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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의 문화읽기] 문화에 대한 글쓰기


2002년 3월 어느 날의 일이었다. 어느 시사주간지 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매주 문화와 관련된 10매 분량의 글을 써줄 수 없겠느냐는 이야기가,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와 함께 전해져 왔다. 처음에는 잘못 걸린 전화라고 생각했다.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에게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부탁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잘못 걸려 온 전화는 아니었다. 문화이론의 바깥에 있는 사람의 시선으로 여러 문화현상을 짚어 가는 것이 해당 지면의 기획의도라는 설명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가 되어 매주 문화현상에 대한 글을 쓸 엄두는 나지 않았다. 생각을 해 보자며 연기(延期)의 술책을 부려보았지만, 기자의 청탁 내공도 만만치 않았던지라, ‘ 두 달만 쓰자’라는 생각으로 청탁을 받아 들였다. 그렇게 시작된 원고는 그 이후로 만 2년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개인적인 기억에 의존해서 말하자면, 1990년대 이전까지 문화는 우리의 일상 생활 저 너머에 존재하는 지극히 고상한 영역이거나, 유행가 가락처럼 우연히 찾아왔다 덧없이 잊혀져 가는 대중적 유희물로서의 성격이 강했던 것 같다. 문화는 비속한 세태와 스스로를 구별짓는 자긍심의 표지였고, 동시에 알아도 그만이고 몰라도 그만인 그 무엇이었다. 물론 고상함과 덧없음의 모순적인 결합이, 지난 시대의 문화적 특징으로 한정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문화적 태도들의 복잡성은 문화를 대하는 가장 일반적인 관습이며 오늘날까지도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문화와 관련된 두 가지의 중요한 변화가 발생했다. 하나는 문화가 ‘ 대충 보아 넘기기’의 대상이 아니라 ‘ 맥락을 따져 읽기’의 대상으로 변모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문화가 일상과 구별되는 비일상적인 영역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문화가 혼재된 ‘ 문화적 일상’이 출현했다는 점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출현은 문화가 읽기의 대상이라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고, 컴퓨터와 인터넷의 보급은 우리의 일상과 문화를 마치 하이퍼텍스트처럼 구성해 가기 시작했다. 사회의 변화를 가져오는 근원적인 동력이 권력이나 노동에 있다고 생각하는 종전의 패러다임에서, 문화적인 것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도입되는 시기였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 서태지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서 촉발된 문화비평이, 1990년대 중반 이후의 문화적 일상과 대면하게 되면서 구체적인 문화비평보다는 문화이론과 문화운동 쪽으로 수렴되어 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문화이론이나 문화운동과 구별되는 지점에서, 문화에 대한 글쓰기는 어떠한 지향점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 문화와 매개된 일상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문제가 가장 절실한 것이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처음부터 이러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조금씩 깨달으며 형성하게 된 문제 의식이라서 더욱 각별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문제 의식에 충실하게 접근해 갔는지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회의적이다. 문화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문화는 취향의 무의식이 발현되는 독특한 영역이며, 인간에게는 문화에 대한 다양한 갈망이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문화를 즐기고 사람들과 즐거움을 나누는 일은 무척이나 의미 있는 과정이다. 다른 사람들의 문화적 취향을 존중하고 서로의 문화적 관심과 소통하는 일은, 문화의 다양성과 민주적 가치가 결합되는 지점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문화가 정치를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화의 다양성과 대화성은 정치의 경직성을 누그러뜨리는 중요한 원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어쩌면 문화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은 술래잡기 놀이와 비슷할 지도 모른다. 어느 곳에나 있을 것 같고 그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친구(곧, 문화)를 찾아서 이곳 저곳을 살피는 술래잡기 놀이. 힘겨운 적도 많았지만 놀이와도 같은 여행이었다. 주간한국의 독자들과 편집팀에게서 새삼 인연의 소중함을 느낀다. 감사를 드리고 싶다.



김동식 문화평론가 tympan@empal.com


입력시간 : 2004-05-06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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