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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미국인, 그들은 누구이며 어디로 가나
치밀한 논리로 진단한 미국
히스패닉계 확산으로 앵글로와의 '제2 문화충돌' 우려




새뮤얼 헌팅턴 지음ㆍ형선호 옮김
김영사 발행ㆍ1만9,900원

‘문명충돌론’의 저자 새뮤얼 헌팅턴이 또 하나 논쟁적인 책을 내놓았다. 번역판은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으로 제목을 바꿨지만 이 책의 원제는 ‘우리는 누구인가?(Who Are We?)’이다. ‘우리’는 미국인들을 말한다. 제목부터가 도발적이다.

9ㆍ11사태를 예측했다는 전작 ‘문명의 충돌’에서 헌팅턴은 이념 분쟁이 종식된 시대에 세계 정치의 분쟁 요인은 기독교, 이슬람 등 문명권의 충돌이라고 분석했다. 올해 출간한 새 저서에서 헌팅턴은 그 잣대를 미국 국내로 들이댄다. 요약하자면 그의 결론은 이렇다. “앵글로-개신교도 문화로 이룩된 미국의 국가 정체성이 이민자들에 의한 히스패닉 문화의 확산으로 흔들리고 있다. 미국은 기독교적 종교성에 바탕한 국가주의의 길을 가야 한다.”

하버드 대 석좌교수답게 수많은 통계자료와 저술 등을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는 그의 논리는 치밀하다. 기승전결 방식의 4부로 구성된 책의 1부에서 그는 일반적인 정체성의 정의, 국가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2부에서는 미국의 정체성 요소들을 민족, 인종, 이념, 문화로 나눠서 살피고 특히 종교적 측면을 역사적으로 고찰한다. 3부에서는 이와 같은 미국의 정체성 요소들이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4부에서 그는 ‘미국의 신조’라는 말로 대표되는 정치적 이념과 ‘앵글로-개신교도(Anglo-Protestant) 문화’로 표현되는 핵심 문화, 그리고 ‘기독교’로 대변되는 종교성을 미국의 정체성 요소로 규정한 다음, 미국의 미래는 범세계주의, 제국주의, 국가주의 세 가지 길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한다.

헌팅턴이 이 중 가장 중요하게 사용하고 있는 개념은 ‘앵글로-개신교도 문화’이다. 그는 책 서문에서 “영어, 기독교, 종교적 헌신, 영국식 법치, 통치자들의 책임성, 개인들의 권리, 그리고 개신교도들의 새로운 개인주의 가치관, 노동 윤리, 그리고 인간에게는 지상에서의 천국을 만들 능력과 의무가 있다는 믿음” 등을 이 문화의 핵심 요소로 꼽는다. 헌팅턴은 영국에서 온 개척자(그는 ‘개척자’를 ‘이민자’와 대조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들이 미국을 건설했으며, 앵글로-개신교도 문화는 “350년 동안 미국의 정체성에서 핵심 요인이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개인의 존엄, 인간의 근본적 평등, 자유와 정의, 공정한 기회에 대한 천부적 권리, 출판의 자유, 결사의 권리, 배심원 재판, 정부기관들의 책임성 등으로 구성된 이른바 ‘미국의 신조’(이 용어는 1944년 군나르 뮈르달의 저서 ‘미국의 딜레마’에서 대중화됐다)의 중심 사상들도 거의 모두가 개신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헌팅턴은 이러한 미국의 국가 정체성이 1970년대부터 흔들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 요인은 세 가지다. 우선 다양한 인종, 민족, 하부국가적 문화들로 이뤄진 집단들 – 헌팅턴에 따르면 그들은 ‘해체주의자들’이다 –의 ‘강력한 운동’으로 인종, 민족, 성, 문화 정체성이 국가 정체성보다 우위를 점하게 됐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이 시기에 엄청난 수의 새로운 이민자들이 몰려들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전의 이민자들과는 결정적으로 다르다. 이전의 이민자들은 미국 사회의 이념과 신조에 ‘용광로’처럼 동화되었지만 20세기 중반 이후의 이민자들은 자신들의 출신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이중적인 충성심, 이중적인 국가성, 나아가 이중 국적까지도 유지하고 있다고 헌팅턴은 말한다. 미국에 대한 헌신을 무시하고 초국가적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세번째는 히스패닉의 도전이다. 헌팅턴이 가장 위협적으로 보는 집단은 멕시코에서 들어오는 이민자들이다. 이들은 지리적으로 미국과 가까운 탓에 상대적으로 심리적 단절감을 경험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고수하고, 상당수가 불법 이민자로 집단을 이뤄 살아가면서, 이미 흑인 인구를 뛰어넘어 제2의 인종으로 떠올랐다. 마이애미 등 남부 지역은 공공기관ㆍ학교에서 반드시 스페인어를 써야 할 정도로 히스패닉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멕시코 정부에서 적극 이용하고 있으며, 미?정치인들도 히스패닉 문화를 인정해주겠다며 이들에게 표를 달라고 구애하고 있다. 헌팅턴은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미국에 사람들을 수출한 다른 나라의 이익 때문에 미국의 스스로의 국가이익을 추구할 수 없게 된다”고 말한다. 그는 나아가 앵글로 문화와 히스패닉 문화가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히스패닉의 분리 독립 주장)도 있다고 우려한다.

