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 나게 살고 싶었던 아웃사이더의 고달픈 삶임권택 사단의 젊은 시절 반추한 '그때 그 시절'

[시네마 타운] 하류인생
폼 나게 살고 싶었던 아웃사이더의 고달픈 삶
임권택 사단의 젊은 시절 반추한 '그때 그 시절'


임권택은 멀게는 1981년 베를린 영화제 본선진출작인 <만다라> 이후 지속적으로 국제적 명성을 쌓아 온 감독이다. 그의 영화가 한국의 근대사 혹은 문화를 대변한다고 여겨지는 것은 임 감독의 영화가 다루고 있는 소재가 불교(<만다라>, <아제아제바라아제>), 남북이산가족(<길소뜸>), 빨치산(<태백산맥>), 장례의식(<축제>), 판소리(<서편제>, <춘향전>), 한국화(<취화선>) 등 매우 다양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소재가 달라도 일관되게 그의 영화에서 발견되는 감정은 흔히 ‘한’으로 집약되거나 혹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삶’으로 축약된다.

- 암울한 시대를 산 한 남자

195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을 다루는 <하류인생>은 임권택 감독, 이태원 제작자, 정일성 촬영감독, 신중현 음악감독의 젊은 시절에 대한 회고적 성격이 짙은 영화다. 특히 각본까지 담당한 임 감독은 여러 인터뷰에서 영화의 등장 인물이나 배경을 자신과 어느 정도 동일시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완전히 자전적인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하류인생>에는 많은 관객이 임 감독과 그의 동지들의 과거가 영화에 녹아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류인생>이 정치적으로 혼탁하고 억압적 시대를 다루고 있는 방식은 <노는 계집:창>(1997)과 유사하다. 주인공들이 정치적 억압 혹은 변혁의 중심에 서 있는 게 아니라 전혀 존경 받지 못하는 직업(깡패와 창녀)에 종사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시대의 흐름과 뗄 수 없는 삶을 지속한다. 다른 부분이 있다면 <노는 계집:창>은 7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의 시기를, <하류인생>은 그 이전 시대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또 전자의 주인공 영은은 정치적 변화(박 대통령 장례식, 5ㆍ18사태, 6ㆍ29 선언 등)를 TV 등 대중매체를 통해 접하지만, 후자는 4ㆍ19 혁명이나 유신반대 데모의 현장에 있고, 5ㆍ16 혁명과 동시에 첫 아들이 태어난다거나, 혹은 이후의 정권 변화가 주인공의 삶과 직접 연관을 맺는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영화가 닮은 점은 특정한 인물의 삶을 이야기할 때 인간 승리, 성공, 혹은 죽음과 같은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임 감독의 다른 대표작들처럼 주인공이 영웅 혹은 반영웅이라는 카테고리에 빠지지 않으면서 다양한 에피소드가 인생의 굴곡의 넘나들 뿐이다.

<하류인생>의 주인공 태웅(조승우)은 아무런 부연 설명이나 안내 없이 첫 장면에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으로 등장한다. 이웃학교 학생에게 얻어맞은 친구의 복수를 해주고 다시는 자신의 학교 학생들을 건드리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모두 태웅의 싸움실력과 분노를 이글거리는 눈빛에 기가 죽어 있을 때 승문(유하준)은 아무도 대항하지 않는데 화가나 태웅의 다리에 칼을 꼽고 도망친다. 마치 <말죽거리 잔혹사>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듯한 (비록 배경과 저항의 의미는 다르지만) 이 에피소드는 태웅이라는 인물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는 부분이지만, 그보다는 앞으로 태웅의 인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들과의 관계를 시작하기 위한 장치로 기능한다.

- 건달에서 사업가로 변신 거듭

승문의 집에 찾아간 태웅은 승문의 아버지 박일원과 (몇 년후 태웅의 아내가 되는) 누나 혜옥(김민성)을 만난다. 자유당의 사주를 받은 동대문파가 민의원 선거에 나선 박일원의 행사장 난입을 지켜보던 태웅은 그들을 쫓아가 때려눕힌다. 그 일로 명동파 보스로 인정을 받고 건달 세계에서 자리를 잡는다.

