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음악적 감성의 블랙홀섬세하고 세련된 음악성에 한없이 매료, 비틀즈에 필적할 문화아이콘

[문화비평] 아바 < ABBA > 사운드의 힘
달콤한 음악적 감성의 블랙홀
섬세하고 세련된 음악성에 한없이 매료, 비틀즈에 필적할 문화아이콘


1974년 4월 6일, 영국 서섹스주 브라이튼에서 개최된 제19회 유러비전 송 콘테스트에 참여한 스웨덴 출신의 4인조 혼성 그룹 아바(ABBA)는 흥겨운 리듬과 경쾌한 선율의 ‘워털루’라는 곡으로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나폴레옹 복장을 하고 무대에 등장한 지휘자 즈벤 올로프 왈도프(Sven-Olof Walldoff)가 이끄는 오케스트라의 화려한 연주, 절로 신이 나는 키보드 사운드와 두 여성 싱어의 탁월한 화음은 대회장의 수많은 관객들을 매료시켰는데, ‘아바’라는 이름이 전 세계의 대중들을 열광시키게 된 건 그로부터 수개월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2004년 현재 아바는 비틀즈만큼이나 중요한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한 채 여전히 문화, 산업적으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난 4월, 아바가 소속되어 활동했던 레이블 ‘폴라 뮤직’은 ‘워털루’의 30주년을 기념하여 아바의 세계 시장 데뷔작인 ‘Waterloo’(’74)를 재 발매했다. 보너스 트랙들과 기념 부클릿, 그리고 1974년 유러비전 송 콘테스트 공연 모습이 담긴 DVD 등을 포함한 이 호화로운 패키지는 많은 아바 팬들을 즐겁게 했다.


- 데뷔 30년 기념<워털루> 재발매

최근에는 2001년 발매된 2장짜리 편집 앨범 ‘The Definitive Collection’과 프로모션용 클립을 모은 같은 제목의 DVD를 하나로 묶은 패키지가 출시되었고, 1979년 투어를 담은 DVD ‘In Concert’가 공개되기도 했다.

물론 아바의 앨범들은 지난 십 수 년간 정규 앨범이 됐건 편집 앨범이 됐건 늘 새로운 형태로 등장하며 높은 판매고를 기록해왔다. 아바의 음악이 끊임없이 사랑을 받아왔다는 뜻이다. 이들이 오랜 세월 동안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음악으로 세계를 정복하게 된 이유는 지극히 명백하다.

외형적인 면에서 아바의 음악은 전형적인 유로 팝, 혹은 댄스음악의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그들이 이루어낸 성과는 한 장르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미 60년대 말부터 스웨덴 내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인기를 얻고 있던 아바의 멤버들은 영국의 경쾌한 비트음악과 스웨덴의 민속음악, 그리고 카바레 음악 등에 자신들의 음악적 뿌리를 두고 있었다. 그러한 바탕 위에서 아바가 이루어낸 세련된 팝 음악은 이후의 신스 팝(synth pop)과 뉴 로맨틱스(new romantics) 등 뉴 웨이브의 하위 장르들, 그리고 현대의 테크노에 이르는 여러 장르들에 깊은 영향을 끼쳤음은 물론, 특유의 빼어난 작곡과 편곡은 많은 록 그룹들의 영감의 원천으로 자리했다.

아바가 데뷔했을 당시 최첨단의 현대적 사운드로 평가 받던 숱한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들의 음악이 이제 그 고색창연함으로 인해 구시대의 유물쯤으로 여겨지는 반면 아바의 음악은 세월의 흐름과 무관하게 여전히 빛나는 세련미를 자랑한다.

사실 아바의 모국인 스웨덴은 미국과 영국 일변도의 팝 시장에서 변방에 불과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섬세한 감성과 아름다운 화음으로 무장한 아바의 음악은 세계 시장, 특히 영국을 필두로 유럽의 전 지역에서 커다란 사랑을 받았고 확고한 슈퍼스타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이들이 해산하던 시점에 이미 아바의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1억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을 정도였다.

