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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속으로] <령> 시사회


극장의 오른쪽 맨 끝 통로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싶어 고개를 돌려보았다. 워낙 손살같이 달려가는 바람에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기자시사회에 참석한 기자가 아닌 것은 확실했다. 제 아무리 ‘튀는’ 기자라고 해도 그렇게 노출이 심한 드레스를 입고 왔을 리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드레스 입은 여자의 정체는? 궁금증은 곧 풀렸다. 그녀는 바로 신이. TV 연속극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의 감초 연기로 인기 상종가를 달리고 있는 그녀가 아닌가.

“안녕하세요. ‘신이’입니다. 제가 늦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은데, 저 사실 한 시간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원래 주인공은 맨 마지막에 나오는 거잖아요.(웃음)”

누가 이 여배우의 능청스러운 애교에 돌을 던질 수 있으랴. 신이는 기자들로부터 큰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그리고 무대에서 내려가기 전, 신이는 기자들을 향한 이런 부탁도 빠뜨리지 않았다. “새로운 이미지로 변신해 찍은 작품입니다. 저 등장할 때 절대 웃지 말고 봐주세요. 제발…….”

그렇게, 지난 6월 7일 오후 2시 서울극장 2관에서 마련된 영화 <령>의 기자시사회 무대인사는 신이의 의도하지 않았던 ‘오프닝 쇼’로 마무리되었다.

신이의 부탁이 기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탓일까. ‘일단 보면 웃음부터 나오는’ 감초 배우 신이가 드디어 영화 중간에 등장했지만 피식 웃음을 흘리는 기자는 없었다. 죽은 친구의 혼령에게 시달리다가 정신병원 신세를 지고 끝내 죽음에 이르고 마는 여자 역할을 신이가 잘 소화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배우의 이미지 변신이 성공적이었다고 해서 그것이 영화의 전체적인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영화 <령>이 그런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만 스물 아홉인 젊은 감독 김태경의 데뷔작 <령>은 여러 면에서 넘치는 의욕이 엿보이지만, 하나의 장르 영화를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면에 있어서는 여러모로 힘이 부쳐 보인다. 특히, <령>에는 최근 몇 년 사이 반복된 공포영화의 ‘뻔한’ 공식들이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어 더욱 식상한 감을 준다.

나카다 히데오의 일본영화 <링> 이후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라스트신의 귀신 출현 장면은 <령>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아울러 <식스 센스> 이후 마치 강박처럼 등장하는 마지막의 반전도 <령>에서 ‘뻔하게’ 답습되고 있다. 100분 가량의 러닝타임 동안, 섬뜩한 공포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돋아나는 고독과 슬픔을 동시에 담아낸다는 것이 ‘어정쩡한 내공’으로는 무리수라는 게 영화 <령>을 통해 다시 한 번 증명된 셈이다.

배우 김하늘은 이번에 <령>에 출연하게 됨으로써 공포영화라는 새로운 장르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이번 일곱 번째 출연작에 대한 김하늘의 기대가 남달랐으리라. 무대인사를 통해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 멜로 영화를 찍었을 때는 관객들이 얼마나 많이 우는지를 보았고, 코믹 영화를 찍었을 때는 관객들이 얼마나 많이 웃는지 가슴 졸이며 보았어요. 이번에는 공포 영화를 찍었으니 여러분들이 얼마나 소리지르는지 봐야겠습니다. 무서운 장면이 나오면 맘껏 소리질러 주세요.”

하지만 시사회가 진행되는 동안 객석으로부터의 터져 나오는 비명 소리는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괜히 ‘무게 잡는’ 기자들이 객석을 메운 탓으로 돌리면 어쩔 수 없지만, 꼭 그 이유 때문은 아닌 듯 하다.



이휘현 객원기자 noshin@hanmail.net


입력시간 : 2004-06-18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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