자유당 정권의 몰락과 함께 동대문파와 명동파도 몰락한다. 혁명정권이 폭력 조직의 일소를 실시함 따라 태웅도 건달 생활을 청산하고 영화제작업자의 길을 걷는다. 명동파의 중간보스였던 오상필(김학준)을 통해 태웅은 미군 군납업계에서 일하다 이권다툼에 휩쓸린 상필이가 총에 맞고 반신불수가 되자 직접 사업 경영에 뛰어든다.

여러 에피소드를 나열하며 태웅의 죽음까지, 혹은 그 이후까지 그의 인생이야기는 지속될 수 있겠지만, 영화가 끝나는 지점은 30대 초반의 젊은 사업가 태웅이 자신의 부의 축척을 위해 이용하고, 또 이용당했던 권력에 대항하다 폭력을 당한 직후다. 왜 거기서 끝나야 되는지에 대한 답변은 사건이 있기 전, 혜옥이 태웅에게 불만을 토로할 때 이미 제시된다. 태웅은 “한 번 폼나게 살아보기 위해”라고 권력의 시녀노릇을 변명하지만, 늘어난 재산과 더불어 정신적으로 황폐해지고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는 점이다. 태웅과 혜옥이 바로 그 권력에 의해 구타를 당한 것은 태웅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에피소드 중심의 느슨한 이야기 나열은 <하류인생>이 임 감독의 다른 영화와는 유사성이 있지만, 원인과 결과에 대한 내러티브 구조라는 관습적 영화 형식과 비교하면 영화보다는 TV시리즈에 가깝다. 특히 대규모 군중이 등장하는 시위 장면을 제외하고 멜로드라마나 건달 액션 장면들은 TV를 통해 친숙해진 경험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 굴곡진 인생의 지루한 나열

‘화려하면서도 슬픈’ 명동거리나 수십수백 마리의 금붕어가 어항이 깨지며 쏟아지는 장면 등은 영화적 즐거움을 맛보는데 손색이 없지만,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편안함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종의 지루함이 교차하는 체험은 몇 가지 TV드라마를 번갈아가며 보고 있거나, 혹은 몇 회에 걸친 드라마를 연이어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임권택처럼 그 시대를 살아온 한 남성의 인생 굴곡을 정치적 배경과 교차적으로 직조하며 스크린에 담아낼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류인생>은 감독이 쌓아온 영화의 경지나 범주를 뛰어넘지 않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오랜 기간 한국영화의 역사를 이어가는 임 감독과 그의 제작팀의 작업이 지속되는 것은 우리 영화계의 미래를 위해 무척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시네마 단신
   
- 이현세 원작 <블루 엔젤> 영화화

이현세의 <블루 엔젤> 이 드디어 영화화된다. 1988년부터 일간스포츠에서 연재된 < 블루 엔젤>은 강력한 여형사 하지란을 내세워 큰 인기를 끌었고, 여러 차례 영화 기획화가 시도되었지만 캐스팅, 제작비 문제 등으로 제작되지 못했다. 시네마서비스가 캐스팅은 물론 시나리오조차 나오지 않았던 지난 3월, 시놉시스만을 가지고 이례적으로 투자를 결정한 것은 <2009 로스트 메모리즈 >(2002)의 이시명 감독의 연출력을 높이 샀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에스엠필름은 창립작품인 <블루 엔젤>의 제작비 규모를 광고 마케팅비를 포함해 약 60억원 정도라고 밝혔다. 2005년 설 개봉이 목표다.

- <올드보이> 최민식 캐릭터 인형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이 맡은 캐릭터 '오대수'의 수작업 피겨(캐릭터 인형)가 선보인다. 비디오ㆍDVD 제작사 스타맥스는 14일 이 영화의 DVD 출시를 앞두고 오대수의 피겨 20개를 제작했으며 DVD 구입자에게 추첨을 통해 나눠줄 예정이다.

스타맥스는 "수작업으로 만든 만큼 20개가 모두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는 작품이며 수차례 수정작업을 거쳤기 때문에 제작비는 개당 100만원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30㎝를 조금 넘는 오대수의 피겨는 영화에서처럼 장도리를 들고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있다. <올드보이>는 영문도 모른 채 15년간 감금됐던 '대수'와 그를 가둔 남자 '우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이다.

채윤정 영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4-05-20 13:50


채윤정 영화평론가 blauth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