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옆구리를 내지르다현재진행형인 미해결 과제를 들이민 대담성"부시 재선 막겠다" 목적의식 뚜렷한 다큐멘터리

[시네마 타운] 화씨 9·11
권력의 옆구리를 내지르다
현재진행형인 미해결 과제를 들이민 대담성
"부시 재선 막겠다" 목적의식 뚜렷한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미디어가 가질 수 있는 ‘의제 설정’의 기능을 우리는 얼마 전 ‘실미도’같은 영화에서 실감한 바 있다. 신문과 방송에서 외면한 역사적 소재들이 영화에서 다시 조명될 때 그 것은 여타 미디어들 못 지 않은, 혹은 더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음을 실감한 사례였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화씨 9/11>역시 그러한 기능을 제대로 실천하는 영화다. 아니,‘실미도’같은 영화들은 아무리 심각하게 문제제기를 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느 정도의 허구를 가미할 수 밖에 없는 드라마인데다 어쨌든 사건의 해결이 일단 마무리된 과거의 사실이라는 점에 비추어 <화씨 9/11>은 아직 현재 진행형인 미해결 과제를 관객의 코앞에 대담하게 들이밀어 ‘과거에 이런 엄청난 일이 있었다’의 수준이 아니라 ‘그래서 앞으로 당신은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라는 질문을 한다는데 있어서 현실에 대한 파급력은 훨씬 크다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이 영화가 우리에게도 절실한 위기감과 함께 다가오는 것은 영화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에서 우리도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이 깊숙이 개입돼 있기 때문이다. 테러리스트들의 위협대상으로 새롭게 오른 우리나라 항공기를 생각하면 암전 화면과 오디오만으로 극대화한 9.11사태가 남의 일로만 보이지 않으며 테러리스트들의 인질 참수 장면과 일본 인질들을 위협하는 장면을 보며 김선일씨의 참극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고 , 국회의원들은 하나도 보내지 않은 자식들을 전장으로 떠나 보내며 가슴을 졸여야 하는 상황까지도 그렇다.


- 권력을 향한 유쾌한 비틀기

마이클 무어 감독이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막겠다’는 일념으로 만들었다는 이 다큐멘터리는 그 목적의식 만큼 선동적이다. 그는 논쟁대상에 대한 공정한 배려나, 논지의 불편부당함에 대해서는 애초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에게 부시는 비꼬고 놀려대고 바보로 만들어야 할 대상일 뿐이다.

9.11 테러가 나기 전까지 대통령의 일정 중 42%의 시간이 ‘휴가’에 바쳐졌다는 사실과 함께 그가 골프를 즐기는 모습과 함께 팝송 ‘Vacation'이 흘러나오고 폴 월포비츠 국무장관이 TV인터뷰를 앞두고 빗에 침을 발라 머리를 넘기는 장면 혹은 존 애쉬크로포트 법무장관이 애국심을 고양시킨다며 멋대로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장면 같은 것으로 무어는 자신의 상대들을 심하게 조롱하면서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버린다. 그의 선동에 공조할 마음이 있다면 이처럼 유쾌한 비꼼이 없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가 그런 ‘조롱’만으로 그치지 않는 울림을 가지는 것은 자신의 논쟁을 뒷받침할만한 충분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9.11테러의 주동자로 지목 받는 오사마 빈 라덴의 일가인 빈 라덴 가문이 부시 일가와 긴밀한 사업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테러 직후 당연히 출국 금지를 시키고 조사를 벌였어야 할 빈 라덴 일가를 어처구니 없게도 본국 사우디 아라비아로 날아가도록 특별 배려를 했다는 사실을 여러 문서들을 제시해가며 폭로한다.

물론 영화 초반에 제시된 이 의혹은 영화 전체를 이끌고 가지 못하고 뒷부분에 가면 다른 이야기들로 흐지부지 되긴 하지만 사건과 현상 이면에 숨겨진 검은 네트워크에 대해 대중들의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진실이 파헤쳐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하는 데는 모자람이 없다.

