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도 알고보면 인간이다초라한 소시민에 불과한 주인공 평소 모습, 주제의식과 잘 연결한층 업그레이드 된 컴퓨터 그래픽 장면도 부족함 없어

[시네마 타운] 스파이더맨2
영웅도 알고보면 인간이다
초라한 소시민에 불과한 주인공 평소 모습, 주제의식과 잘 연결
한층 업그레이드 된 컴퓨터 그래픽 장면도 부족함 없어


‘스파이더맨2’는 모범적인 속편의 전범을 마련했다는 것 이상의 성취를 이뤄낸 작품이다. 이 영화는 같은 류의 블록버스터에서 특수효과와 영웅에 대한 판타지와 그 속에 자리잡고 있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융합되어야 하는지 그 적절한 배합 비율과 배합 방식에 대한 훌륭한 답안을 제시한다.

영화가 내세운 주제를 설득력 있는 스토리와 캐릭터로 풀어내며 거기에 깊이 있는 정서를 담은 이 영화는 여타 블록버스터들이 그토록 넘지 못했던 감동과 액션의 부조화와 진부함이라는 장벽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런 성취는 인간과 초능력 영웅이라는 양면을 동시에 가진 주인공에서 ‘인간’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아주 구체적으로 그것을 파고 들어간다는 이 영화의 기본 전략에서 기인한다.

전편에서 던져진 ‘스파이더맨’에서 주인공의 문제는 평범한 한 사람에게 초능력이라는 것이 주어졌을 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였다. 1편은 ‘위대한 능력에는 책임감이라는 것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주제로 내세우며 그 책임감 때문에 갈등하는, 소심한 주인공 피터를 통해 그 주제들을 차분히 구현해 나갔다. 속편에서는 그 책임감이 일상화됐을 때, 어차피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이 ‘변신형’ 영웅의 ‘변신 이전’의 모습을 파고들고 있다.

1년 내내 스파이더맨 노릇만 해서 먹고 살수 있다면야 영웅 노릇이 할 만한 일이지만 평소에는 초라한 소시민에 지나지 않는 주인공에게는 ‘스파이더맨이 된다는 것은 인생의 어마어마한 짐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문제를 던진다. 영화는 그 문제로 계속 갈등하면서 그 갈등이 야기하는 문제 ‘그렇다면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하나’로 극적인 긴장을 이끌고 간다.

초반부에서 주인공 피터는 자신의 일상 즉 대학생으로서의 삶, 혹은 피자가게 배달부, 더 중요하게는 자신의 사랑하는 연인 메리 제인과의 연애같은 것들이 스파이더로서의 삶 때문에 방해받고 망가지는 걸 절실히 느낀다. 거기에 자신 때문에 미망인이 된 숙모, 스파이더맨에게 아버지의 복수를 다짐하는 친한 친구 해리, 여전히 스파이더맨을 악당으로 몰아붙이는 기사를 쓰고자 애를 쓰는 신문사 편집국장 같은 사람들이 피터의 죄책감과 회의를 자극한다.

그때부터 영화는 주인공의 선택에 집중한다. 영화의 2장 초반 피터는 스파이더맨의 옷을 쓰레기통에 던지고 평범한 피터의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바로 그때 피터가 존경하던 과학자 옥타비우스는 자신이 발명한 핵융합 반응기계의 결함으로 무시무시한 괴물로 변해버린다. ‘우리는 스파이더맨이 필요해요!’라는 어린 아이들의 간절한 외침에 다시 스파이더맨으로 돌아오기를 선택하는 피터. 그는 결국에는 악당 닥터 옥토퍼스에게 자신의 ‘선택’으로 그 속의 악한 마음을 없앨 것을 요구한다. 옥토퍼스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악당의 삶을 마감한다.

이처럼 영웅이 되는 것이나 악당이 되는 것은 그렇게 타고난 것이 아니라 결국 자신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 진다는 영화속 메시지는 전형적인 영웅 주인공과는 거리가 먼 섬약한 인상의 토비 맥과이어가 연기함으로써 실감나게 전해진다. 악당 역을 맡은 알프레드 몰리나 역시 1편의 윌리엄 데포의 강인한 악당의 이미지와는 달리 악당치고는 상당히 부드러운 이미지를 가진 얼굴로 자신의 능력과 거기에서 파생된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캐릭터를 표정에 담아내고 있다.

슈퍼 히어로의 영웅적인 모습보다는 그 생활에 회의를 느끼는 인간의 모습을 파고 든다는 이 영화의 전략은 영화 속에 언뜻언뜻 빛을 발하는 유머에서도 일관성이 있다. 이를테면 스파이더맨이 세탁기에서 건져낸 스파이더맨 의상에서 색깔이 번져나와 속옷을 버렸다거나 초능력이 떨어져 고층빌딩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스파이더 맨이 “멋진 의상”이라며 말을 거는 옆사람에게 “근데 좀 가렵고 가랑이에 껴서 불편하다”라고 말하는 장면같은 것이다. 소소하지마 영웅들의 영웅적인 활약상만 그려왔던 영화들이 놓친 세심한 그들의 이면을 쿡쿡 찌르며 이를 웃음의 소스로 끌어 올리는 것이다.

가로 세로의 직선으로 꽉 짜여진 고층 빌딩 숲 사이를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스파이더맨의 동선으로 액션영화의 새로운 공간감을 창출해 냈던 전편에 이어 더욱 업그레이드 된 그의 움직임은 기껏해야 위로 아래로 혹은 앞으로 뒤로 날아다니던 기존 슈퍼 히어로들의 2차원적인 움직임에 비하면 3차원적인 움직임이라 할 만하다. 한층 뛰어난 컴퓨터 그래픽으로 큰 포물선에 이어지는 작은 포물선, 여기에 다시 축을 달리해서 이동하는 스파이더맨의 자유자재의 움직임은 관객들로 하여금 빌딩 숲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경쾌한 느낌을 던져준다. 문어발처럼 움직이는 악당 닥터 옥토퍼스의 네 발 역시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게 움직임으로써 그 발이 가진 위력과 공포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영화는 1편에서 죽음을 당한 악당의 아들이자 주인공 피터의 절친한 친구였던 해리가 다시 스파이더맨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장면으로 마감하면서 3편을 예고하고 있다. 여기에 스파이더맨의 가면을 벗겨 정체를 드러냄으로써 그 친구를 비롯해 연인인 메리 제인과의 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임을 예상케 한다. 3편이 벌써 기대되는 이유다.

■ 시네마 단신
   
* 씨네큐브, 박찬욱 감독 특별전
씨네큐브는 16~21일 박찬욱 감독 특별전을 연다. 올해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인 ‘올드보이’를 비롯해 그의 데뷔작 ‘달은 해가 꾸는 꿈’과 ‘공동 경비구역 JSA''복수는 나의 것’‘여섯개의 시선’‘삼인조’등 여섯편이 상영된다. 17일 오후 6시에는 평론가와 함께 하는 박감독과의 대화도 마련된다.

* 멕시코 장단편 영화제 열려
한국 시네마테크 협의회와 주한 멕시코 대사관은 14~22일 종로구 소격동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멕시코 영화제를 개최한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아르투로 립스테인 감독을 비롯한 멕시코 감독들의 장단편 영화들이 낮 1시부터 하루 네차례씩 상영된다. 720-9782

이윤정 영화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4-07-14 16:21


이윤정 영화칼럼니스트 filmpoo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