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의 사운드로 가슴을 녹이다시리도록 맑고 투명한 선율과 목소리, 어쿠스틱 포크 사운드 열풍

[문화비평] 르 꾸플 < Le Couple >
순수의 사운드로 가슴을 녹이다
시리도록 맑고 투명한 선율과 목소리, 어쿠스틱 포크 사운드 열풍


1960년대 후반~70년대 초반의 일본 대중음악계는 서구의 영향을 받은 다양한 스타일이 공존하는 활발한 실험의 장(場)이었다. 60년대 일본에서도 새로운 음악의 유행은 대학가에서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여졌고, 그 중 포크음악은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으며 젊은이들의 트렌드로 자리하게 된다.

소위 ‘뉴 뮤직(new music)’으로 불린 세련된 팝 사운드나 대학가에서 자리 잡은 스타일의 ‘칼리지 팝스(college pops)’, 기존의 포크와 구별하는 의미로서의 ‘뉴 포크(new folk)’ 등은 모두 포크음악과 뚜렷한 경계를 가지지 않은 채 당시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었다.

하시다 노리히코, 포크 크루세이더스, 뚜아 에 무아, 모리야마 료코, 빌리 반반, 가토 토키코 등이 대표적인 아티스트들로, 이 시기에 자신들의 감성을 한껏 담은 작품들을 쏟아내었다. 포크음악은 이후 변화를 거듭하며 이어지다 90년대에 불어 닥친 새로운 포크음악 열풍에 새롭게 옷을 갈아입고 다시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복고적인 어쿠스틱 포크 사운드의 폭발적인 인기몰이를 이룬 주인공이 바로 부부 듀엣 르 꾸플(Le Couple)이다.


- 90년대 일본 대중을 사로잡은 부부

프랑스어로 ‘부부’라는 의미를 지니는 단어인 ‘couple’을 이름으로 내세운 이들은 여성 싱어 후지타 에미의 지극히 맑고 투명한 목소리를 바탕으로 아름답고 서정적이고 세련된 포크음악을 들려준 팀이다. 르 꾸플의 음악은 부드러움과 구성의 유연함, 그리고 멜로디와 음색의 따스함 속에 담긴 섬세한 감성을 큰 특징으로 한다.

이를테면 맑은 하늘에 떠 있는 뭉게구름 사이로 떠가는 작은 민들레 씨앗을 세밀하게 묘사한 풍경화와 같은 느낌이 그들의 음악에 담겨 있다. 작곡과 기타 연주를 담당하는 후지타 류지가 들려주는 상쾌한 아침 공기와 같은 기분 좋은 기타 사운드는 때론 부드럽게 귀를 간질이고 때론 흥겹게 발을 구르게도 한다.

60년대 말의 아름다운 포크음악에 90년대 식 세련미가 담긴 화사한 옷을 입힌 듯한 르 꾸플의 음악은 기존의 일본 대중음악이 지닌 화려한 연주, 편곡 등과 차별을 이루는 소박하고 순수한 사운드로 90년대 중반 일본의 대중들을 단숨에 사로잡을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미국의 로큰롤, 블루스와 포크 등 여러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후지타 류지(1963년 11월7일 도쿄 생)는 비틀즈를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19살 때 컨트리 그룹에서 베이시스트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으며 고교 졸업 후 신주쿠의 라이브 클럽 ‘위시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동갑내기인 후지타 에미를 만났다.

음악을 좋아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노래를 불러온 후지타 에미(1963년 5월15일 도쿄 생)는 중학교 1학년 때 이미 한 기획사에 발탁돼 가수 데뷔를 한 소녀가수. 자유롭지 않은 생활에 환멸을 느껴 곧 음악계를 떠나 평범한 생활을 하게 되지만, 회사에 다니면서도 밴드 활동을 하는 등 여전히 음악에 대한 애정을 간직하고 있었다.

클럽에서의 만남 이후 한 밴드에서 함께 활동을 하게 된 두 사람은 이내 가까워졌고, 90년에 결혼을 한다. 결혼 후 안정된 생활을 위해 밴드 활동을 중단하고 회사에 다니기도 했지만 이들의 길은 역시 뮤지션이었다.

라이브 클럽에 출연하는 등 음악 활동을 계속해온 두 사람은 서른 살이 넘어서 프로 뮤지션으로서 길을 걷게 되었다. 94년 7월, 싱글 ‘海の底でうたう唄(우미노 소코데 우타우 우타; 바다 밑에서 부르는 노래)’로 데뷔한 뒤 95년10월~96년6월 일본 내의 631개 케이블 방송국을 모두 순회하며 프로모션을 펼쳐 화제를 불러 모았다.

르 꾸플의 이름은 널리 알려졌고 97년 후지 TV의 드라마 ‘한 지붕 아래에서 2’에 삽입된 싱글 ‘ひだまりの詩(히다마리노 시; 양지의 시)’가 대히트를 기록했다. 180만 장이라는 놀라운 판매고를 기록하며 오리콘차트 2위에 오른 이 곡으로 르 꾸플은 스타덤에 오른다. 아름다운 포크 사운드를 담은 이 곡은 그 해 일본 유선 대상에서 요미우리 TV 특별상과 일본 레코드 대상 우수 작품상을 수상했으며 이후 초등학교 교과서에 채택되어 수록되는 등 그야말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최근에는 국내의 TV 광고를 통해 이 곡이 소개되기도 했다.

데뷔 이래 10년 동안 일본 내에서 600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하는 등 커다란 상업적 성과를 거둔 르 꾸플이 데뷔 10년이 되는 2004년 7월 10년 활동을 결산하는 베스트 앨범 ‘10年物語(쥬넨 모노가타리; 10년의 이야기)~All Singles Of The Decade And More~’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이들의 역사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작품집이다.

어느 한 곡이 특별히 좋다고 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이들이 들려주는 음악의 고른 완성도를 말해준다. 데뷔 싱글 ‘海の底でうたう唄’와 가장 큰 히트를 기록했던 ‘ひだまりの詩’를 비롯하여 자신의 삶에 대해 감사한다는 내용을 담은 잔잔한 곡 ‘My Special Thanks’, 바이올린 연주가 인상적인 포크 블루스 스타일의 ‘緣は異なもの(엔와 이나모노; 서로 다른 인연)’, 물 흐르듯 편안한 피아노 연주와 탁월한 선율이 매력적인 ‘逢えてよかった(아에테 요캇타; 만나서 다행이야)’, 후지타 에미의 차분한 보컬과 간주 부분의 상큼한 피아노 연주가 멋진 ‘ふたつの夢(후타츠노 유메; 두 개의 꿈)’ 등 가을밤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여러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김경진 음악평론가


입력시간 : 2004-10-05 16:53


김경진 음악평론가 arzache10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