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의 세계] '대박'에 대한 오해


TV홈쇼핑 채널에서 소개하는 제품들은 같은 제품이라도 일반 유통업체보다는 무이자 할부라든지 가격에서 유리한 면이 있다. 유통 매장의 제품에는 점포 유지비, 직원 급여 등이 가격 원가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TV 홈쇼핑 채널은 제품 경쟁력이 있음에도 유통망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홈쇼핑 채널을 통해 소위 ‘히트 상품’으로 자리매김한 제품들도 많다.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떻게든 연줄을 만들어 TV 홈쇼핑 채널의 상품 기획가인 MD를 만나려고 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잘하면 1시간에 2억-3억원 정도의 매출은 너끈히 올릴 수 있는 채널이니, 당연하다. 목 좋은 곳에 매장을 여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TV홈쇼핑 채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메커니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그저 방송만 되면 ‘대박’을 터뜨리는 곳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또 TV 홈쇼핑 채널의 문턱이 너무 높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홈쇼핑 종사자에게도 나름의 고민이 있다. 개인 차는 있겠지만 하나의 상품이 방송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서너 달 정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아무리 ‘히트’를 쳤다 해도 한두 달 지나고 석 달째가 되면 시청자는 외면을 해버리기 때문에 제품을 계속 엎그래이드 하거나, 다른 제품으로 대체하지 않고서는 살아남기 힘들다. 생산업체들은 이런 특성을 제대로 알지 못해 종사자들과 티격태격하곤 한다.

몇 해전 더플코트가 TV 홈쇼핑 채널마다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한 적이 있었다. 필자는 아직 쇼호스트라는 직업을 갖기 이전이었지만, 거리나, 버스 지하철에서 보이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정도의 사람들 중 절반 정도가 더플코트를 입고 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서 메이커를 불문하고 의류를 생산하는 회사라면 가을ㆍ겨울 아이템은 무조건 더플코트였을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 속된 말로 찍어내면 바로 나갈 정도로 초히트를 쳤던 더플코트였고, 당연히 의류 생산 업체들은 미리 넉넉하게 만들지 못한 것을 한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 업체들은 이듬해 겨울을 기약하며 어마어마한 양의 더플코트를 창고에 쌓아놨다고 한다. 하지만 비극은 이 때부터. 가을ㆍ겨울 시즌에 맞춰 의욕적으로 ‘작년 초히트 아이템 더플코트, 올 가을 겨울 재 상륙!’ 등 비슷한 타이틀로 방송을 쏟아냈건만 시청자의 반응은 썰렁했다. ‘어 이게 아닌가 보다’하면서도 ‘그래도 설마’하는 마음으로 가격을 깎고, 무이자 할부를 늘리고, 사은품도 주는 등 안간힘을 썼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의류 생산업체 중 대부분은 아직도 영세한 규모여서 재고는 곧 경영의 독이 된다.

하지만 TV 홈쇼핑 채널 입장에서는 인기가 없는 더플코트 아이템의 방송 편성을 줄일 수 밖에 없었다. 방송을 내본들 반응이 없으니 예정 시간보다도 시간을 더 줄이고 다른 아이템으로 바꿀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쉬운 한탄과 불평이 쏟아진다. 당초 예정된 방송 시간보다 겨우 3~4분이 덜 나갔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호소하는 중소기업 사장도 본 적이 있다. 나이도 지긋한 분이 새파랗게 젊은 방송 담당자 앞에서, 그것도 3~4분 때문에 눈시울이 붉히는 곳이 바로 홈쇼핑 방송이다. 가슴은 아팠지만, 그게 TV 홈쇼핑 채널의 생리이기도 하다.

잘 나갈 때는 그렇게 좋던 관계가 한 순간에 서로 욕지거리를 퍼부을 수 있는 곳. 일말의 동정심도 없고, 오로지 나타나는 결과로 모든 것이 평가되는 곳. 그것이 TV 홈쇼핑 채널이 방송만 하면 무조건 돈이 되는 도깨비 방망이가 될 수 없는 이유이다.

입력시간 : 2004-05-20 16:08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