부시 대통령이 자신의 이미지 홍보를 위해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책을 읽다가 9.11 사태의 보고를 받은 뒤 7분 동안 아무 액션도 취하지 않은 채 멍하니 앉아 있기만 하는 장면 역시 뉴스로 전해들은 것 이상의 충격을 던져준다.


- 전쟁의 참상과 부당성 고발

그보다 더 큰 감정적 울림을 전해 주는 것은 무어 감독의 고향에서 충분한 기간동안 취재해서 얻어낸 한 중년여성의 심경의 변화다. 그는 자신의 아들을 이라크로 보내고 매일 아침 성조기를 내걸며 반전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경멸하던 맹목적인 애국주의자였다. 그러나 자신의 아들의 사망통지를 받고 난 뒤 그는 드디어 전쟁의 참상을 실감하면서 전쟁의 부당성을 외치는데 까지 나선다.

그의 다큐멘터리는 이외에도 평온하게 결혼식을 치르며 평화의 기운이 따뜻하게 감돌던 이라크의 모습과 폭격 후 팔다리가 잘려나간 아이들과 가족들을 잃은 어머니의 절규를 몽타쥬하거나, 애국심으로 불타 오르던 참전 미군들이 갈수록 지쳐가며 의미 없는 살상에 회의하는 모습등을 대조해나가면서 명분 없는 이라크전이 중단되어야 한다는 반전메시지로까지 자연스럽게 나아간다.

다큐멘터리는 다시 마지막에 “누군가에 속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짓입니다”라는 부시의 말에 “맞다, 우리는 당신한테 더 이상 속지 않을 것이다”라며 다시 한번 부시를 조롱한 채 끝을 맺는다. 이 박진감 넘치고 리드미컬한 다큐멘터리는 신나게 영화를 즐긴 관객들로 하여금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앞으로 부시는, 전쟁은 어떻게 돼야 할 것인가”를 한번쯤 깊이 생각해보게 만든다. 오늘 우리에게도 미룰 수 없는 절실한 문제로 다가온 이런 의제들에 대해 이 영화를 보면서 진지한 생각을 가져보라고 독자들에게 강력히 권해드리고 싶다. 이런 신나는 선동은 충분히 즐길 가치가 있다.

■ 시네마 단신
   

- 에딘버러 국제 영화제, 올드보이 등 초청

8월 18일부터 열리는 에딘버러 국제 영화제에 한국 영화 다섯편이 초청됐다.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가 영화제의 갈라 부문에 초청 받은 것을 비롯, ‘바람난 가족’(임상수 감독), ‘올드보이’(박찬욱 감독)가 감독 쇼케이스 부문에,‘내츄럴 시티’(민병천 감독)는 심야 상영부문에, ‘비디오를 보는 남자’(김학순 감독)는 로즈버드 부문에서 각각 상영될 예정이다. 올해 58회를 맞는 에딘버러 국제 영화제는 비 경쟁 영화제로는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올해 개ㆍ폐막작으로는 각각 월터 살레스 감독의 ‘모터 사이클 다이어리’와 왕자웨이 감독의 ‘2046’이 선정됐다.

-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 공모

아시아나 단편영화제 집행위원회는 19일부터 다음달 18일까지 제 2회 아시아나 국제 단편영화제 (ASIFF)의 출품작을 공모한다. 세계최초로 비행기 내에서 상영회를 가지는 국제 영화제로 관심을 모은 이 영화제는 오는 10월 28~3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아트홀에서 제2회 상영회를 가진 뒤 수상작들을 모아 내년 상반기 동안 아시아나 항공기내에서 다시 상영할 예정이다. 한편 1회 수상작들은 현재 중국 베이징(北京) 시네마테크에서 순회 상영전을 열고 있다. 출품 문의 747-6293

채윤정 영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4-07-20 17:09


채윤정 영화평론가 blauth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