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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의 문화읽기] 추억으로 남을 뒷골목


서울은 이질적인 시간과 공간이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되는 거대한 콜라쥬이다. 대우빌딩에 가려져 있는 후암동의 적산가옥들, 외국의 애비뉴(avenue)를 옮겨놓은 것 같은 청담동 거리, 청년문화와 노인문화가 공존하는 종로, 문화와 소비가 역동적으로 뒤섞이는 신촌과 홍대, 악보(樂譜)화된 유행이 흘러가는 거리이자 무대인 압구정동, 학원문화와 소비문화가 세련된 방식으로 만나는 강남역, 도심 속의 인공낙원 롯데월드와 거대한 지하광장 코엑스몰 등등. 도저히 하나의 이미지로 통합될 수 없는 시공간들이 서울에서 동시에 공존한다. 서울은 자신의 역사성을 공간 위에 펼쳐놓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울은 불연속적인 역사를 가진 도시이기도 하다. 조선 건국 이래로 6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도(古都)인 동시에, 한국전쟁 이후 50년 만에 만들어진 메갈로폴리스이기 때문이다. 궁궐과 성문(城門)을 전통적인 도시의 흔적이라 한다면, 근대적 도시로서의 서울을 상징하는 건축물은 타워와 빌딩이다. 지금은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삼일빌딩(1970)과 남산타워(1975)는 서울이 급격한 도시화를 통해서 메트로폴리스의 반열에 올랐음을 알리는 기념비였다. 초거대도시가 된 지금도 서울의 랜드마크(landmark)는 여전히 타워와 빌딩이다. 강북에는 종로타워가 새롭게 자리를 잡았고, 여의도의 63빌딩은 한강물 위에 금빛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으며, 강남의 타워 팰리스는 세속화된 도시에서 자본의 성스러운 가치를 한껏 드러내 보인다.

서울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어쩌면 사람보다 공간이 더 빨리 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울의 이러한 역동성은, 스텝 프린팅 기법이 적용된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스텝 프린팅이란 느리게 움직이는 전경(前景)과 빠르게 움직이는 배경(背景)을 하나의 화면 속에서 모순적으로 결합하는 영화기법을 말한다. 그런가 하면 서울에는 슬로우 모션 기법의 공간들도 많다. 옥수수를 재배하는 밭이 남아있는 동교동의 기찻길 부근이나 온갖 잡동사니들로 노천 박물관을 이루고 있는 황학동에서는, 시간이 마치 꿈속에서 춤을 추듯 느리게 움직인다. 서울 시내를 걸어 다니거나 차를 타고 지나갈 때의 감각과 경험은, 채널을 바꿔가며 텔레비전을 보는 일과 결코 다르지 않다.

서울의 낭만성은 공간의 연속성을 따라서 흐르는 시간의 다양성들로부터 생겨난다. 개인적으로는 피맛골과 종로타워가 공존하는 종로의 풍경에서 서울의 표정을 감지하곤 한다. 종로타워가 서울의 스펙터클한 현재라면, 피맛골은 서울의 고고학적인 과거이다. 종로타워는 밀레니엄 플라자로 더 많이 알려진 건물이다. 탑클라우드(top-cloud)라고 이름 붙여진 23층이, 그 아래층인 22층과 30m의 거리를 두고 하늘에 떠있다. 말로만 듣던 포스트모더니즘 건축물인지는 모르고, 영화 <맨 인블랙>에서처럼 외계인 비행접시의 이착륙을 위해 만들어 놓은 건물이 아닐까라는 공상을 해보곤 한다.

개인적인 감상이 되겠지만, 종로타워의 포스트모던함은 건축물 자체에서 오는 것이라기보다는, 주변공간인 피맛골과의 관계를 연상할 때 조금은 명료하게 주어진다. 피맛골은 말을 타고 대로를 지나가는 양반들을 피하기 위해서 생겨난 이면도로이다. 양반들이 말을 타고 행차를 나서면 주변의 평민들은 길에 엎드려야 했다. 양반들의 말도 피하고 국밥도 먹을 수 있었던 곳이 다름 아닌 피맛골이다. 피맛골을 배경으로 조선시대에는 육의전이, 일제시대에는 화신백화점이, 그리고 최근에는 종로타워가 자리를 잡았던 것은 공간의 역사성이라고 할 것이다.

최근의 보도에 의하면 피맛골과 관련된 개발계획이 확정되었다고 한다. 종로업그레이드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지상 20층의 거대한 건물이 들어서고 골목들은 재정비될 것이라는 청사진이다. 피맛골은 지나온 삶의 흔적들이 묻어있는 문화적 공간이기도 하고, 고도성장기에 각종 규제에 발목이 잡혀 방치되어 온 어두운 공간이기도 하다. 문화적 기억을 위해서 슬럼화를 강요하는 것이 좋은 방법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종로 뒷골목의 음습하면서도 정겨웠던 낭만성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섭섭하기도 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자본과 추억은 그렇게 서로 엇갈리며 자신의 길을 간다. 조만간 피맛골에 들러 생선구이에 소주 한 잔을 걸치게 될 것 같다.



김동식 문학평론가 tympan@empal.com


입력시간 : 2004-04-08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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