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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바스크 음악의 유래와 매력, 영혼이 담긴 감성의 멜로디
탁월한 예술적 감성과 문화적 자긍심 가진 민족

유럽의 남서부, 대서양과 지중해 사이, 이베리아반도에 위치한 열정적인 나라 스페인은 다양한 민족들과 그들의 언어, 문화가 공존하는 땅이다. 현재 스페인 내에서 쓰이는 언어는 크게 네 가지로 분류가 되는데, 안달루시아와 카스티야 지역의 카스티야어(현대 스페인어), 바르셀로나와 동부 해안 지역에서 쓰이는 카탈로니아어, 서북부 지역의 갈리시아어, 그리고 북부 피레네산맥 부근에서 통용되는 바스크어가 그것이다.

그 중 피레네산맥의 양쪽 지역, 즉 스페인의 북동부와 프랑스의 남서부에 위치한 최고의 자연 경관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나라 바스크(Basque : 바스크어로 에우쉬카디(Euskadi), 그리고 스페인어로는 바스콩가다스(Vascongadas)라 한다)는 일반적으로 알라바와 기푸스코아, 그리고 비스카야의 3개 주(州)를 포함하는 지역을 말한다.


- 포근하고 아름다운 음악의 고장

인구 270만 명의 바스크족은 가장 탁월한 예술적 감성과 문화적 자긍심을 가진 이들로 이베리아반도 내에서 가장 오래 된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의 언어인 에우쉬카라(Euskara)는 유럽에서는 유일하게 인도 - 유럽어족 이전에 등장한 고어(古語)이며 독자적인 언어 조직을 가지지만, 계통과 기원이 불분명하기로 유명하다. 정치적으로, 스페인 내전(1936-1939)을 거치면서 강제로 스페인에 편입된 이후 이들은 꾸준히 분리 독립 투쟁을 해 왔다. 프랑코 정권(1936~1975) 하에서 심한 탄압을 받은 바스크는 이후 지하 운동의 성격을 띠게 된 ‘ 바스크 민족주의’ 운동으로 세계인들의 관심을 받았는데, 특히 1959년 결성된 ‘자유조국바스크(ETAㆍEuskadi Ta Askatasuna)’는 온건파인 바스크 민족당에 반대하며 스페인에 대한 지속적인 테러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사실 우리가 바스크라는 나라에 대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그리 많지 않다. 12세기 프랑스의 유명한 무훈시 ‘ 롤랑의 노래’에서 샤를마뉴 대제의 군대를 패퇴시킨 이들이 바스크인들이라든지, 비제의 오페라로 유명한 메리메의 소설 ‘ 카르멘’의 남자 주인공 돈 호세가 바스크 태생으로 설정되어 있다든지, 피카소의 유명한 그림 ‘ 게르니카’가 스페인 내전 중 프랑코 정권의 편에 선 독일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폐허가 된 바스크의 도시 게르니카를 모델로 한 것이라든지, 혹은 ‘ 볼레로’로 유명한 프랑스의 작곡가 라벨이 프랑스 바스크 지역 출신이라는 점 등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외신을 통해 간간이 들려오는 테러와 관련된 뉴스를 접하고 막연히 가지게 되는 씁쓸한 감정만이 바스크에 대해 가지는 일반적인 느낌일 것이다. 하지만 폭력과 테러라는, 비난받아 마땅한 이들의 정치적 강경 행동과는 별개로 바스크는 아름다운 음악의 고장이기도 하다. 프랑스 서해안의 비스케이 만이 내려다 보이는 풍성한 옥토를 지닌, 바스크의 깊고 아름다운 계곡들과 당당한 위용을 자랑하는 가파른 산, 최고의 휴양지로 꼽히는 멋진 바닷가 등은 이 지역이 빼어난 음악의 고향이라는 사실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한다.

