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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타운] 범죄의 재구성
뛰는 형사 위에 나는 사기꾼들
사기계 전설들과의 한 판 승부, 실제 정보 바탕으로 만든 '리얼 사기극'


최근 한국영화가 보여준 긍정적인 점은 장르의 다양성이다. 영화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생산돼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문제임을 영화 역사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영화의 황금기 혹은 고전 할리우드 영화의 시스템이 완성된 시기는 바로 많은 장르들이 형성됐던 때였고, 초기에는 미국에 그다지 뒤지지 않았던 프랑스의 영화산업이 사양 길로 접어든 것은 전쟁이라는 외부적 요소외에 특정 장르의 영화들이 지나치게 양산되었다는 데 있다.

최동훈 감독의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은 근래 보기 드문 범죄 스릴러다. 제목 앞에 설명된 장르적 특성 혹은 내용의 축약은 ‘리얼 사기극’으로 되어 있다. 사기를 다루는 영화들이 미국 영화에서는 종종 발견되었지만, 워낙 다양한 종류의 사기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사기극 자체가 장르로 형성된 적은 없다. 대다수의 사기가 범죄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형사물이나 스릴러, 혹은 코미디 등 다른 장르의 소재 정도로 인식되어 왔다. ‘범죄의 재구성’도 사기 사건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형사의 범죄자 추적과, 서로 같은 편이라고 믿었던 범죄 집단 내부의 갈등과 대립을 다루고 있어 스릴러라는 장르 명칭이 가장 적합해 보이는 영화다.


- 백윤식의 능청스런 연기에 색다른 재미

이 영화의 내용이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리얼’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한 것은 각본을 쓴 최 감독이 1996년 한국은행 구미지점에서 발생한 당좌수표 위조 사건을 모티브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범인이 잡히지 않은 이 사건은 당좌수표 인출방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 사건 이외에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발생한 여러 사기 사건들, 그리고 실제 사기꾼들을 통한 정보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영화에는 많은 관객들에게 생소한 사기꾼계의 전문 용어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한국은행 한 번 수술해야지”의 수술은 사기사건을 의미한다. 특히 사기계의 전설적인 인물 김 선생(백윤식 분)은 노련한 전문가답게 상황마다 전문 용어인지 자신만의 스타일인지 모르는 언사로 색다른 재미를 제공한다.

한국은행을 대상으로 한 50억 사기극은 사기죄로 출소한 지 한 달 밖에 안되는 최창혁(박신양 분)의 아이디어로 출발한다.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김 선생을 만나고, 김 선생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전문가 세 명을 ‘수술’에 동참시킨다. 말로 상대방을 홀려 사기를 치는 분야의 권위자 얼매(이문식 분), 위조 기술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휘발류(김상호 분), 그리고 결혼을 빙자한 사기계의 전문가 제비(박원상 분)가 그들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영화는 위조 사건을 클라이막스에 올려 놓은 것이 아니라 시작 지점으로 삼고 있다.

다섯 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그러나 서로 다른 속셈을 갖고 있고, 유일한 여성 사기꾼인 서인경(염정아 분)이 김 선생과 최창혁 사이를 오가며 스토리를 조금 복잡하게 만든다. 또 한국 영화의 형사들 중 가장 인간적인 형사로 기억되는 차 반장(천호진 분)이 사건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우연한 사고로 초반에 검거되는 얼매의 코미디가 돋보인다.

- 극적 반전이 주는 쾌감 등은 미흡

얽히고 얽힌 사기의 원인이 복수에 있음이 드러나 사기의 ‘재구성’이 완성될 때도 영화는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출발이 사기극의 발생과 자동차 추격에 의한 최창혁의 사망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플래쉬백으로 사기극의 전모를 밝히는 것으로 일단락이 되는 것 같지만, 50억원의 행방과 더불어 김 선생의 ‘뇌수술’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새로운 출발점이다. 사기사건의 해결에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하는 여인의 목소리가 서인경의 것인지, 또 그녀가 창혁과 어떤 관계인지 밝혀지는 과정도 긴장감을 조성한다.

범인과 형사가 중심 축을 이루는 이야기에서 어떤 쪽이 더 관객에게 어필하느냐는 여러 가지 요소에 달려 있지만, 사악한 인물이 아닌 경우에는 범죄자의 행각이 더 쾌감을 주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60년대 미국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을 다룬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사기를 거듭하는 프랭크 애비그네일의 기막힌 아이디어와 실행 능력을 보는 것이 형사의 힘겨운 추적과 검거보다 더 흥미롭다. ‘범죄의 재구성’은 “뛰는 놈이 위에 나는 놈 있다”라는 속담을 사기계에 적용시?보여주면서 범죄자와 형사라는 단순 구도를 넘어 복수극을 섞으면서 성공하는(잡히지 않는) 주인공을 표방한다. 필름 느와르의 스타일을 따라간 어두운 조명과 칙칙한 색감, 어지러운 무늬가 주조를 이루는 배경 공간들은 사기극과 복수극의 혼선을 증가시킨다.

‘범죄의 재구성’은 잘 만들어진 장르 영화로 손색 없는 작품이다. 다만 유사 장르의 할리우드 영화들이 새로운 소재들로 장르의 진화를 거듭하며 더욱 더 섬세해지고 세련되어지는 것과 비교를 해보면 그다지 충격적인 반전이나 관객의 상상을 초월하는 결말을 제공하고 있지는 않다. 이 영화와 함께 개봉된 <테이킹 라이브스>의 마지막 장면이 주는 반전에 따른 쾌감과 비교해 볼 때 ‘범죄의 재구성’은 예측가능한 편안함과 그로 인한 나른함으로 끝이 난다.

시네마 단신
  
-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회고전

서울 시네마테크는 4월 16~25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ㆍ1910~1998) 감독 회고전을 마련한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일본 영화계의 천황’, ‘영화의 스승’이라고 불리는 일본의 대표적 거장 감독. 그의 존재가 처음 해외에 알려진 것은 1951년 <라쇼몽>(羅生門)이 베니스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부터다. 이후 그는 국제적 명성을 얻었으며 <라쇼몽>이나 <7인의 사무라이> 등 그의 작품들은 프랑스 누벨바그 감독들이나 조지 루카스, 스티븐 스필버그, 존 스터지스 같은 감독들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회고전에 상영되는 작품은 모두 15편. 상영작 중 일부는 5월 초부터 광주와 대구, 전주, 청주 등 전국 4개 도시에서 순회 상영될 예정이다.

- 영화인 226명 민주노동당 지지

봉준호, 박찬욱 감독 등 영화인 226명은 4월7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4ㆍ15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을 지지한다고 공식 선언했다. 김광수 청년필름 대표의 사회로 진행된 기자회견에는 두 감독과 민병훈 감독, 오기민 마술피리 대표, 김영덕 부천영화제 프로그래머, 이성강 감독과 영화배우 오지혜씨 등 20여명의 영화인이 참석했으며 노회찬 민주노동당 선대위원장과 비례대표 1~2순위인 심상정, 단병호 후보가 지지 선언을 환영했다. 기자회견에 나올 예정이던 배우 문소리, 정찬씨와 변영주 감독은 일정 관계로 참석하지 못했다.







채윤정 영화평론가 blauthin@empal.com


입력시간 : 2004-04-14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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