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국남의 방송가] 한일 문화교류의 현황


국내 신문, 방송 등이 최근 연일 쏟아낸 보도는 두 가지다. 하나는 총선 관련이고, 다른 하나는 한류 스타에 관한 것이다. 한류 보도는 그 동안 중국, 대만 등 동남아 지역에서 일고 있는 우리 스타들의 동정을 넘어 일본내 한류 바람을 다뤘다.

스포츠 신문들은 일본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겨울 연가’ 주연 배용준의 일본 방문 소식을 세세하게 전했다. 또 KBS를 비롯한 방송들은 ‘태극기 휘날리며’의 일본 개봉에 앞서 일본 현지를 방문한 장동건의 동정을, 공항 표정에서부터 기자회견 스케치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게 내보냈다.

이뿐 만이 아니다. 신문과 방송은 각종 지면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시시각각 ‘겨울연가’의 일본 내 반응, 보아를 비롯한 이수영, 주얼리, 슈가 등 일본으로 진출한 한국 가수들의 음반 판매와 활동, 일본 내 팬들의 반응, 한류로 인해 한국어 수강 열풍 등을 약속이라도 한 듯 열띠게 보도하고 있다. 좀처럼 연예 관련 다큐멘터리를 내보내지 않던 KBS, MBC 등 방송사들도 올해 들어 일본에서 부는 한국 대중문화 선풍을 대형 다큐멘터리나 VJ 프로그램을 통해 앞다퉈 소개했다.

국내로 눈을 돌려보면 굳게 닫혔던 일본 대중문화의 빗장이 우리 정부의 1차 일본문화 개방(1998년 10월)에 이어 올해 1월 1일 4차 개방으로 일본 드라마의 국내 케이블, 위성 텔레비전을 통한 방송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 일본 대중문화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이러한 일본 대중문화 개방으로 한일문화교류는 이전보다 더욱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고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대중매체에서 집중 부각시키는 것은 주로 일본 내에서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우리 스타와 드라마, 영화를 비롯한 우리 대중문화 콘텐츠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열기가 주조를 이룬다. KBS는 최근 ‘VJ특공대’를 통해 ‘겨울연가’ 의 일본 내 방송으로 관련 상품이 1,000억원대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으며 일본 관광객들의 국내 관광 붐이 조성되는 것을 상세하게 방송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KBS뿐만 아니라 MBC 등 다른 방송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본은 원래부터 다양한 국가의 대중문화가 소개돼 인기를 얻는 곳이다. 심지어 몽골출신의 그룹들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가 하면 홍콩 스타들의 인기도 여전히 높다.

현재 우리 방송이나 신문들이 국내 팬들이나 국민의 맹목적 자긍심에 기대어 시청률이나 가독률을 높이는데 주력해 일본 내에서 일고 있는 한류 열풍의 실체나 우리 연예인들의 활동 실패 사례는 거의 소개하지 않고 오로지 성공하고 관심을 모으는 스타를 소개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우리의 대중문화 콘텐츠와 스타가 일본에 진출하면 모두 성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여기서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일본 대중문화 상황이다. 일본의 대중문화 산업은 매우 정교하고 체계적인 틀이 잡혀 있다. 시장 규모 역시 우리에 비해 경제규모 만큼이나 차이가 있다. 지난해 8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JAPAN RULES OK!'라는 커버스토리를 통해 아시아 대중문화의 최강자인 일본의 영화, 대중음악, 디자인, 패션 등 각 분야를 상세히 소개하면서 일본이 세계의 대중문화의 흐름을 형성하는 주체로 성장하고 있으며 지난 10년동안 제조업 분야의 수출은 20% 성장한데 비해 대중문화 수출품은 300%가 증가했다고 전했다.

이같은 결과는 일본이 지난 20~30여년동안 대중문화의 발전을 위해 이 분야의 뛰어난 인재들을 발굴해 육성했고 지속적인 투자를 해온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대중문화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호리프로, 요시모토 흥업 등 일본 연예 프로덕션사는 지상파 방송사의 매출액을 상회할 정도로 사업규모가 크고 체계적으로 스타를 배출하고 문화 콘텐츠의 해외 진출을 전개하고 있다. 일본의 대중문화는 우리가 만만히 보아서는 안될 체계와 시장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일본에서의 일회성 한류 성공에 도취해 철저한 준비와 콘텐츠의 제작, 실력 있는 스타들의 지속적 배출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요즘 점차 시들고 있는 동남아에서의 한류 열풍의 전철이 일본에서도 똑같이 반복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또 알게 모르게 일본 대중문화는 우리의 주변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국내 유명가수들이 부른 상당수 히트곡의 원곡이 일본 음악이라는 사실이 한 예다. J-POP의 완전 개방과 함께 일본어 음악들이 자유롭게 유통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가요계의 뚜렷한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 일본 대중음악 리메이크 붐이다. 드라마 피아노 삽입곡으로 방송돼 대단한 인기를 얻었던 캔의 ‘내 생애 봄날은’ 을 비롯해 올 들어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며 최고 인기 곡으로 떠오른 엠씨더맥스의 ‘사랑의 시’는 일본 그룹 안전지대의 신곡을 번안한 것이고, 박화요비의 4집 타이틀곡은 일본 SF 영화 ‘알렉산더 전기’ 의 주제곡으로 고야나기 유키가 불러 알려진 ‘당신과의 키스를 세어 보아요’이다.

우리가 국내 스타와 콘텐츠의 일본 내 열기에 도취해 있는 동안 일본 대중문화 콘텐츠는 국내 안방까지 깊숙이 자리잡았다. 일본 팝의 대표적인 스타 아무로 나미에의 서울 공연을 비롯해 일본 유명 스타들의 국내 진출이 본격화하면 일본 대중문화의 국내 진출은 더욱더 광범위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우리 스타와 대중문화 콘텐츠의 일본 내 단발적인 성공의 열기에 취해 안방 깊숙이 들어오는 일본 대중문화의 본질과 실체를 냉정하게 평가할 때가 됐다. 이와 함께 산발적이고 비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우리 대중문화 콘텐츠와 스타들의 일본 진출을 보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이며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할 때다. 이것만이 수십년동안 대일 무역에서 적자만을 기록했던 무역 교류의 역조 현상을 대중문화 교류 분야에서 피할 수 있는 길이다.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4-04-22 21:25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knbae2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