봉한다. <실미도>는 일본의 아뮤즈사와 미니멈 개런티 300만 달러에 흥행 수익을 절반씩 나누는 조건으로 6월5일 개봉한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6월 25일을 디데이로 잡았다. 두 영화 모두 일본에서 개봉되는 할리우드 영화에 버금가는 300여개 이상의 스크린을 확보할 것으로 알려졌다.

-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 상영

문화학교 서울은 27일부터 12일간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 위치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를 모아 상영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이번 상영회에는 비평가 겸 영화 감독인 장 엡스탱을 비롯해 아방가르드의 미학을 시적 리얼리즘의 화면으로 만들어낸 요절 감독 장 비고와 시인이며 영화 감독인 장 콕토 등 프랑스 출신의 감독 세 명의 작품 18편이 상영된다.

채윤정 영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4-03-25 13:59


채윤정 영화평론가 blauth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