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여인'이 이만할까?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함박꽃나무
'천상의 여인'이 이만할까?

비가 유난히 많은 5월이다. 비 그치고 나니, 습기까지 품은 더위가 만만치 않다. 봄날은 이렇게 가는가 보다. 이즈음, 산골짜기마다 함박꽃나무가 꽃망울을 매어 달기 시작할 것이다. 함박 같은 웃음을 활짝 웃으며 말이다. 함박눈처럼 순결하고, 함지박처럼 넉넉한 크고 희며 아름다운 함박꽃나무. 게다가 아침 일찍 고개 숙인 꽃송이에 이슬이라도 맺고 함초롬히 피어나면 함박 마음을 주어야만 할 듯 싶은 정다운 나무.

함박꽃나무는 목련과에 속하는 낙엽성 활엽수인데, 나무의 높이가 어중간하여 소교목으로 분류한다. 깊은 산골짜기, 무성한 숲 사이에서 빈 자리마다 많은 가지를 내 잎을 매어 단다. 넓은 타원형의 잎새는 조금이라도 빛을 더 받으려는 듯 큼직하고, 잡다한 가장자리 톱니나 뚜렷한 엽맥같은 것은 만들지 않고 싱그러워 시원한 느낌을 준다. 여름이 가까워져 함박꽃나무의 잎새들마저 무성해질 무렵, 그 사이 사이에서 하얗고 주먹만한 꽃송이를 매달고 아름답게 피어 난다. 소박한 우리의 자생하는 꽃들 가운데 꽃의 크기가 이 만큼 큰 나무를 찾기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꽃송이가 너무 커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한 탓일까? 아니면 산골 처녀의 수줍음 때문인지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며 피어 있는 자태는 가히 천하일색이다. 이 탐스러운 꽃에서 풍겨나오는 향기 또한 일품이다, 숲속에 다른 나무들과 어우러져 미처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그 향기로 느낄 수 있느니 말이다.

가을에 익는 열매 또한 특색있다. 우리의 붉은 고추와 서양의 붉은 피망의 중간 크기와 모양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생긴 열매는 방방이 갈라지고 그 속의 주머니에는 하얀 실로 연결되어 매달린 주홍색의 종자들이 두개씩 고개를 내민다. 이 씨앗은 새들이 아주 좋아하는 먹이가 되어 열매가 벌어질 즈음에 함박꽃나무는 산새들의 놀이터가 되곤 한다.

함박꽃나무는 목련들과 같은 성을 쓰는 한 형제이면서도 잎이 먼저 나온 다음 꽃이 피는 것이 다르고, 유별나게 혼자만 고개를 숙이고 있으며, 이른 봄을 장식하는 다른 목련들과 달리 봄을 보내거나 여름을 맞이할 때 피는 점이 다르다.

함박꽃나무는 우리나라의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데 단 함경도에서만은 너무 추운 탓인지 자라지 않는다. 이웃나라 일본과 중국에서도 함박꽃나무는 자라지만 일본의 경우, 아주 희귀하여 그 자생하는 군락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놓을 정도라고 한다.

사람들은 흔히 함박꽃나무를 산에서 피는 목련이라 하여 산목련이라고도 하고 지방에 따라서는 함백이라고도 하며, 조금 격을 낮춰 개목련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한자 이름으로는 천녀화(天女花)라고 하여 ‘천상의 여인’에 비유하였으니 꽃나무에 두고 이보다 더한 찬사가 어디 있을까? 함박꽃이란 이름은 작약을 두고도 그렇게 부르는데 두 식물 모두 큼직한 꽃송이가 보기에 좋다.

북한에서는 함박꽃나무를 두고 목란이라고 부른다. 나무에 피는 난초 같다는 뜻일 게다. 사실 우리는 북한의 나라꽃이 진달래로 알고 있지만, 함박꽃나무(목란)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물론 한 개인의 취향에 따라 나라 꽃이 바뀌는 그 곳 현실이 가슴 아프기도 하지만 선택된 꽃만은 좋다.

함박꽃나무는 한방에서도 이용한다. 대게는 뿌리를 이용하는데 진통, 하열, 이뇨, 조혈 등에 효능을 가지고 있으며 꽃 역시 약재로 이용하는데 향기가 강하고 맛이 쓰며 안약으로 쓰거나 두통 등에 처방한다고 한다.

또한 중국에서는 씨를 싸고 있는 붉은색 껍질을 고급 요리의 향신료로 이용한다고 하는데 종자의 껍질을 벗겨 말려 가루로 빻으면 우리의 초피가루처럼 맵고도 향그러운 독특한 향신료가 된다고 한다. 깊은 산에서 우연히 만난 함박꽃나무의 함박같은 모습과 은은한 향기를 만나며 이 봄을 보내려 한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원


입력시간 : 2004-05-26 20:27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원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