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위험천만 오락 프로그램, 시청률 경쟁이 부른 예고된 사고

[배국남의 방송가] 시청률이 사람 잡았다
엽기·위험천만 오락 프로그램, 시청률 경쟁이 부른 예고된 사고

성우 장정진씨가 KBS오락프로그램 녹화중 떡먹기 시합을 벌이다 기도가 막혀 중태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 병원으로 옮겼으나 중태다.

오락 프로그램에 대한 질타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9월 13일 KBS 2TV ‘일요일은 101%’ 의 한 코너 ‘골목의 제왕’ 녹화 중 떡먹기 시합을 벌이던 성우 장정진(51)씨가 기도가 막히는 사고가 발생, 중태에 빠지면서 안전 불감증에 빠진 방송사 오락 프로그램 제작진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이번 사건은 제작진과 시청자 모두에게 방송사의 오락 프로그램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아울러 방송사에서 내 보내고 있는 오락 프로그램의 실체와 문제를 점검하고 대안 마련의 장도 마련하게끔 했다.


- 저질·선정성·폭력성의 집합체

우선 오락ㆍ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시선 문제이다. 방송 초기부터 오락ㆍ예능 프로그램은 ‘저질의 대명사’ 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성장한 장르다. 대중문화에 대한 전문가들의 부정적 인식이 그대로 오락ㆍ예능 프로그램에 전이 돼 시청자들도 저질ㆍ 선정성ㆍ 폭력성이 난무한 장르라는 선입견을 갖게 됐다. 교양은 공익적이고 오락 프로그램은 유해하다는 이분법이 고착된 상황에서 코미디, 가요 프로그램, 퀴즈 프로그램, 버라이어티쇼, 토크쇼 등 다양한 분야의 오락, 예능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오락 프로그램에 저질이라는 비난이 쏟아질 만큼 오락 프로그램의 내재적 문제는 적지 않았다. 하지만 방송의 주요한 기능 중 하나인 시청자들에게 즐거움과 웃음을 선사한 것도 사실이다. 오락 프로그램을 비난하면서 즐겨 보는 이중성이 전문가에게나 시청자 모두에게 존재한다. 오락은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욕구분출의 시대인 요즘에는 더욱 그렇다. 비난 일변도로만 치닫고 있는 오락 프로그램에 대한 시선을 거두고 오락의 기능을 인정하며 문제점을 최소화하는 태도가 시청자들에게 그리고 전문가들에게 필요하다. 이러한 시선 교정은 유쾌하면서도 상쾌한 오락 프로그램을 양산하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방송사에서 내보내고 있는 오락 프로그램에 내재된 문제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가장 큰 것이 포맷(형식)의 획일성이다. 오락 프로그램은 포맷이 전부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포맷이 프로그램의 존폐를 결정하는 주요한 변수이다. 포맷은 대중의 기호와 취향에 따라 매우 민감하게 유행을 탄다.

방송 초창기였던 1960~70년대에는 가요 프로그램과 정통 코미디 등이 주류를 이뤘고 1980년대에는 개그맨들이 대거 등장해 다양한 코미디 코너로 진행된 ‘쇼비디오 자키’ 등 개그 프로그램 등이 인기를 끌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유명 연예인이 진행하는 토크쇼와 시트콤 그리고 수많은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버라이어티 쇼가 선을 보이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았다.

근래 들어서는 정보와 오락이 겹치는 다양한 퓨전 장르 오락 프로그램에서부터 퀴즈 프로그램 등 다양한 포맷의 오락 프로그램이 방송되며 가수 연기자 개그맨 등이 총출동하는 버라이어티쇼 프로그램이 득세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러한 오락 프로그램의 포맷은 상당부분 미국이나 일본에서 유행한 것을 채용한 것들이 많다.

그것도 KBS, MBC, SBS 등 방송 3사의 오락 프로그램 포맷은 약속이라도 한 듯 천편일률적이어서 차별화된 형식을 보기 어렵다. 한정된 그리고 독창성이 없는 포맷을 방송하다보니 시청자들을 잡기 위해 보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진행하지 않을 수 없다. 자본과 인력을 투입해 독창적인 포맷 개발에 나서 시청자를 잡기 위한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현재 미국에선 비난의 목소리가 높지만 다양한 리얼리티쇼를 개발해 내보내고 있고, 일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버라이어티쇼가 유행하고 있다. 시급한 과제는 우리 문화와 특성 그리고 대중의 취향 등을 살린 한국형 오락 프로그램 포맷을 개발하는 일이다.


- 연예인 일색 출연진, 진행자 자질도 문제

포맷 외에 또 다른 오락 프로그램의 문제는 진행자와 출연진이 연예인 일변도여서 파생되는 것 들이다. 우선 진행자 쪽을 보면 방송 3사가 간판으로 내보내고 있는 버라이어티쇼와 가요 프로그램은 약속이라도 한 듯 유명 개그맨과 가수, 탤런트들 일색이다.

겹치기로 출연하고 있는 이들 진행자들 상당수가 언어 사용에서부터 진행 방식 등에 적지 않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말도 되지 않는 국적 불명의 언어사용, 비어와 은어의 남발 등으로 비판 받는 강호동, 유재석 등이 대표적 경우다. 박한별 등 가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MC들은 내용도 제대로 숙지 못해 프로그램의 흐름을 끊어 놓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일부 자질 없는 연예인 일변도의 진행자 문제와 함께 연예인 일색의 출연진 또한 문제다. 포맷과 내용이 별 볼 일 없으니 많은 연예인들을 출연시켜 시청자들 눈길을 잡자는 제작진의 단순하고 안이한 제작 관행이 불러온 문제다.

스타를 프로그램에 출연시키기 위해 그 스타가 출연하거나 낸 영화나 음반을 선전, 홍보해주는 광고의 장으로 전락 한 것도, 신인들이 자신들의 얼굴을 알리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방송사의 무리한 제작 지시를 따르다 안전사고를 일으키는 것도 연예인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오락 프로그램에서 빚어지는 문제다.


- 우리 특색 살린 독창적 프로 만들어야

최근 음반을 내고 활동하고 있는 유진의 경우, 하루가 멀다 하고 방송 3사의 오락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음반을 선전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밖에 많은 사람들에게 시청에 방해를 주고 짜증까지 나게 하는 무분별한 자막 사용, 특정 업체의 간접 광고, 특정 기획사 소속 연예인의 편중 출연, 출연하는 일반인들의 희화화 등, 오락 프로그램은 개선해야 할 문제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오락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에게 중요한 오락을 제공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오락 프로그램은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장르로 거듭나야 한다. 이를 위해선 우리의 특색을 살린 독창적인 오락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송하기 위한 제작진의 고민과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만 오락 프로그램에 씌워진 오명을 벗을 수 있다.

입력시간 : 2004-09-21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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