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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타운] 효자동 이발사
권력의 머리 꼭대기에서 가위를 휘두른 소심한 아버지
60~70년대 격동기, 평범한 소시민이 '대통령 이발사'로 겪는 휴먼 드라마


암울한 근대사를 살아 온 민초들의 삶을 스크린에 옮기려는 시도는 1990년대 이후 한국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시도돼 왔다. 대부분이 그다지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지만, <살인의 추억>은 범죄스릴러 장르적 긴장감과 드라마의 극적 구조가 80년대에 대한 성찰과 뛰어나게 어울리면서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흥행의 대열에 합류했던 드문 경우였다. <효자동 이발사>는 그보다 시기를 더 거슬러 올라가 1959년부터 1979년의 역사적 격동기를 배경으로 이발사를 직업으로 하는 한 소시민의 삶을 다루고 있다.


-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다

청와대(당시 이름은 경무대이지만 극중에서도 청와대로 불린다)가 위치한 효자동에서 효자이발관을 운영하고 있던 성한모(송강호)는 무식하지만 순진하고 순박한 이발사다. 사사오입 개헌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믿어 1960년 3ㆍ15 부정선거 때 투표용지를 먹거나 많은 양의 용지들을 땅에 묻기도 했다. 1968년 1ㆍ21사태로 인해 간첩들이 전염시켰다는 소문이 든 설사병이 아들에게도 생겼다면 아들을 경찰서에 데려다 주기도 한 사람이었다.

그가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 것은 어느 날 이발소를 찾아온 청와대 경호실장 장혁수(손병호)에 의해서다. 군사적이고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장실장(박용수)은 자신과 라이벌인 중앙정보부장 박종만을 곤란하게 하기 위해 성한모를 이용해 간첩 신고를 하게 만든다. 간첩이라고 신고한 사람이 중앙정보부 직원이었지만 어쨌든 그는 박정희 대통령(조영진)으로부터 표창을 받게 되고, 대통령의 이발사로 발탁(?)된다.

무시무시한 분위기 속에서 이발과 면도를 하는 성한모는 늘 긴장과 불안으로 점철되는 시간을 보내지만 우리가 송강호에게 바라는 엉뚱한 순간의 유머와 표정은 그런 압박감속에서도 빛을 발한다. 용안에 상처를 내지 말라며 장혁수가 위협했지만 면도중 실수로 상처를 낸 성한모는 코믹한 위기 대처 능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자신은 웃으면서 별 뜻 없이 한 이야기가 엄청난 위기와 시련의 계기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면도사겸 보조로 일하던 김민자(문소리)가 임신하자 사사오입으로 다섯 달이 지났기 때문에 낳아야만 한다는 주장을 해 결혼을 하고 아들은 4ㆍ19에 태어나 이름을 낙안이라고 짓는다. 낙안은 아빠에게 그리고 영화 전체를 이끌어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선 초등학생 낙안은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목소리만으로 내레이션을 맏아 사건과 내막을 설명한다. 또한 낙안은 아버지 성한모가 ‘폭압의 시대’였던 시기에 수많은 희생자중 한 명일 수밖에 없었던 비극에서 클라이맥스를 제공한다.

마루구스병이라 이름 지어진 설사병이 간첩들과 접선한다는 증거라고 주장하는 중앙정보부는 설사를 하는 모든 사람들을 잡아다 고문을 하고 강제 진술을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장실장이 이발소에 있는 와중에 낙안이 계속 설사를 하자 그의 눈치를 보느라 한모는 아들을 파출소에 데려다 준다. 시간이 지나고 낙안을 찾으러 파출소에 간 그는 낙안이 이미 되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끌려갔음을 알게 된다.

마치 빨갱이 색출작전 때처럼 자신이 살기 위해 자신의 이웃을 고발하는 일들이 효자동에서도 잇달아 벌어지고, 이들이 고문을 당하는 장면은 고통스럽게 화면에 울려 퍼진다. 이 사건이 벌어지지 전까지만 해도 폭압적 정권의 희생자가 아니었던 효자동 사람들의 삶에도 본격적으로 비극적이고 끔찍한 일들이 벌어진다. 한모가 간첩을 신고하고 대통령의 이발사가 된 것이 어떻게 보면 장실장과 박부장의 세력다툼 사이에서 덕을 봤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면, 낙안은 장실장과 박부장의 세력다툼의 희생자가 된다.

