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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의 문화읽기] 코베인을 다시 생각하며


무인경비 시스템 회사의 전기공 게리 스미스가 시애틀의 한 맨션에 들어선 것은 1994년 4월 8일 오전 8시 40분 경이었다. 그리고 그는 유리문을 통해서 운동화를 신은 낡은 청바지 차림의 금발 남자가 누워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남자의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어 있었다. 총구는 턱을 겨누고 있었고 총신은 가슴에 얹혀 있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시신 주변에서 유서로 보이는 종이 한 장을 발견했고, 지갑에서 꺼낸 운전면허증으로 사체의 신원을 확인했다. 죽은 남자는 록 밴드 너바나(Nirvana)의 커트 코베인이었다. 그후에 부검을 통해 사망 시각이 4월 5일 저녁으로 추정되었으며, 그의 혈관에서는 치사량의 3 배에 해당하는 헤로인이 검출되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자살로 결론지었다.

올해는 커트 코베인의 10주기가 되는 해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커트가 자살했다는 경찰의 발표에 대해서 의문을 표시한다. 이상하게도 총에서 자살한 사람의 지문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치사량의 3배에 달하는 헤로인을 흡입한 상태에서 자살을 시도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우며, 종이에 씌어진 마지막 4 줄의 문장은 커트의 필체가 아니라는 점들을 거론하며 타살 가능성을 제기한다. 신만이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커트의 죽음과 관련된 수많은 의혹들은,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얼마나 안타까워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너바나는 커트 코베인(기타), 크리스 노보셀릭(베이스), 데이브 그롤(드럼)으로 구성된 록 밴드이다. 메이저 레이블로 데뷔하기 이전에 ‘Bleach(1989)’라는 앨범을 냈고, 정규앨범으로는 ‘Nevermind’(1991), ‘Incesticide’(1992), ‘In Utero’(1993)를 발표했다. 단 3 장의 정규 앨범을 내고 3년 남짓한 활동을 한 밴드이지만, 너바나의 문화사적인 의미와 영향은 너무나도 크다. 많은 비평가들이 지적하듯이, 그들은 상업주의의 요구에 길들여진 록 음악을 반대하면서 거칠고 반항적인 음악을 추구했다. 또한 록의 근원적인 순수성과 저항성을 회복하기 위해 비주류의 정신을 지켜나가길 갈망했다.

사람들은 너바나의 음악에 얼터너티브(alternative) 또는 그런지(grunge)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얼터너티브나 그런지는 음악의 장르인 동시에, 스타일의 문제였고 태도의 문제이기도 했다. 그들은 고도로 합리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변화의 가능성이 증발해버린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소리 없는 절규를 대변했다. 물론 너바나 역시 상업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메이저 음반회사와 계약을 하면서 보여준 위악(僞惡)적인 포즈들은, 그들이 예견하고 있던 공포의 표현인 동시에 죄의식의 뒤틀린 발현이기도 하다. 어쩌면 커트 코베인은 상업주의와의 공포스러운 긴장관계를 분열증적인 태도로써 버텨 나가고자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어떤 해석과 평가가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너바나는 음악적으로 대단히 훌륭하다. 커트 코베인은 파괴적이고 혁신적인 코드 진행을 통해서 저항성과 몽환성 그리고 지속적인 긴장감을 자신의 음악에 부여했다. 그리고 원시적인 건강성과 실존적인 우울이 뒤엉킨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그는 록이 화려한 기교에 의해서만 가능한 음악이 아니라, 내면의 목소리를 표현하는 음악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커트 코베인의 기타와 목소리가 보여주는 기묘한 앙상블 때문일까. 너바나의 노래는 울면서 춤출 수 있는 음악이다. 그리고 그들의 음악에는 놀이와 절규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 그들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디오니소스 신화와 함께 뭉크의 그림 ‘절규’가 저절로 떠오르곤 한다.

개인적인 고백인데, 만약 그 시절에 너바나의 음악을 접하지 못 했다면 아마 지금까지 록을 듣고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방황하며 아파하는 젊음의 순수성과 저항성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커트 코베인이 고맙고, 그의 죽음이 무척이나 안타깝다. 커트 코베인, 음악으로 더러운 세상과 추악한 자신까지 모조리 엿 먹이며 눈물 번진 얼굴로 웃음을 보였던 사람, 또는 록의 순수성을 추구했던 우리시대의 디오니소스. 그를 추모하며 ‘Smells Like Teen Spirit’를 다시 듣는다.

‘ 나는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정상을 벗어난 변덕쟁이 갓난아기이다. 이미 나에게는 정열이 없다. 그리고 기억해 주기 바란다. 조금씩 소멸되는 것보다 순식간에 타오르는 것이 낫다는 것을…’ (커트 코베인의 유서 중에서)



김동식 문화평론가 tympan@empal.com


입력시간 : 2004-04-15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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