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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마 타운]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만남 그리고 죽음, 그 이후
한국·홍콩 합작, 코믹·비극적 멜로·액션의 혼합물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이하 여친소)는 제작 단계부터 주목을 끈 영화다. 2001년 흥행작 <엽기적인 그녀>의 곽재용 감독과 전지현이 다시 작업을 한다는 것과 <와호장룡>과 <영웅>의 프로듀서인 에드코 필름의 빌 콩 대표가 제작비 전액을 투자한다는 것, 개봉 전 한국에서 시사회가 있기 전 홍콩에서 대규모의 시사회가 열렸다(한국에서는 그래서 개봉 4일전에서야 시사회가 있었다)는 점 등이다. 하지만 외적인 뉴스들은 영화 자체와는 그다지 상관이 없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외형적인 기대감이 지나치면 실망만 커질 수도 있다.





<엽기적인 그녀>의 ‘그녀’와 그녀의 남자친구(차태현)의 관계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여친소>를 즐겁게 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그녀의 밝고 엉뚱하고 거친 태도 때문에 발생되는 코믹함만을 기대한다면 <여친소>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왜냐하면 <여친소>의 반 정도는 <엽기적인 그녀>와 비슷하지만 나머지 반은 그녀의 비극적인 사랑으로 가득 차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친소>는 한 편의 일관된 이야기라기보다는 1편 ‘만남’ 그리고 2편 ‘죽음, 그 이후’로 분리시킬 수 있다. 게다가 <엽기적인 그녀>처럼 이야기 안의 이야기가 등장하기 때문에 장르적 복합성을 차치하고라도 몇 편의 다른 영화가 될 수 있다. 덧붙여 두 주인공이 생사를 넘나드는 경우가 여러 번 등장하기 때문에 도대체 영화는 언제 끝나는 건지 불평을 늘어놓게 된다.


- 로맨틱 코미디와 비극적 멜로드라마, 엽기적인 경진과 애처로운 경진

<여친소>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장면은 유미가 부르는 밥 딜런의 ‘Knocking on Heaven's Door'가 흐르는 서울의 야경 장면이다. 뉴욕이나 파리, 혹은 동경의 야경은 여러 영화에 매력적으로 등장했지만 서울의 야경은 늘 유흥가나 어두컴컴한 밤길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멋지게 등장한 적 없다(국가 안보상 비행금지구역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인데, 서울시가 이 영화를 통해 서울을 홍보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 항공촬영을 허가했다고 한다). 빌딩 숲 곳곳 한글이나 낯익은 빌딩들이 보이는 밤풍경은 음악과 어우러져 서정적이고 시적이기 까지 하다.

유연하게 하늘을 나는 듯한 카메라 움직임은 고층빌딩 꼭대기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경진(전지현)을 배경으로 명우(장혁)가 그녀에 대해 나래이션 하는 걸로 시작한다. 그 시점에서 명우는 이미 죽었지만 그래도 그는 경진에 대한 일종의 시선 혹은 권력을 갖고 있다. 이는 그가 경진이 어느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고 얘기하는 것과 뭔가 일치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경진은 명우의 존재에 의해 그녀의 삶 자체를 통제 당한다.

그들이 처음 만나게 된 건 직업의식이 지나치게 투철한 경진이 휴무인 날 목욕탕에서 나오다가 소매치기를 뒤쫓게 되면서다. 경진은 소매치기를 쫓고 있던 명우를 범인으로 오해하고 그를 경찰서로 끌고 온다. 이렇게 오해로 시작한 둘의 관계는 우연히 다시 경찰서에서 만나 청소년선도를 위해 번화가를 정찰하는 임무의 파트너가 된다. 그리고 경진은 위험한 일에 끼어들기 싫다며 돌아가려는 명우를 붙잡아두기 위해 명우와 자신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게 되고, 열쇠를 잃어버린 경진은 결국 수갑을 찬 채로 명우와 묘기에 가까운 모습으로 번갈아가며 세수를 하고 로션을 바르고 서로 다른 침대에서 새끼손가락을 건 채 한 방에서 잠을 잔다.

이들의 관계는 둘만 떠난 여름여행에서 발생한 사고로 인해 더욱 가까워진다. 폭우가 쏟아지고 도로로 바위들이 굴러 떨어져 자동차가 물속에 가라앉게 되고 머리를 맞고 의식을 잃은 명우를 구하기 위해 경진은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 그리고 “따라죽기 싫어서”라고 대꾸하는 경진은 그녀가 경찰로서 보여준 강하고 장난스럽고 엉뚱하고 무례한 모습과 더불어 엽기적인 그녀와 아주 닮았다.