오랜 세월 동안 바스크의 문화는 전통 춤과 노래를 통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왔는데, 바스크인들은 비교적 최근에서야 자신들의 문화를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최초의 바스크 문헌이 등장한 것이 16세기에 이르러서이니, 오랫동안 노래와 춤이 바스크 문화의 전달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다. 가장 오래 된 구술의 전통은 연주 없이 노래로만 표현되는 대규모 남성 합창의 형식이다. 사실 바스크에서 음악은 그 자체로서의 효용보다는 춤을 추기 위한 도구로 역할을 해왔다. 춤의 반주를 위한 음악은 다양한 전통 악기들로 연주되었다. 가장 오래 되었으며 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악기는 단연 2만7,000여년의 역사를 가진, 피리의 일종인 치쉬투(txistu)이다. 이 악기는 그 크기에 따라 큰 치쉬투인 실보테(silbote)와 작은 치쉬투인 시룰라(xirula)로 나뉘며 때로는 황소의 뿔과 나무로 만든 악기인 알보카(alboka)로 대체되기도 한다. 탬버린의 일종인 판데로아(panderoa) 또한 바스크 음악에서 널리 쓰이던 악기다.

- 상상을 뛰어넘는 음악적 광대함

19세기 후반에는 트리키티샤(trikitixaㆍ아코디언)가 등장한다. 19세기 중반 이탈리아로부터 유럽에 처음 소개된 아코디언은 빌바오 항구를 통해 바스크로 건너왔고 이후 바스크 음악의 주된 사운드를 이루게 되었다. 20세기를 거치며 수많은 포크 그룹들과 뮤지션들이 즐겨 연주하게 된 트리키티샤는 원래 아코디언과 판데로아, 알보카 연주로 이루어진 춤곡 또는 그 스타일을 의미하는 말이었지만 이제는 일반적으로 아코디언 자체를 일컫는 말로 쓰이며, 아코디언 또는 멜로디언으로 연주되는 음악을 통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악마의 으르렁거림’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트리키티샤는 바스크 지역을 대표하는 음악 스타일로 바스크 특유의 서정성과 슬픔, 그리고 역동성을 동시에 담고 있는 음악이다. 비교적 근대에 확립되어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한 트리키티샤는 바스크의 여러 음악들에 녹아 들어 자연스러운 어울림을 이룬다. 오쉬코리(Oskorri), 이토이스(Itoiz), 네구 고리아크(Negu Gorriak), 슈타가르(Sutagar), 에라문 마르티코레나(Erramun Martikorena) 등 60년대 말 ‘새로운 바스크 음악’ 운동을 주도했던 전통 가수와 그룹은 이러한 전통과 팝, 록, 재즈 등 다양한 요소들을 결합하여 새로운 형식의 음악을 창조해내며 바스크의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가꾸어주었다.

오늘날 바스크 음악은 다른 여러 스타일과 더불어 발전을 이루었다. 깊은 역사를 지닌 전통 음악을 바탕으로 한 빼어난 연주와 노래를 들려주는 수 많은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바스크 음악의 풍성함과 그 영역의 광대함이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오랜 세월 동안 거친 자연환경과 싸우며 얻어진 내면의 강렬한 에너지, 그리고 근대사를 통해 겪은 억압과 고통에서 비롯된 아련한 슬픔이라는 상반된 색채가 이들의 음악에는 공존한다. 가슴속을 파고드는 아름다운 멜로디, 감성을 포근하게 어루만져주는 듯한 친근한 목소리에는 그들의 영혼이 담겨 있는 듯하다. 다른 지역의 여느 뛰어난 아티스트들과 마찬가지로 바스크에서도 절대적인 사랑과 존경을 받는 아티스트들이 존재한다. 미켈 라보아(Mikel Laboa), 파스칼 가이녜(Pascal Gaigne), 베니토 레르춘디(Benito Lertxundi), 이마놀(Imanol), 초민 아르톨라(Txomin Artola), 아마이아 수비리아(Amaia Zubiria), 그리고 오쉬코리(Oskorri) 등은 명실공히 바스크를 대표하는, 바스크 대중음악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린 뮤지션들이다.

이들은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알려져 있지 않은 생소한 아티스트일지는 몰라도 그들의 재능의 탁월함은 여느 거장들 못지않다. 적어도 바스크 내에서 크게 인정되고 유럽의 음악 애호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은 아티스트들은 물론이거니와 그 대열에도 끼지 못한 무명 뮤지션들조차 자신의 음악과 바스크의 음악 전통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가장 순수하고 달콤하고 섬세하며 호소력 짙은 매혹적인 목소리와 연주는 우리의 가슴속 깊이 숨어 있던 감성을 살포시 끌어내며 지극히 풍요로운 감흥을 선사한다. 바로 그것이 바스크 음악의 매력이다.



김경진 팜 칼럼니스트 arzachel@seoulrecoreds.co.kr


입력시간 : 2004-05-0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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