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인가

[Books] Made in USA
미국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인가

이 책의 역자들이 ‘20세기와 21세기의 프랑스를 넘어서는 세계적 지성’이라고 추켜세우는 저자 기 소르망(60)의 인기는 한국에서 참 대단한 모양이다. 책을 낸 출판사는 ‘9ㆍ11 테러 3주년과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국어, 영어, 불어로 동시 출간되는 미국 문명 비판서’라고 선전하고 있다. 저자 기 소르망 스스로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자신의 이 책을 “프랑스와 한국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 쓰고 있을 정도이다.

책 내용부터 들여다 보자. 기 소르망은 ‘참여한 여행자’의 시각에서 1962년 처음 미국에 갔을 때부터 스탠포드대 후버 연구소에서의 체류 경험, 그리고 인터뷰와 현장 여행 등 2004년까지의 개인적 조사들을 토대로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가 있는 모든 곳에 미국이 있다. 매일 우리는 미국적인 것들을 소비한다. 그렇기에 미국이라는 강박적 존재는 이성적인 통찰보다는 감정적인 것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좋아하고 우리가 싫어하는 모든 것이 ‘미국산’”이라며 이 책을 쓰는 자신의 입장은 미국을 거부하려는 것도, 미국을 모방하라고 권하는 것도 아니며 다만 그들과의 차이에 관해 탐구하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기 소르망은 무엇이든 흡수해서 자기식으로 바꿔 버리는 용광로이자 모든 것이 각자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뒤섞이는 샐러드 접시(salad bowl) 같은 사회,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대립, 개인을 곧 신과 동일하게 여긴 나머지 개인을 총체적으로 해방하는 풍토 등을 미국 사회 내부의 모습이라고 파악한다.

그가 밖에서 보는 미국은 그렇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는 결론에서 “우리 시대의 미국 애호가는 미국을 사랑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단지 미국을 증오하지 않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9ㆍ11 이후 한때 미국인들과 융화되었던 유럽인들도 미국의 이라크 공격 이후 다시 반미주의자로 돌아선 현실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행복해 질 권리를 갖기 위해서 구성’된 나라이며 “이러한 약속에 분노하는 모든 사람들은 반미주의자가 될 권리가 있다”고까지 비아냥 조로 말한다. 나아가 그는 “미국인들은, 물론 이해 관계에 의해서 이기도 하지만, 진정 세계를 위해 이롭다고 믿는 소명때문에 제국주의자들이 된다. 미국인들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행복과 구원을 추구하며, 이러한 행복과 구원을 우리에게도 가져다 주고 싶어 한다”고 말하면서 이것을 ‘민주적 제국주의’라 표현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국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한국어판 서문’에서 그는 “프랑스인들과 한국인들은 미국에 대해 모호한 감정들을 갖고 있다”며 “1944년 프랑스의 해방과 1950년 한국의 해방이 미군에 의해 이뤄졌지만, 현재 이 두 나라의 여론은 미국에 적대적이다. 이들은 미국이 민족 문화와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한국의 해방이 1950년 미군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이 진짜 기 소르망의 생각인지, 아니면 그의 무지와 편견에서 나온 것인지 모르지만 이 책은 이 첫머리부터 거북한 맛을 남긴다. 나아가 그는 두 나라의 반미주의는 이성적이라기보다는 감정적이라면서 “한국인들과 프랑스인들이 이성적으로 미국을 대한다면, 그들은 미국이 없는 세계가 어떠할지에 대해 질문해 봐야 한다”며 “프랑스와 한국은 미국이라는 ‘호의적인’ 제국보다 정중하지 못한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또 다른 제국주의에 종속될 가능성이 있다”고까지 말한다.

그의 책들이 다수 국내에 번역되고 ‘친한파’ 인사로 분류되면서 기 소르망은 마치 세계적 지성처럼 포장돼 왔지만, 프랑스 내에서 그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노선을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소수 우파 정당의 이데올로그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도 그에 대한 비판은 만만치 않다. 어쨌든 인기(?)를 입증하듯 기 소르망은 9월 9일 개막하는 광주 비엔날레에 VIP 자격으로 초청되어 참관하는가 하면, ‘Made in USA’ 번역 출간에 관한 기자 회견을 갖고 한국의 독자들에게 자신의 책을 소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기 소르망은 누누이 선입견을 배제하고 미국을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선입견 없이 그의 책을 읽고 판단하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하종오 기자


입력시간 : 2004-09-09 15:12


하종오 기자 joh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