- 엽기적인, 그리고 애처로운

그러나 영화가 로맨틱 코미디와 비극적 멜로드라마로 분리가 되어 있듯이 주인공은 ‘엽기적인 경진‘과 ‘애처로운 경진’으로 나뉜다. 미모의 경찰인 경진은 밤거리를 다닐 때 다양한 남성들로부터 성차별적이거나 성희롱에 해당하는 언행에 시달린다. 그럴 때마다 경진은 “맞짱을 뜨자”며 경찰보다는 조폭같은 전투적 태도로 임한다. 그러다가도 자신에게 쌍둥이인 언니가 있었는데 그 언니가 자기 대신 졸업사진을 찍으러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대목에서는 일차적으로 애처로운 경진이 되었다가, 명우가 사망하고 난 다음에는 눈물겹고 비극적인 멜로의 여주인공으로 거듭난다.

경진이 원래는 피아니스트를 꿈꿨는데 대신 사망한 언니의 꿈을 이루기 위해 경찰이 되었다는 점은 경진의 어쩔 수 없는 이중성에 대한 하나의 이유를 제공한다. 하지만 후반부 그녀가 명우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는 긴(지겨운) 장면들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범인을 잡고 무자비한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은 영화에서 제공된 이유만으로 경진을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 그녀가 긴 머리를 휘날리며 방아쇠를 당기고, 그녀의 매력적인 육체 뒤로 범인이 탔던 차가 폭파되는 장면, 탈주중인 위험한 범죄자와의 대결에서 유모차에 탄 아이를 구하려다 총에 맞는 장면 등은 경진이라는 캐릭터를 위해 존재한다기보다는 이전의 다른 영화들에서 봤던 매혹적인 여전사의 이미지를 모방하는 진부한 장면들이다.

<엽기적인 그녀>의 그녀가 당돌하지만 지고지순한 여성상에 지나지 않았다면, <여친소>는 무력과 총기를 사용하는 외형적으로는 강인한 경찰이지만 쌍둥이 언니의 죽음과 사랑하는 남성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는 나약한 여주인공을 내세운다. 그녀는 바람처럼 자유롭고 싶고 바람을 맞으면 자신이라고 생각하라는 명우의 말을 떠올리며 바람만 불면 죽은 남자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기억에 사로잡힌다. 또한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를 연주하는 고상함과 상스러운 말도 입에 담고 가차 없이 무력을 사용하는 버릇없는 모습을 오가며, 서양의 공주가 되는 상상을 하면서 불교에서 유래한 49제를 믿는 국적 없는 인물이 되기도 한다.

귀엽고 거칠고 애처롭고 강인한 경진의 이런 이중적인 모습은 인물의 다양한 측면을 묘사한다거나 단순히 멜로나 코미디의 한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는 복합성으로 이해될 수 있지만, 동시에 코믹한 장면은 극적인 멜로의 감정이입을 방해한다. 예를 들어, 첫 부분에 경진이 빌딩 아래로 떨어지는 장면은 후반부에 명우를 잊지 못하고 실제로 떨어지는 장면으로 이어지는데 명우가 바람이 됐다는 설정은 경진이 바람에 날아온 거대한 풍선에 푹신하게 떨어져 하늘을 날다가 어느 이상한 예술가(혹은 음악가)의 오피스텔 천장을 뚫고 침대위로 안착하도록 만든다. 하늘을 비상하는 야경의 아름다움과 음악의 서정미는 이런 비현실적인 웃기는 설정으로 인해 애초에 관객에게 전달되었던 감정을 의미 없음으로 변화시킨다.

그러나 <여친소>는 주인공 남녀의 키스씬 마저 코미디로 만들고 오히려 인공호흡장면으로 대신하게 만들었듯이 주요 관객 층을 10대로 설정하고 있다. 코믹과 멜로와 액션을 넘나드는 고민 없는 발랄함도 성인 관객보다는 장르와 내용 혼합에 더 익숙한 관객들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10대들이 선망하는 엽기적인 대학생 커플도 아닌 20대 중반의 직장인들의 짧고 비극적인 사랑에 한국 혹은 중국의 10대들이 얼마나 열광할지다.

시네마 단신
  
- 이명세 감독<조선무협> 시나리오 작업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이명세 감독이 드라마 <다모>에서 모티브를 딴 조선 여형사에 관한 <조선무협>(가제)의 시나리오 작업에 착수했다. 주인공으로 <다모>의 하지원이 캐스팅된 상태이고, 투자와 배급은 코리아 픽쳐스에서 맡는다.

김기덕 감독의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이 4월 뉴욕과 로스엔젤레스에서 개봉한 이래 지난달 샌프란시스코와 워싱턴으로 확대 개봉했다. 개봉 두 달째인 5월 셋째주 주말에는 미 전역 57개 극장에서 상영해 총 110만 달러의 수익을 거뒀다. 이 액수는 미국에서 개봉된 한국 영화 중 가장 좋은 실적이다.




채윤정 영화평론가 blauthin@empal.com


입력시간 : 2004-06-08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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