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주의의 비민주성을 고발한다

[Books] 신분의 종말
신분주의의 비민주성을 고발한다

“ 만국의 노바디(nobody)여, 단결하라! 우리가 잃을 것은 수치심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많이 듣던 말 같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 공산당 선언’ 마지막 구절에서 노동자를 노바디로, 쇠사슬을 수치심으로 바꾸면 이 구호가 된다. ‘신분의 종말’의 저자 로버트 풀러는 “ 인생길, 나아가 ‘ 노바디랜드(nobodyland)’를 여기까지 여행해 오다 보니, 낡은 구호를 대신할 새로운 구호가 머리 속에 울려퍼지기 시작했다”며 ‘ 노바디 선언’을 만들었다.

‘ 신분의 종말’은 흥미로운 책이다. 원제는 ‘ Sombodies and Nobodies’. 섬바디는 우리말로 뭔가 대단한 사람, 특별한 사람 정도가 될 것이고 노바디는 하찮은 사람, 아무것도 아닌 사람쯤 되겠다. 로버트 풀러는 이 책에서 섬바디가 노바디에게 가하는 차별을 신분(rank)에 따른 신분주의(rankism)라고 정의, 신분주의야말로 모든 주의의 어머니이며 인간의 평등과 존엄성 회복을 위한 신분주의의 타파야말로 21세기 인류의 도덕적 목표라고 역설한다.

로버트 풀러는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물리학자로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를 역임했다. 오버린대 총장 재직 시는 교육개혁을 주도했고, 현재는 민주주의와 국제 이해 증진을 목표로 하는 비영리단체 ‘인터뉴스’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물리학자가 왜 전공과 관련 없어 보이는 이런 책을 썼는가. “이 책은 이따금 역사서나 철학서를 인용하기는 하지만 전통적인 의미의 학문적인 책도, 학구적인 책도 아니다. 오히려 아주 개인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담긴 이념은 어렸을 때의 경험, 그리고 네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나서의 경험을 담은 것이며, 의료기관을 찾아간 환자의 입장에서, 고용자 겸 피고용자의 입장에서, 또 학생으로, 교사로, 대학 총장으로, 나아가 전 세계를 두루 여행하며 국제 문제를 관찰해온 여행자로서의 경험을 담고 있다.”

그의 표현처럼 우리는 인생길, ‘ 노바디랜드’ 어디에서나 신분에 근거한 권력의 남용 혹은 차별을 경험한다. 오늘의 섬바디가 내일은 노바디가 되고, 또 그 역도 성립하지만 우리 사회, 직장은 물론 집안에서도, 국제관계에서도 신분주의는 만연해 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으레 던지는 질문 “ 무슨 일 하십니까”에서부터 상대방의 신분 탐색을 시도하고, “ 억울하면 출세해라”는 금언(?)부터, 나이로 모든 것을 누르려 할 때 쓰는 “ 몇 살이나 먹었다고”를 거쳐, 부모가 자식에게 무심코 내뱉는 “ 니가 뭘 안다고”까지. 나아가 국제 테러리즘의 근저에는 국제관계의 신분주의가 있다.

저자는 물론 신분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지위나 서열은 사회 질서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신분에 내재하는 권력의 남용이 곧 신분주의가 된다. 섬바디가 특정 환경에서 노바디에게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또는 권력을 영원히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지위에 따르는 권력을 사용하면 그것은 신분 차별이다. 저자에 따르면 20세기는 인종, 성 차별 극복에서는 진전을 이뤘다. 하지만 그는 “ 민주주의 국가들은 평등을 희생시키는 대가로 자유를 추구하는 오류를 저질러 빈부 격차를 낳았고 그것은 인간의 건전한 양심에 심각한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공산주의는 경제 정의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체제를 만들었지만 그것들은 하나 같이 비민주적이고 신분적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 신분이라는 측면에 토대를 두고 인정과 존중의 재분배를 지향하는 존엄성 회복 운동은 피할 수 없는 21세기의 도전, 즉 ‘세계적인 경제 정의’라는 목표를 향한 비폭력적이고 민주적인 접근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저자의 주장은 사실 간명하다. “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고 싶은 만큼 남의 존엄성을 지켜주어라”는 것이다. 굴욕감은 영혼을 질식시킨다. 누구도 노바디의 땅에서 머무르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 책의 미덕은 그러한 우리 삶의 다양한 측면을 ‘ 신분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들여다보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 데 있다. ‘ 노동의 종말’과 ‘ 육식의 종말’을 쓴 제레미 리프킨은 그런 면에서 이 책을 “ 우리의 일상 생활에 새로운 개안을 주는 ‘아이 오프너(eye-opener)”라고 추천했다.

하종오기자


입력시간 : 2004-09-15 11:13


하종오기자 joh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