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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국남의 방송가] 시청률 족쇄에 훼손된 창작성
드라마 <파리의 연인> 시청자 요구로 결말 수정 여부 고심
내용·기획으로 잦은 변경은 극의 하향평준화 지름






‘파리의 연인’이 15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파리의 연인’은 현대판 왕자인 재벌 2세와 신데렐라 형의 전형적인 캐릭터, 재탕 삼탕하는 출생의 비밀이라는 그야말로 한국 드라마의 병폐로 지적된 진부한 캐릭터와 구조를 주조로 한 드라마였다. 하지만 경쾌한 드라마 색채와 템포, 김정은의 발랄하면서도 적극적인 새로운 캔디 형 신데렐라 창출, 신세대 여성들이 좋아하는 박신양과 이동건의 남성상 구현 등으로 시청률 50%대를 기록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여기에 경기의 장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심리적 즐거움을 선사하며 ‘파리의 연인’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러한 높은 관심과 사회적 파장 외에 ‘파리의 연인’은 한국 방송에 한 가지 중요한 의미와 과제를 던져줬다. 바로 결말을 놓고 벌어진, 제작진의 당초 기획 의도 고수냐 아니면 시청자 의견 수렴을 통한 내용 변경이냐 하는 해프닝 때문이다. 이 문제는 한국 드라마의 특수한 제작환경,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의 등장에 따른 시청자의 의식 변화와 맞물려 있는데다 시청률과 드라마 완성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매우 중요하다.


- <파리의 연인> 결말 공개로 혼란

‘파리의 연인’은 방송 1회부터 20%대라는 엄청난 시청률로 높은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이미 20회로 예정된 드라마의 결말에 많은 사람들의 눈길이 쏠렸다. 일부 대중매체들은 시청률이 40%대에 육박한 중반 시점에서부터 결론이 세 가지이며, 극중 남자 주인공 한기주(박신양)가 자살하는 것으로 끝난다는 등의 미확인 내용들을 쏟아내 시청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또한 인터넷 사이트에선 결말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가 나돌아 그야말로 ‘파리의 연인’의 결말은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인기의 또 다른 견인차 역할을 했다.

대중매체와 시청자의 높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신인 작가 김은숙 강은정, 연출자 신우철PD 그리고 SBS 운군일 드라마국장은 함구로 일관했다. 다만 김정은과 박신양, 이동건 등 일부 연기자들의 입에서 나온 결론은 하나이고 이미 촬영을 끝냈다는 것이 결말과 관련한 내용의 전부였다.

이러던 와중에 마지막 방송을 앞둔 시점이던 13일 밤 ‘파리의 연인’의 그 동안의 내용이 모두 극중 영화학도인 태영(김정은)의 시나리오였다는 기발한 결말이 될 것이라는 한 제작진의 말이 공개됐다. ‘파리의 연인’ 홈페이지에는 수많은 시청자의 실망과 항의의 글이 쇄도했는가 하면 제작진의 의도를 존중해야 한다는 반대 의견도 적지 않게 제기됐다.

드라마의 결말을 둘러싼 논란과 공방은 ‘파리의 연인’이 처음은 아니다. 트렌디 드라마가 젊은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인터넷의 보급으로 시청자의 방송 참여가 적극적으로 이뤄진 1990년대 후반부터 흔하게 초래된 현상이다.

현재 미국에선 과학수사 드라마인 CBS의 ‘CSI'가 시청률 독주체제에 들어갔고, 일본에선 도쿄방송(TBS)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와 후지TV의 ‘도쿄 만경’ 등 다양한 멜로 드라마가 시청자의 눈길을 끌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에선 우리처럼 결말을 둘러싼 파장이 전혀 없다. 왜냐하면 드라마 제작을 당일치기 식으로 하는 우리와 달리 드라마 전부를 모두 완성한 뒤 방송하는 드라마 사전 전작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완성도와 연기자의 연기력 향상의 측면에서 사전 제작제의 장점이 두드러진다면, 당일치기식 제작은 시청자의 반응에 따라 드라마의 역동성을 살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우리의 당일치기식 제작 환경에서는 드라마의 결말을 놓고 시청자의 요구에 따르느냐 아니면 제작진의 창의적인 기획의도를 살리느냐 하는 문제가 언제든지 터져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이같은 상황은 시청률만 좋으면 그만이다는 우리 방송사들의 인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드라마의 내용과 기획 의도가 순식간에 바뀌는 비정상적인 환경을 고착화시켜 온 것이다. 이로 인해 결국 드라마의 질은 하향평준화로 브레이크 없는 무한 질주를 해 왔다.


- 당일치기식 제작환경의 한계

당일치기식 제작환경과 함께 결말을 둘러싼 내용 변경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인터넷의 등장으로 시청자의 요구가 거세졌다는 것도 주요한 원인이다. 인터넷의 등장 이전에는 제작진의 의도가 그대로 드라마 제작에 전적으로 반영됐지만 근래 들어서는 시청자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방송 환경이 됐다. 드라마가 시작되면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는 연기자의 캐스팅에서부터 내용 변경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청자들의 요구가 쏟아지고, 일부는 드라마 내용을 둘러싸고 집단 행동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인터넷 이전이 제작자 독재 시대였다면 인터넷 이후는 수용자 독재 시대인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결말을 둘러싼 내용 변경 여부를 놓고 제작진의 의견도 팽팽하게 맞서는 경우가 많다. ‘가을동화’ ‘겨울연가’ 등으로 시청자들의 결말 변경 요구를 받은 적이 있는 윤석호PD는 “드라마는 시청자와 호흡하는 장르다. 시청자의 반응을 드라마에 수용하는 것은 우리만의 제작방식의 장점이고 드라마의 역동성을 살릴 수 있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반면 ‘전원일기’ ‘그대 그리고 나’ ‘그 여자네 집’을 집필한 작가 김정수는 “드라마는 작가의 독창성과 예술성이 존재하는 엄연한 문화작품이다. 시청자의 반응도 중요하지만 작품에 있어 무엇보다 작가의 의도와 메시지 그리고 독창성이 생명이기 때문에 시청률 때문에 내용을 변경한다는 것은 작가의 존립의미를 상실케하는 행위다”는 견해를 밝혔다.


- 완성도에 치명적 결과, 소탐대실로 이어져

드라마의 결말을 둘러싼 내용 변경에 대한 문제의 해답은 그 동안 기획의도와 달리 시청자의 의견에 따라 결말을 수정한 드라마의 완성도와 반응에서 명쾌하게 나온다. ‘진실’을 비롯한 수많은 드라마가 당초 결말에서 주인공이 죽게 돼 있었지만 해피엔딩을 바라는 시청자의 요구에 따라 주인공을 살리는 것으로 변경했다가 당초 기획의도는 실종되고 시청자의 외면을 불러왔다. 그야말로 소탐대실의 결과를 낳은 것이다.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문화 상품인 동시에 시청자에게 삶의 의미를 던져주는 등 많은 영향을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작가를 비롯한 제작진의 의도와 창의성은 지켜져야 한다. 시청자들도 작품의 완성도나 의미와 상관없이 무리하게 드라마의 내용에 간섭하고 물리력을 행사하는 행동은 자제해야 하며 작가의 독창성을 존중해야 한다. 그것이 현재 반복과 진부의 늪에 깊이 빠진 우리 드라마가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knbae24@hanmail.net


입력시간 : 2004-08-18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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