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욕망과 섹슈얼리티 탐구로맨틱 코미디로 그린 '사랑'과 여성의 무의식에 담긴 불안에 대해

[시네마 타운] '엄마는 여자를 좋아해', '인 더 컷'
여성의 욕망과 섹슈얼리티 탐구
로맨틱 코미디로 그린 '사랑'과 여성의 무의식에 담긴 불안에 대해


한국 영화에서는 거의 맛볼 수 없는 두 편의 영화가 이번 주 극장가에서 동시에 개봉된다. 하나는 스페인의 이네스 파리스와 다니엘라 페허만 감독의 <엄마는 여자를 좋아해>이고, 다른 하나는 <피아노>를 통해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제인 캠피온 감독의 최근작 <인 더 컷>이다. 둘 다 감성과 색채는 다르지만 모두 여성이 감독이자 주인공인 영화다. 전자는 모녀와 자매 관계, 동성애와 이성애를 로맨틱 코미디에 담은 기분 좋은 영화고, 후자는 한 여성의 욕망과 불안의 무의식을 스릴러의 형식과 결합시킨 독창적이고 독특한 매력으로 가득찬 수작이다.

- 자아발견과 모녀애의 행복한 이야기

페드로 알모도바 감독의 <그녀에게>(2002)에서 식물인간이 된 여주인공으로 알려진 레오노르 와틀링 주연의 <엄마는 여자를 좋아해>는 작년에 유럽에서 인기를 모았던 파리스와 페허만의 첫 번째 장편 영화다. 와틀링은 각기 다른 개성 세 자매중 소심하고 겁이 많지만 귀여운 매력이 철철 넘치는 둘째 딸 엘비라역으로 분해 <그녀에게>에서 볼 수 없었던 수다스러운 연기를 보여준다. 순간적으로 남자를 보고 성적 취향을 알아맞히는 재능(?)을 지녔지만 변변한 남자친구 한 번 사귀어 본 경험이 없다. 평소에 존경하던 작가 미구엘을 만나 호감을 느끼면서도 실수를 연발하다 급기야 그를 화나게 만드는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다.

엘비라는 아빠와 이혼한 엄마 소피아의 생일 날 충격적인 고백을 듣고 고민에 빠진다. 엄마가 행복에 겨워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밝힌 상대는 자신과 같은 또래의 체코 출신 피아니스트 엘리스카다. 그동안 자신이 연애가 성공적이지 못했던 이유가 혹시 엄마의 동성애와 연관이 있는지, 성적 취향이 유전이 되는지 등의 고민에 빠진다. 게다가 언니 히메나는 엘리스카가 돈 때문에 엄마와 사귀는 꽃 뱀인지 모른다고 주장하자, 단순하고 장난스런 막내 솔은 엘리스카가 다른 여성과 사귀도록 해야 한다며 작전을 꾸민다.

엘비라와 미구엘의 관계가 엄마의 심각한 연애와 병행되면서, 한 가족이 이런 저런 과정을 거쳐 모녀애와 자매애의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동시에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자아발견의 필수 과정인 여행(엘리스타를 찾아서 프라하로 떠나는)이 사건 해결의 핵심이 되는데, 늘 갈팡질팡했던 엘비라는 서투른 운전 솜씨로 집을 나와 그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일들을 자신있게 처리한다. 행복한 결말과 함께 모녀들이 둥글게 손을 잡고 춤을 추는 장면은 마릴린 고리스의 <안토니아스 라인>(1996) 이후 오랜만에 여성 관객들에게 멋있는 장면으로 기억될 영화다.

