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변혁의 아시아 주제 제1회 국제 다큐페스티벌 파격 편성

[배국남의 방송가] 다큐 세상으로의 신선한 초대
EBS, 변혁의 아시아 주제 제1회 국제 다큐페스티벌 파격 편성

8월 30일부터 9월 5일까지 EBS를 본 사람이라면 잠시 채널을 잘못 돌렸나 하는 생각을 했을 지 모른다.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돌린 채널에서 다큐멘터리가 종일 방송됐다면 반드시 케이블 또는 위성방송의 다큐 전문채널로 생각할 것이다. 선입견을 깨는 신선한 도발이 있었다. 지상파 TV인 EBS가 어린이 프로그램을 제외한 모든 정규 프로그램 대신 다양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만으로 한 주일간을 방송하는 무모하리 만치 파격적인 편성을 했기 때문이다.


- 일주일간 정규 프로그램 중단

EBS가 ‘변혁의 아시아’라는 주제로 제1회 국제 다큐멘터리 페스티벌(EIDF)을 개최해 KOEX 등에서 참가 작품을 상영하고 감독과의 대화, 다큐 사진전, 다큐 포럼 등 다양한 행사를 여는 한편 개막작인 한국계 미국인 크리스틴 초이가 제3의 성으로도 불리는 한국 아줌마의 모습을 담은 ‘주부의 얼음땡’(Deconstruction of Korean Housewife) 등 다양한 다큐멘터리와 감독과의 대화, 한국방송작가협회의 포럼 등을 EBS 채널을 통해 일주일 내내 방송했다.

예하네 나우자임 감독의 ‘알 자지라 뉴스룸’, 박성미 감독의 ‘평양에서 8일간’ 등 오늘의 아시아, 아시아의 정치인, 아시아 밖으로 등 12개 섹션에 참가한 국내외 유명작품 130여 편을 안방 채널을 통해 전달한 것이다.

이처럼 일주일간 정규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다큐 프로그램만으로 편성한 것은 한국방송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EIDF를 지휘하고 130편의 집중 편성을 총지휘했던 EBS 고석만 사장은 “다큐멘터리야말로 영상의 중추라고 생각해왔다. 또한 21세기는 다큐멘터리 시대이기도 하다. 사실을 담아내는 다큐멘터리야말로 영상의 꽃이자 공영성의 상징이다”라며 이번 다큐멘터리의 집중 편성의 의도를 설명했다.

하지만 고 사장의 다큐의 당위성과 의미부여에도 불구하고 현재 텔레비전 방송에서 다큐는 두 얼굴을 하고 있다. 생산자인 제작자나 소비자인 시청자들에게 말이다. 먼저 시청자들은 MBC, KBS, SBS 등 방송사에 끊임없이 좋은 프로그램을 제작 방송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제작진이 오랜 시간과 정열 그리고 막대한 자본을 들여 제작한 좋은 다큐멘터리를 방송하면 정작 시청하지 않는다. 대신 시청자들이 늘 비판하는 드라마나 오락프로그램으로 채널을 고정시킨다. 제작진도 마찬가지다. 대중매체나 시청자 단체에서 공영성과 공익성을 높이라고 하면 곧바로 방송 비율을 높이는 것이 다큐멘터리다.

다큐멘터리를 방송하면 공익적이라고 시청자도 제작진도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열심히 만들지만 봐주지 않고 엉성하게 만들어도 공영성에 일조 하는 장르가 바로 다큐멘터리인 것이다.

시청자들의 이중성과 관심부족, 그리고 제작진의 관성에 의한 제작관행이 고착화된 상황에서 한자리수의 시청률을 벗어나지 못하고 점차 외면 받고 있는 것이 방송 다큐멘터리이다. 이 때문에 방송사에선 시청률을 담보할 수 있는 드라마나 오락예능 프로그램을 점차 확대해 다큐멘터리는 생색용 편성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EBS가 도박같이 다큐멘터리를 일주일 내내 종일 편성한 것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한쪽에선 “의미 있는 공영 방송의 자세”라고 찬사를 보내고 또 다른 쪽에선 “EBS개혁용 면피”라는 비난도 한다. 하지만 분명 이번 EBS 다큐의 집중편성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고사되고 있는 다큐 회생의 계기이자 평소 접하기 힘든 유명 감독과 특히 아시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날 것 榴酉?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다큐의 역사는 1922년 로버트 플래허티의 미지의 원시사회와 격리된 북극을 담은 ‘북극의 나눅(Nanook of the North)'으로 시작된다. 다큐멘터리는 그 동안 기법과 주제에서 수많은 변화를 겪어 왔다. 그리고 실험 정신과 독창성으로 무장한 제작진에 의?자연 다큐멘터리에서 휴먼 다큐멘터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194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열린 최초의 다큐멘터리 연맹회의에서 정의 내린 것처럼 ‘다큐멘터리란 경제 문화 인간관계의 영역에서 인간의 지식과 이해를 넓히고 그 욕구를 자극시켜 문제점과 그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이성이나 감성에 호소하기 위해 사실의 촬영과 진지하고 이치에 맞는 재구성을 통해 사실의 모든 면을 영상에 기록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큐멘터리는 드라마보다 더 극적일 수 있고 한 다큐멘터리가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 프로그램 간 편차·화질 등 아쉬움도

이번 EBS의 EIDF는 시청자들에게 다양한 다큐를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 제작진에게는 불특정 다수에게 선을 보일 창구를 만들어줬다는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도 적지 않게 지적된다. 방송된 다큐의 질의 편차가 컸고 또한 화질의 문제점 등은 시청자로 하여금 적지 않은 불만을 샀다. 또 예정됐던 감독이 내한하지 않아 기대했던 시청자들을 실망시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걸음을 뗀 EIDF는 공영방송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실험성과 독창성 그리고 방송의 존재 의미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벌써부터 EBS의 2회 EIDF가 기다려진다.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4-09-08 14:12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knbae2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