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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타운] <엘리펀트>
청춘의 화려함 뒤에 감춰진
갈등과 아픔의 광시곡
미국 고등학생의 일상과 내면 그려






눈이 부시도록 파란 하늘에 흰구름이 무심히 흘러간다. 노랗고 파랗게 단풍 든 나무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늘어선 주택가 사이로 아버지와 아들을 태운 승용차 한 대가 지나간다. 학교로 향하고 있는 부자의 모습은 하지만 뭔가 어색한 기운이 감돈다.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 때문에 아들은 학교에 늦었고, 그들의 대화는 평범한 가족들의 모습에서 10센티미터쯤은 허공으로 붕 떠 있는듯한 모습이다. 그렇지만 비정상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라는 청소년이라는 이미지가 주는 어떤 폭력적인 긴장감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다. 사실 사람들의 일상이란 혹은 나른하지만 아름다운 주택가에서 살면서 학교를 다니는 미국의 고등학생의 모습이란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서 잘 굴러가는 듯하지만 그 속에는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조용한 갈등이나 아픔 같은 것들이 숨어있는 것이다. 말없이 그들을 갉아 먹는 그런 아픔들에 모른 척, 혹은 아닌 척 하며 청춘의 일상이 흘러간다.

거스 반 산트 감독의 영화 ‘엘리펀트’가 다루고 있는 익명의 고등학교의 모습은 그런 아이들의 모습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게 지각한 학교에는 풋볼게임에 몰두하는 아이들이 있고, 학교의 모든 아이들을 자신의 카메라에 담고 싶어하는 아이가 있고, 짧은 체육복을 죽어도 입기 싫어 결국 체육 선생에게 야단을 맞는 아이가 있고, 날씬한 치어리더가 되기 위해 단체로 화장실에 들어가 먹은 걸 일부러 다 게워내는 아이들이 있다. 모두 제각기 다른 꿈과 각기 다른 자신에 대한 결핍과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어쨌든 이들의 학교생활은 겉으로 보기엔 평온하게 흘러간다.

1999년 미국을 온통 패닉 상태로 몰아넣었던 콜럼바인 고등학교의 총기난사 사건을 다룬 영화라는 사전지식이 있다 하더라도 이처럼 익명의 한 고등학교의 여러 학생들의 모습들을 그저 이런 저런 각도로 죽 따라가기만 하는 영화의 흐름을 편하게 즐기기는 무척 힘들 것이다. 플롯도 없이, 전통적인 3장 구성 없이, 주인공도, 그들의 갈등도, 갈등의 해결도 없이 영화는 이들의 일상을 아이들을 이름을 딴 챕터로 구분해 각기 다른 시점의 카메라로 말없이 따라가고만 있을 뿐이다. 이들이 보낸 몇 시간은 그 각기 다른 시점에서 겹치기도 하도 그렇지 않기도 한다. 총기난사 사건이라는 소재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는 관객은 도대체 이들 중 누가 총을 들 것인지, 그 지옥의 아수라장은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이 있긴 하지만 영화는 60여분이 지나도록 별다른 힌트를 주지 않는다.


- 재미와 죽음의 공포, 그 간극을 그리다

마침내 두 고등학생이 비디오게임을 즐기고 나치에 대한 TV화면을 보고, ‘엘리제를 위하여’를 연주하고 집으로 배달된 총을 확인하고 샤워를 같이 하고, 그 동안 해보지 못했던 키스를 나눈 뒤 학교 건물의 배치도를 보며 간단한 계획을 세운 뒤 학교로 간다. “재밌게 놀자(Have fun)"이라며 서로를 짧게 격려한 두 학생은 학교로 달려가 하나 둘씩 아이들과 선생들을 쏜다. 16분의 총격 장면 역시 구경거리로서의 매력이나 비장감이나 소란스러움 마저 없다. 아이들은 퍽퍽 쓰러져 나가고 , 학교 바깥의 모습은 사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이나 큰 차이 없이 차분한 마을의 모습 그대로를 하고 있다. 수십 명의 학생들을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은 이 시간은 그저 단지 조금 일상에서 벗어난, 하지만 또 다른 일상의 표면 속에 뒤덮혀 버릴 작은 소란 같아만 보인다. 그 아름답고 조용한 마을은 내일이면 또 아무일 없었다는 듯 제자리로 돌아갈 것만 같다.

단순한 묘사로만 일관하고 있는 영화 ‘엘리펀트’속의 사건들은 그래서 더 충격적일 수 있다.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아무 일도 아닌 듯이 터져 나온 총격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이나 별다른 악의나 이유없이 총질을 해대는 아이들 어느쪽막琯?아무런 감정의 이입을 하지 않았던 관객들은 영화처럼 무심히 그런 장면을 보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 오히려 더 충격을 느낄지 모른다.

사실 이 80여분간의 짧은 영화를 통해 거스 반 산트 감독이 콜럼바인 총격사건에 대해 어떤 발언을 하고 싶은 것인지를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총을 든 학생들이 즐기던 비디오 게임, 혹은 나치에 대한 동경, 혹은 총기를 그처럼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는 점, 혹은 학생들이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것처럼 친구들의 따돌림에 대한 마음의 상처 등 영화는 세상의 입들이 이야기 하는 이 사건의 ‘원인들’을 언뜻언뜻 보여주긴 한다. 하지만 ‘엘리펀트’라는 제목이 의미하듯 영화는 어떤 한 두 가지 이유가 이 거대한 사건의 명쾌한 이유가 된다는 발언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독은 총격 사건 자체보다는 자신의 전작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크고 작은 상처와 절망을 안고 일상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초상화 같은 것을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의 총격사건이란 그들이 겪은 혹을 앞으로 겪을 일생의 여러 일들 중 약간 유별난 일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시적이면서도 모호한 영화를 보는 올바른 방법은 ‘총격 사건’에 대한 또 다른 답안을 기다리며 독특한 설교를 듣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그들의 평온한 일상 속에 이미 너무나 깊숙이 숨어버린 엄청난 폭력마저 감당해내야 하는 미국 젊은이들의 슬픈 현실을 열린 마음과 눈으로 묵묵히, 그러나 똑똑히 보는 것이다.

씨네마 단신
  
* 광주국제영화제 개막

제4회 광주국제영화제가 9월2일부터 열흘동안 광주시내 극장에서 펼쳐진다. 올해 영화제의 주제는 '발견, 재발견'. 개막작인 일본 와타나베 겐사쿠 감독의 '러브드 건'과 배창호 감독의 폐막작 '길' 등 100여 작품이 관객을 만난다. 실험영화, 개인영화, 다큐멘터리 등이 소개되는 '논픽션 시네마'에서는 올해 칸 영화제 공식부문에서 상영돼 뜨거운 반응을 얻은 프랑스 다큐멘터리 감독 레이몽 드파르동의 최근 작 '지방법원 제10호실'과 이탈리아 감독 에르반트 지아니기안과 안젤라 리치 루키의 '오! 인간', 거장 로베르 브레송의 '소매치기의 모델들' 등이 상영된다.www.giff.org.(062) 228-9958



* 시네 랑데부: 새로운 영화와의 만남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 있는 서울아트시네마는 9월1-8일 '시네 랑데부:새로운 영화와의 만남'이라는 이름으로 그 동안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영화들을 발굴해 소개한다.

상영작은 '인생전서'(할 하틀리.1998) '안녕 나의 집'(오타르 이오셀리아니.2000) '휴머니티'(브루노 뒤몽.1999) '환상의 빛'(고레에다 히로카즈.1995) 등 4편. (02)720-9782




입력시간 : 2004-09-01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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