9ㆍ11사태는 거의 모든 미국인들에게 국가 정체성을 다시 회복시켜 주었지만 미국은 이전의 미국이 아니며 계속 도전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이 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헌팅턴은 세 가지 길이 있다고 말한다. 범세계주의, 제국주의, 국가주의가 그것이다. 범세계주의는 한없이 미국의 국경을 열어 세계적인 제도와 관습, 규칙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인들의 활동은 연방, 주 정부가 아니라 국제기관들에 규칙에 의해 규정되게 된다. 제국주의의 길은 미국의 힘을 사용해 세상을 미국의 가치관에 맞게 바꾸는 것이다. 범세계주의와 제국주의는 공히 미국과 다른 사회들 간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차이를 줄이거나 제거하게 된다.

반면 국가주의는 미국을 다른 사회들과 구분짓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헌팅턴은 “저항적 프로테스탄티즘은 미국의 국가 정체성에서 중심 요소이다. 미국인들은 압도적으로 하나님과 국가 모두에 헌신하며, 미국인들에게 둘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며 “종교가 모든 대륙에서 사람들의 충성심, 연대감, 적개심을 규정하는 세상(이는 헌팅턴이 21세기를 종교의 세기라며 ‘문명의 충돌’에서 주장했던 바이다)에서, 미국은 다시 종교로 복귀해 국가 정체성과 국가 목적을 찾는다고 해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개략적으로 책 내용을 살폈지만 헌팅턴의 주장은 뚜렷하게 주관적이다. 이를 위한 논리의 모순도 적지 않으며 그만큼 논란을 초래할 요소를 다분히 지니고 있다. 그는 책 서문에서도 이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애국자이자 학자인 내 자신의 정체성들에 의해서 정해졌다… 애국주의 동기와 학문적 동기는 서로 충돌할 수도 있다… 앵글로-개신교도 문화와 초기 개척자들의 신조에 헌신이 계속해서 유지된다면 미국은 건국 당시의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ㆍ백인-앵글로-색슨-개신교도) 후손들이 적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소수가 된 이후에도 오랫동안 미국일 것이다…”

이미 출간에 앞서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 3ㆍ4월호에 이 책 내용이 일부 공개되자 헌팅턴의 주장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지는 “라틴계 이민은 값싼 노동력의 유입이라는 점에서 미국 경제에 여전히 득이 되고 있다”며 헌팅턴의 인식이 지나치게 단선적이라고 비판했다. 앨런 울프 보스턴칼리지 교수는 국제문제 전문지 ‘포린 어페어즈’에 반론을 싣고 “헌팅턴이 주장하는 미국 국가 정체성의 중심인 앵글로-개신교도의 정체성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며 “미국에 단일 개신교 문화는 애초에 없었으며 오히려 18세기 후반까지는 가톨릭이 미국 문화에 최대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말했다. ‘포린 폴리시’ 도 “헌팅턴의 주장은 가톨릭-스페인 문화의 유입을 두려워하는 유럽 본토주의의 우려”라며 “사실이 뒷받침되지 않은 뻔뻔스러운 인종 차별”이라는 각계 전문가들의 반박문을 게재하기도 했다.

미국 내에서도 보수주의자의 본보기처럼 꼽히는 헌팅턴의 주장을 수긍하건 않건, 미국이라는 나라가 싫건 좋건, 현 세계 질서의 유일 초강국인 미국의 현실, 그리고 국제 관계의 향방에 대한 보다 폭넓은 이해를 위해서라면 참고해야 할 책이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입력시간 : 2004-08-0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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