- 눈물겨운 부성애

<효자동 이발사>는 이렇게 20년의 격변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소시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군중 장면이 여러 차례에 걸쳐 등장한다. 부정선거 개표장면, 4.19시위 현장, 대통령 장례인 국장 장면 등은 한모의 중요한 개인사와 겹쳐진다. 단순히 낙안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태어나고 한모가 대통령의 이발사였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라, 한모와 낙안이 대통령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 된다는 설정이다.

대통령은 “ 배운 것들이 나라를 망친다”면서 무지하고 순진한 한모를 성실장이라 부르며 좋아磯? 그는 한모에게 술을 함께 마실 것을 권하고 청와대 정원에서 열리는 가족동반 파티에 성모가족을 초대한다. 대통령과 영부인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선 성모 가족은 거기에 있는 어떤 가족보다 촌스러워 보이고, 낙안은 대통령의 아들이 아버지를 놀리는 것을 참지 못하고 홧김에 그 애를 밀쳐낸다. 박부장은 “ 경호를 어떻게 하느냐”며 장실장을 탓하고 장실장은 한모에게 분풀이를 한다. 구둣발로 여러 번 걷어차인 한모는 절뚝거리며 청와대를 나와 오히려 낙안을 업고 넉넉한 부성애로 아들을 감싼다.

이렇게 아들을 업는 장면은 이후에 낙안이 전기 고문의 충격으로 걷지 못하는 것을 암시해 둔다. 낙안을 업고 백방으로 아들 다리를 고치기 위해 전국을 헤매다가 만난 산속에 살고 있는 도사는 성모가 납득하기 어려운 예언과 처방을 내린다. 하지만 결국 그 도사의 말대로 해결되면서 한모와 낙안은 대통령과 뗄 수 없는 인연이 있음을 강조한다.

각본ㆍ감독을 맡은 임찬상은 정치 격변사를 고달프지만 숙연히 견뎌 낸 아버지 세대에 대해 얘기하면서 헤아리기 어려운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전달해 주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체적인 영화의 흐름은 부정선거와 연관된 한모의 무지와 죄책감, 한모가 대통령의 이발사가 되서 벌어지는 에피소드 중심의 전개, 고문과 희생의 드라마틱한 이야기, 아들을 위한 눈물겨운 부성애라는 서너개의 다른 드라마가 고르지 않게 섞여 있다.

따라서 영화는 휴먼 코미디, 리얼리즘 경향의 정치적 드라마, 가족 멜로 드라마, 정치 풍자극 등의 여러 가지 요소가 결합되기도 하고 떨어져서 진행되기는 하는 다양한 양상을 띤다. 이 점은 20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에서 국가와 한 개인의 역사에서 발견되는 상이한 특성이라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지만, 한 편의 영화가 가져야 할 일관된 주제와 스타일의 통일성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된다. <효자동 이발사>는 독특한 소재와 훌륭한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한 편의 영화에는 너무 많다고 생각되는 내용과 형식을 담고 있다.

시네마 단신
  
- 성인대상 제한상영관 문 연다

5월 14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성인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제한상영관이 문을 연다. 영화사 유니코리아가 지난 2월 제한상영관의 4월 개관을 추진할 계획을 밝힌 바 있으나 6월 초로 미뤄졌던 터다. 배급사 듀크시네마는 4월 29일 “ 10여개 극장들과 제한상영가 등급의 영화에 대한 배급계약을 맺었으며 다음달 14일부터 일부 극장을 오픈한다”고 밝혔다.

듀크시네마가 29일까지 계약했다고 밝힌 극장은 서울의 매직시네마, 대구의 해바라기극장 등 12개 극장. 듀크시네마는 "계약 극장이 40개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 “ 카트린 브레이야 감독의 <로망스>와 <지옥의 체험>, 고프 루이스 감독의 <애나벨청 스토리> 중 한 편이 첫 상영작이 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채윤정 영화 평론가 blauthin@empal.com


입력시간 : 2004-05-0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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