대중음악계에서 아바라는 이름이 지니는 커다란 존재감이 이러한 상업적인 성공이라는 단편적인 사실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도 방송 매체를 통해, 또는 여러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음악으로 자주 접할 수 있는 아바의 음악은 지금의 어린 세대들에게도 이미 친숙해져 있다.


- 거부감·부담감 없는 편안한 음악

무엇보다도 이들의 음악은 아무런 거부감이나 부담감 없이 편안하게 들을 수 있다. 이들의 모든 곡들에 담긴 감성은 사람들의 기본적인 음악적 감각에 교감한다. 때로 그룹 내부에서 발생했던 여러 갈등과 문제들이 스캔들로 불거지기도 했고, 어떤 사람들은 이들의 노랫말을 통해 나치즘과 변태성을 드러낸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그런 일의 진위 여부와는 무관하게 아바의 음악은 좋다. 그것은 머리보다는 가슴에 가까이 다가서 있다. 그들의 음악을 듣고 있다 보면 어느 새 그 달콤한 매혹과 기분 좋은 마력에 흠뻑 젖어 들어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은 뚜렷한 밴드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는 않지만 상업적으로 기획된 여느 보컬 그룹들과도 성격을 달리 한다. 깊고 풍부하고 다채로우면서도 아름다운 목소리의 주인공들인, 고운 하이소프라노의 주인공 아네타 팔츠코그와 차분한 메조소프라노 아니프리드 링스타드(흔히 프리다로 불린다)가 이루어내는 ‘천상의 화음’의 뒤에는 키보디스트 베니 안데르손과 기타리스트 비요른 울바에우스라는, 그룹의 실질적인 두뇌들이 자리하고 있다.

베니와 비요른 콤비의 작곡 실력은 흔히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의 그것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얻어낸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각각의 작품들에 도입한 다양한 악기들과 프로듀서로서의 뛰어난 재능은 사운드를 풍성하게 가꾸어줌으로써 아바의 확고한 정체성 확립에 큰 역할을 했다.

베니와 비요른은 아바의 결성 이전에 이미 프로 뮤지션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여러 스튜디오 작업을 통해 겪었던 다양한 경험들은 이후 아바의 작품들에 반영이 되어 여러 신서사이저와 오케스트레이션 등이 포함된 다채롭고 복합적인, 동시에 극히 정교하고 깔끔한 사운드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사운드는 무대에서 재현하기가 까다로운 탓에 아바는 공연에 있어서 많은 한계를 지니는 팀이라는 약점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그들은 그러한 취약점을 극복하고 여러 차례의 세계 투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냈다.


- 시공을 초월하는 탁월한 사운드

아바 사운드의 중추라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네타와 프리다의 멋진 목소리와 화음, 그리고 키보드라 할 수 있지만, 지극히 풍성한 감성의 표출을 위해 이들은 록의 기본 편성 악기 외에 여러 악기들을 도입했다. 거기엔 부드러운 현악과 오케스트레이션은 물론 무그 신서사이저나 멜로트론 등 록 밴드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장치들과 색소폰과 트럼펫, 플루트, 클라리넷 등의 관악기, 그리고 마림바, 아코디언과 콩가, 차임 등에 이르는 다양한 악기들이 포함된다.

팝과 록, 전자음악과 댄스, 레게, 민속음악과 포크, 그리고 뮤지컬 등 장르를 넘나드는 여러 형식을 완벽하게 소화해내어 자신들의 멜로디와 스타일로 재 창조해내는 능력 또한 이들의 음악에 깊이를 더해주는 뚜렷한 요소이다.

이렇게 그들이 만들어낸,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밝고 수려한 멜로디 라인과 아름다운 보컬 하모니, 풍요로운 사운드, 그리고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공감을 얻어내는 탁월한 편곡과 사운드의 섬세한 배치야말로 아바의 음악이 지니는 기나긴 생명력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

김경진 음악평론가


입력시간 : 2004-08-04 16:17


김경진 음악평론가 arzachel0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