- 실험적 형식을 넘나드는 도발적인 작품

<엄마는 여자를 좋아해>가 ‘엄마’의 동성애를 제외하면 대중 영화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작품이지만, 맥 라이언 주연의 <인 더 컷>은 여러 측면에서 ‘실험적’인 영화다. 극적 긴장감은 연쇄토막 살인사건의 범인이 주인공 프래니 애버리(맥 라이언)의 주변에 있는 남성들 중 한 명인지 혹은 아닌지에 달려 있지만, 살인사건이 이 영화의 핵심은 아니다. 뉴욕의 허름한 아파트에 혼자 사는 30대 후반의 여주인공을 통해 여성의 성, 욕망, 심리 등을 파헤쳐보는 게 영화의 목적이고, 그 과정에서 남녀 관계를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상황에 비유시켜 재고해본다.

결국 남성과의 연관선상에 서 있는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관한 문제인데, <인 더 컷>은 알프레드 히치콕이나 스티븐 킹, 혹은 존 그리샴 등 수많은 남성 감독ㆍ작가들이 만든 상업적 스릴러들과 전혀 다른 지점에서 출발한다.

- 욕망과 심리의 몽환적 이미지

프래니는 햇볕이 따스한 여름 아침, 하얀 꽃송이가 떨어지는 침대에서 눈을 뜬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배다른 여동생 폴린(제니퍼 제이슨 리)에게 ‘그것은 눈이 내리는‘꿈’이었다’는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꿈같은 장면은 중요한 부분에서 여러 번 등장한다. 후반부에 폴린이 살해되고 프래니가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릴 때는 아빠의 스케이트 날이 엄마의 다리를 절단하는 악몽으로 다시 등장한다.

프래니는 흑인들의 속어들을 연구하기 위해 지저분한 술집에서 흑인 남학생 코넬리우스를 만난다. 화장실을 찾으러 내려간 지하에서 손목에 스패이드 모양의 문신을 한 남성이 파란색 매니큐어를 바른 여성으로부터 오랄섹스를 받고 있는 장면?훔쳐본다. 그녀는 곧 꽃과 나무로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정원에서 이웃집 여자의 시체 일부가 발견되고, 바로 그 파란색 손톱의 여성이었다는 사실을 지오바니 말로이 형사(마크 러팔로)를 통해 알게 된다. 말로이 형사는 손목에 문제의 문신을 하고 있어 프래니는 ‘그가 살인자일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도 성적으로 더욱 그에게 빠져든다.

프래니가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에 대해 강의할 때 한 학생이 <등대로>에서는 “어떤 나이든 여인이 죽는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듯 얘기하자 ‘도대체 몇 명의 여성이 죽어야만 흥미롭겠느냐’고 되묻는다. 그 학생의 답변은 “적어도 세 명”. 그 즈음 영화는 폴린을 포함해 세 명의 여성이 토막살인을 당한 끔찍한 시체를 보여주며 범죄 스릴러를 비튼다. 살인사건이라는 극단적인 모습으로 등장하는 남성가해자-여성피해자라는 구도는 폴린이 프래니가 말로이와의 섹스에 대해 얘기해 주자 자신은 지금까지 모두 남성들이 원하는 대로 했을 뿐, 단 한 번도 자신이 원하는 섹스를 해 본 적이 없다는 얘기에서 유사하게 반복된다.

또 말로이 형사조차 히스패닉계 파트너 로드리게스와 여성비하적인 농담을 지껄인다 남자가 여자에게 필요한 것은 “구멍, 젖가슴, 심장박동’뿐인데…”, 말로이는 두 번째 사항도 필요 없다고 하자 로드리게스는 한 술 더 떠 심장박동조차 필요 없다고 킥킥댄다.

프래니의 불안한 심리는 그녀가 암송하는 시의 구절이나 포커스가 일정치 않게 흔들거리는 촬영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된다. 카메라는 프래니가 스쳐 지나가며 본, 혹은 자신이 처한 장면들을 미묘하고 정교한 이미지들로 조합해낸다. <인 더 컷>은 상업영화와 실험영화를 넘나들며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충실하고 치밀하게 묘사한 자극적이고 도전적인 작품이다.

채윤정 영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4-04-28 21:21


채윤정 영화평론가 blauth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