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와 화해를 위한 굿거리 한마당극작가 오태석 대표작, 인간사에 맺힌 응어리의 정화와 제의 극화

[문화비평] 극단 목화 <백마강 달밤에>
용서와 화해를 위한 굿거리 한마당
극작가 오태석 대표작, 인간사에 맺힌 응어리의 정화와 제의 극화


연극열전 열한 번째 작품 극단 목화의 <백마강 달밤에>가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10월 10일까지 공연된다. 이 극은 40년간 공연무대를 지켜온 극작가이자 연출가 오태석의 대표작으로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1993년 초연되었다.

극단 목화는 1984년 창단 이후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했으며, 이를 축하하기 위해 목화의 전용극장인 대학로 아룽구지 소극장에서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 <자전거>가 올 초부터 무대에 올랐다. 1999년 개관한 아룽구지 소극장은 작가 오태석이 태어난 충남 서천의 지명을 딴 것으로 ‘아룽구지’란 ‘용이 누운 자리’란 뜻을 가진 와룡리의 현지 발음이라 한다.

- 열린 무대로 관객과 소통

60여 편에 이르는 창작과 수많은 연출 작업을 한 오태석의 작품세계를 몇 마디로 요약하기는 어렵다.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웨딩드레스>(1967), 사육신 이야기를 빌어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담은 <태>(1974) 이후 최근작을 통해서 보면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에 대한 설화적 존재들의 연민어린 시선(<지네와 지렁이>, 2001), 고전의 번안과 재해석(<기생 비생 춘향전>, 2002), 제주도 4.3 사건(<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 2002), 남북 분단과 DMZ 문제(<내 사랑 DMZ>, 2002) 등 다양한 지평을 보여준다.

그의 창작과정은 흔히 ‘생략’과 ‘비약’으로 수식되는데 이는 그만큼 관객의 상상을 통한 참여의 여지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가가 제공하는 재료를 통해 관객 각자가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공연에 대한 하나의 해석이 아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진다. 작가는 서양식 무대나 극작법이 아닌 한국의 마당극처럼 열린 무대와 구조를 선호하며, 관극행위에서도 관객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여백을 남겨둔다.


- 소통과 치유를 위한 제의(祭儀) 극

<백마강 달밤에>는 인간사에서 맺힌 갈등과 응어리를 풀어내고 정화하고자 하는 제의의 연극이다.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역사라는 종적인 시간 속에서 피할 수 없는 사회적 삶을 살아가는 인간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이들을 화해시키고자 하는 작가 오태석의 염원을 담고 있다. 극 공간은 충남의 한 마을 선암리, 백제병사들로 추정되는 일단의 유골이 발견된다.

마을의 제사를 관장하는 무당할멈은 꿈을 통해 그녀의 수양딸 순단의 전생이 과거에 백제 의자 왕을 시해한 금화임을 감지한다. 극은 천신과 산신 같은 토속신앙의 대상들, 마을사람들, 그리고 마을이 제를 모셔온 의자 왕과 백제의 충신 성충, 황산벌에서 죽어간 백제의 병사들과 계백장군 등 산 자와 죽은 자를 한 무대에 동시에 올리며 과거와 현재, 현실과 상상의 공간을 오간다.

금화의 혼이 내린 순단과 박수무당 영덕은 의자 왕과 금화를 화해시키기 위해 명부의 세계로 떠나가서 의자 왕과 성충 그리고 계백장군이 명부에서 겪고 있는 갖가지 고통과 괴로움을 지켜본다. 제의의 희생양 역할을 하는 과거 인물들의 고통이 무대에 제시되고, 모든 갈등은 마을주민들이 어우러져 벌이는 한 판의 별신굿으로 해소된다.

명부에서 백제 병사들의 칼을 맞으며 그들의 원혼을 달래는 의자 왕, 백제 인들에게 유교라는 올가미를 씌운 죄로 목에 올가미가 걸려 아무 것도 삼키지 못하는 가마우지가 된 성충, 처자식의 목을 베고 죽은 후 거미가 되어, 나비가 된 아이들을 잡아먹는 계백 장군 등 명부세계의 갖가지 모습들이 삶의 업보를 드러내려는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자유롭게 연극놀이로 펼쳐진다.

의자 왕과 그를 시해한 금화의 오랜 원한을 지금 이 마당에 불러내어 굿으로 살풀이를 하려는 작가의 내면에는 대체 어떤 응어리가 그토록 오래, 그리고 깊게 맺혀있는 것일까? 이들의 관계개선을 통해 작가가 추구하는 바는 아마도 우리 모두의 진정한 화합일 것이다.


- 연극과 제의

연극은 과거의 것을 지금 이 곳에, 상상의 것을 잡힐 듯한 현실로, 작가의 관념에 구체적인 형식을 부여하며 사건을 모방하고 재현하는 예술이다. 연극은 그 기원에서부터 신에 대한 제의에서 비롯하였으며, 현대연극의 경향은 연극의 기원인 제의로 거슬러 올라가서 그 원초적 에너지와 치유의 기능을 회복하고자 한다.

무당이 영적세계를 현실세계와 연결하듯 배우는 상상세계를 현실세계와 연결한다. 오태석의 연극은 그런 의미에서 제의적이며 현대의 제의적 연극의 흐름 속에 있다. 그의 무대에서는 현실과 환상의 특별한 구분이 없으며, 영적인 존재들은 현실의 존재들과 공존한다. 극에 등장하는 세 명의 무당(황정민, 성지루, 이수미 분)은 특히 이 두 세계간의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미디어는 영매를 뜻하는 미디엄과 어원이 같다).

할멈은 천신이나 산신과 대화 아닌 대화를 나누고, 금화의 혼이 내린 순단은 저승의 의자 왕과 소통한다. 무당이 집단의 악을 정화하듯 극중 등장인물인 이들은 굿을 통해서 마을사람들의 갈등을 치유한다. 모름지기 연극은 제의의 이러한 원초적 기능을 회복하여 관객에게 형이상학적 위안을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 극단 목화의 무대연기

목화 연기자들은 나름대로 독특한 스타일의 연기를 일사분란하게 펼친다. 오태석의 극 세계와 그 표현방식에 이들이 이미 익숙한 까닭이다. 관객을 향하여 정면을 바라보며 서로 대화를 나누는 ‘논두렁 식 화술’도 그 한 예이다. 배우들은 매우 안정적이며, 편안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예의 작가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언어의 면에서 보자면 여러 인물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모두 같은 언어, 하나의 목소리를 낸다. 그것은 단지 한 가지 방언이 사용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물들 각자의 개성을 작가가 선택한 언어의 힘이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역시 시각적인 면에서이다.

인물을 대신하는 종이인형, 온 몸에 칼을 맞는 의자 왕(손병호 분), 나비나 가마우지, 거미의 형상화는 인상적인 장면들이다. 브레히트의 영향으로 그의 무대는 연극이 연극임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방식을 고수한다. 상상력이 풍부한 관객이라면 오태석의 무대 <백마강 달밤에>를 찾아 굿판에 기꺼이 동참할 일이다.

* 때 2004년 9월 3일~10월 10일 |* 곳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 * 작 · 연출 오태석 |* 제작 목화 레퍼터리 컴퍼니 |* 출연 정진각, 손병호, 성지루, 황정민, 조은아, 강현식, 이병선, 이수미, 김홍준, 김혜영, 이도현, 주혁준, 박세용, 이동용, 김문정, 외. |* 문의 극단 목화 02-745-3966

송민숙 연극평론가


입력시간 : 2004-09-21 18:48


송민숙 연극평론가 ryu1501@korne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