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 인생 늙은 창녀…그는 왜 연쇄살인범이 됐나세상에 짓밟혔던 실존인물 에일린 워노스의 처절한 최후

[시네마 타운] 몬스터
밑바닥 인생 늙은 창녀…그는 왜 연쇄살인범이 됐나
세상에 짓밟혔던 실존인물 에일린 워노스의 처절한 최후


누구에게나 삶은 축복이다. 우리는 그렇게 믿고 또 믿고 싶어한다. 그러나 영화 <몬스터>의 주인공 에일린 워노스에게는 그런 말은 사치다. 그녀가 여덟살 때 아빠의 친구에게 강간을 당한 뒤로 그녀의 삶은 이전에 그가 가졌던 여배우가 되겠다던 꿈과 함께 무너져 버린다. 가족에게도 버림받고 스스로마저 희망을 버린 이 여자의 삶은 황폐하기만 하다.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큰 힘이 될 사랑과 희망이란 것을 느껴보지 못한 그의 삶은 길거리 위에서 유령처럼 둥둥 떠다닌다. 길에서 남자들을 유혹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고, 공중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자신의 몸을 사랑하지 않는 자의 머리는 헝클어지고, 얼굴은 쭈글쭈글하고, 배는 형편 없이 튀어나오고. 중년의 여자 에일린은 세상의 모든 것을 미워하며 살아간다. 돈과 혐오와 위선과 과장된 거만이 그의 삶을 지탱시킨다. 구원은 없다.

그렇게 길 위에 앉아 있던 에일린이 삶의 마지막을 결심한 순간 돌연 그녀에게 빛 한줄기가 비쳐진다. 죽기 전 한잔 하러 들렀던 바에서 귀여운 소녀 셀비를 만난 것이다. 아무도 늙고 흉한 창녀인 자신에게 인간적인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던 것과는 달리 셀비는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자신과 가까워지고 싶어한다. 에일린의 인생은 막다른 곳에서 발견한 이 생의 기쁨 한자락을 지푸라기처럼 부여잡고 도약하고 싶어한다. 구원의 빛이 보인다.

그러나 에일린은 다시 자신의 결심만으로는 절망뿐이었던 세상을 희망으로 되돌려 놓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절실히 느낄 뿐이다. 그는 마지막을 다짐하며 나갔던 밤일에서 자신을 폭행한 남자를 죽이게 된다. 에일린은 남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돈과 차를 뺏는 것이 가출로 불안한 마음인 셀비를 놓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연쇄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그런 돈으로 셀비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고 그녀를 웃게 만드는 잠깐의 행복을 즐긴다.

그러나 그를 그토록 짓밟았던 세상의 남자 여섯 명을 죽여버린 이 연쇄 살인범에게 탈출구가 있을 수 없다. 그녀는 재판정에 서고, 그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셀비는 법정에서 에일린을 배신한다. 구원의 빛은 꺼졌고, 그는 이제 죽음 앞에 있다.

이 처절하게 부서져버린 영혼 에일린 워노스는 실제 인물이다. 미국 최초의 여성 연쇄 살인범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이 여인은 미국 플로리다에서 1991년 체포돼 2002년 사형에 처해졌다. 이 여인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닉 블룸필드라는 다큐멘터리 작가에 의해 두 번이나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진 적이 있을 정도다. 이 다큐멘터리를 본 적은 없지만, 극영화로 만들어진 영화 <몬스터>는 그에 못지 않은 생생한 그녀의 절망감을 전해준다.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주연을 맡은 샤를리즈 테론 덕분이다. 바비 인형 같던 그가 괴물 몰골로 변신한 것은 이미 많은 화제가 된 바 있다. 실제 영화 속 그의 모습은 체중은 15㎏이나 늘리고 잇몸에도 패드를 넣고 주근깨까지 그려넣어 실제의 모습을 도무지 추측해 낼 수가 없을 정도다.

하지만 그가 돋보이는 건 외모의 변신보다는 실제 인물 에일린 워노스에 접근해 나가는 진지함이다. 배우들이야 수없이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가공의 인물을 자신이 자유롭게 만들어 나가는 것과, 이 영화에서처럼 실존인물을 재현해 나가는 것과는 또 다른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지독한 절망감과 쫓기는 자로서의 불안감이 뭉뚱그려져 편집증적인 사랑을 보이는 일르옜た?얼마나 깊숙이 자신을 대입시킬 수 있을 건가가 관건일 텐데, 테론은 세상 끝까지 몰린듯한 불안함을 욕설과 거드름으로 덧씌우려는, 그러나 한꺼풀만 벗겨내면 수십년 간 쌓여왔던 자기 혐오와 절망을 떨리는 목소리로 폭발시키고야 마는 에일린으로 완벽히 변신했다. 누구도 동정하지 않는 자신을 스스로마저 애처롭게 여기지 않을 때, 그러나 사랑에 대한 강렬한 욕구가 폭력으로 이어질 때, 한 여자가 어떻게 ‘몬스터’로 변해갈 수 있는가를 테론은 절절히 연기한다.

신인감독 페티 젠킨스의 연출 역시 진지함이 느껴진다. 그는 창녀라는 직업과 동성애라는 소재, 그리고 여성 두 명의 탈출과 살인 같은 자극적인 소재로 가득찬 영화를 훨씬 더 드라마틱하게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욕심을 다 버리고 한 여자가 서서히 무너져 가는 과정을 아주 담담하게 따라가고 있다. 너무 담담하고 밋밋해서 어떤 때는 좀더 극적인 욕심을 부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는 버림받은 여자의 절망과 불안에 계속 초점을 맞추고 흔들리지 않게 진지함을 추구해나가면서 결국 묵직한 감동을 안겨준다. 한 배우의 통찰력 있는 연기와 실존인물에 대한 진정성만으로도 이 영화는 봐야 할 가치가 있다.

■ 시네마단신
   

- 온라인 시나리오 시장 개설
영화 시나리오를 온라인으로 보고 구매할 수 있는 시장이 열린다. 영화진흥위원회(위원장 이충직)은 영화 시나리오 온라인 상설시장인 ‘한국영화 시나리오 DB’를 21일 개설한다. 여기서는 완성작에서부터 시놉시스까지 다양한 형태의 시나리오가 구비돼 있어 영화 제작자들의 온라인상으로 이를 검색해보고 구입할 수 있다.

- 스포츠 소재 단편영화 상영
중앙시네카는 21일부터 7월8일까지 스포츠를 소재로 한 단편영화를 모아 상영한다. 독립 영화 배급사 인디 스로티와 함께 마련한 이 단편영화제에서는 ‘챠오(고은기)’, ‘나는 왜 권투 심판이 되려하는가’(최익환) ‘창호는 누구에게 물어보나(노재승)’등 여섯편이 상영된다. (02)766-8866


입력시간 : 2004-06-22 16:22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