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의 수수께끼를 풀어내다

[Books] 한국사 미스터리
고대사의 수수께끼를 풀어내다

조유전ㆍ이기환 지음
황금부엉이 발행
1만4,500원

“발굴의 ‘발’ 자도 모르던 시절, 지금은 고인이 된 스승 삼불 김원룡 선생의 가르침을 받으며 학생 신분으로 송파구에 있는 풍납토성 발굴에 참여하게 되었다. 젊은 혈기와 이론으로만 배웠던 발굴조사의 기술을 실습하기 위해 모래구덩이를 파내려간 기억뿐이지만 그것이 내 발굴 인생의 시작이었다.”

조유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한국 고고학의 산 증인’으로 불린다. 올해로 창설 44년이 된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2기생, 학생 시절부터 그는 일관되게 한국 고고학 발굴의 현장에서 일해왔다. 1971년 무령왕릉 발굴을 시작으로 1977년 경주고적발굴조사단장을 맡으면서는 안압지, 황룡사지, 감은사지, 월성 황남대총, 천마총 유물ㆍ유적의 발굴조사를 주도했다. 문자 그대로 ‘발굴 인생’이다.

2002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직을 끝으로 공직에서 퇴임했지만 그는 지금도 전국의 발굴 현장을 누비고 다닌다. 퇴임 후에는 행사 참석시 방명록에 ‘백수 조유전’이라 쓰면서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웃는 그이지만, 발굴의 현장은 결코 그를 ‘백수’로 놓아두지 않는다. 의문의 발굴 현장과 유물이 나타나면 후학과 제자들은 어김없이 그에게 자문을 구한다. 그는 또 언론사 문화재 담당 기자들에게는 가장 신뢰할 만한 취재원으로도 정평 있다. 성가신 취재 공세에 한번도 낯빛 붉히는 법 없이 친절하게 답해주면서, 전문가도 전공 분야가 아니면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고고학의 세계를 일반 대중에게 누구보다 쉽고도 정확하게 알려주려 한다. 그가 10여 년 전 한국 고고학 발굴 현장의 뒷이야기를 참으로 감칠맛나게 써낸 책 ‘발굴 이야기: 왕의 무덤에서 쓰레기장까지’는 아마 고리타분한 역사책 속에나 있는 것으로 보이던 한국 고고학의 흥미진진한 문을 대중에게 활짝 열어젖힌 첫번째 책이었을 것이다.

그가 새로 낸 ‘한국사 미스터리’도 ‘발굴 이야기’에 이어 발굴의 세계를 흥미롭고 생생하게 보여준다. 발굴 하면 당장 영화 주인공 인디아나 존스를 떠올리거나, 멀리 이집트 피라미드나 고대 로마 유적 혹은 중국의 진시황릉부터 생각하는 우리에게 훨씬 더 생생한 발굴의 세계가 바로 우리 곁에 숨쉬고 있음을 이 책은 보여준다.

“심장이 멎는 듯했다. 동쪽 석판의 첫줄에 ‘寧東大將軍百濟斯(영동대장군백제사)’라는 여덟 자가 달필의 해서로 새겨졌고, 그것은 둘째 줄의 ‘麻王年六十二歲癸(마왕연육십이세계)’로 이어졌다… 아름답고 또렷한 연화문 현실. 벽마다 벽돌 틈으로 나무뿌리들이 흐트러진 실처럼 늘어져 있었고, 바닥에도 나무뿌리들이 수세미처럼 솟아나와 있었다. 벽면에 만들어진 5개의 하트형 감(龕)에는 타다 남은 심지가 그대로 붙어있는 백자 등잔이 하나 놓여있었다. 1,450년 전 이 무덤을 만든 사람들의 체취가 그대로 묻어나왔다. 등잔에 불을 하나하나 붙이는 백제인의 모습.”

백제 사마왕은 바로 무령왕이다. 저자는 김원룡 등이 주도하고 자신도 참여했던 무령왕릉 발굴의 현장을 이렇게 전한다. ‘한국사 미스터리’에는 무령왕릉 등 30가지 유적ㆍ유물의 발굴 경위와 에피소드, 그것들에 담긴 고대사의 수수께끼가 펼쳐진다. 안압지 바닥의 뻘층에서 발굴된 목제 남근상을 통해 본 신라인들의 성 풍속, 신문배달 소년이 발견한 함안 마갑총, 물구덩이에서 건진 백제금동대향로 등등. 함께 실린 300여 장의 풍부한 컬러 도판은 현장 상황을 그대로 전해주는 듯하다. 저자는 그러면서 우리의 무지와 무분별한 개발로 파괴돼가는 문화유적의 비참한 현실을 고발하는가 하면, 직접 발로 뛰어 확인한 최신의 발굴 성과까지 소개하고 있다. 이기환 경향신문 문화팀장은 각 장의 말미에 관련된 흥밋거리ㆍ관심거리 글을 붙였다.

무엇보다 이 책의 미덕은 한국 고대사에 관한 문헌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역사의 흐름과 발굴 현장에서 드러난 역사의 비밀들을 마치 퍼즐을 맞춰가듯, 추리소설을 써나가듯 풀어가면서 역사적 진실에 접근하려 하는 ‘현장고고학자’인 저자의 열의에 있다.

입력시간 : 2004-07-28 14:28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