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동화가 있는 구절양장 호숫길애절한 사랑얘기와 역사가 어우러진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

[주말이 즐겁다] 소양호 드라이브
가을동화가 있는 구절양장 호숫길
애절한 사랑얘기와 역사가 어우러진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


“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 우는 두견새야. 열 여덟 딸기 같은 어린 내 순정, 너마저 몰라주면 나는 나는 어쩌나….”

해 넘어가는 강변에서 떠나간 님을 기다리는 여심(女心)을 노래한 ‘소양강 처녀’는 나이와 계층에 상관없이 많은 국민에게 사랑 받는 가요다. 노래의 배경인 소양강은 북한강의 지류로서 인제 합강나루서부터 북한강에 합류하는 춘천까지의 물줄기를 일컫는다. 그러나 1973년 소양댐이 완공되면서 거의 대부분이 호수로 바뀌고 말았다. 이 가을, 귀 기울이면 어디선가 못 다한 사랑 노래 들릴 듯한 소양호로 떠나보자.

- 소양강을 지켜온 천년 절집 청평사

소양호 주변에서 제일 인기가 있는 곳은 바로 오봉산(779m) 줄기가 소양강으로 잦아드는 기슭에 자리한 청평사(淸平寺). 오르는 길목에서 만나는 구성폭포는 높이 7미터밖에 안되지만 모습이 단아해 연인들에게 인기가 있다. 짝사랑에 관한 전설이 전한다. 장소는 아주 먼 옛날 중국의 당나라. 평범한 백성인 한 총각이 공주를 짝사랑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이 아닌가. 결국 총각은 상사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총각은 죽은 뒤에도 공주를 잊지 못하고 뱀이 되어 공주의 몸에 달라붙었다. 왕실에선 온갖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한 도사의 말을 듣고 이곳 청평사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공주는 불공을 드리러 가면서 이 폭포에서 목욕재계하고 상사뱀을 떨쳐버리게 된다. 구성폭포 위쪽 전망 좋은 바위 위에 서있는 삼층석탑은 당시 공주가 세운 탑이라 하여 ‘공주탑’이라고 불린다.

구성폭포에서 조금만 오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려정원(高麗庭園)의 흔적이 남아있는 영지(影池)가 있다.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는 전형적인 고려시대 연못이라는 게 전문가의 평가. 고려 때 학자인 이자현이 문수원을 경영할 때 자연경관을 최대한 살려 계곡에 수로를 만들고, 물길을 끌어들여 정원 안에 연못을 만들어 오봉산이 비치게 했으며, 물레방아도 만들어 돌렸다. 구성폭포부터 오봉산 정상 부근의 식암(息庵) 부근까지 3km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문수원은 그 후 조선 때인 1550년 보우스님이 중창하면서 청평사로 개칭한 후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극락전을 비롯한 많은 국보급 유적이 6ㆍ25전쟁 때 소실되었고, 현재는 회전문(廻轉門 보물 제164호)만이 옛 영화를 일러준다. 회전문은 빙글빙글 돌아가는 문이 아니다. 윤회의 전생을 깨우치기 위한 마음의 문이다. 부드러운 용마루 곡선과 불꽃같은 오봉산 암봉의 조화가 일품이다.

청평사를 벗어나 다시 46번 국도를 타고 양구쪽으로 조금만 달리면 추곡약수를 맛볼 수 있다. 200여 년 전에 산신령의 계시로 발견했다는 이 약수는 진한 사이다 맛이 나는 탄산수. 오래 복용하면 위장병, 빈혈, 신경통, 고혈압 등에 치료효과가 있다는 게 주민들의 자랑이다. 추곡약수를 한 모금 들이키고 나서면 길은 호수를 끼고 이어진다. 가을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호수 풍광이 제법이지만 길이 심하게 굽이돌기 때문에 한눈 팔면 위험하다. 가을 호수의 정취를 맛보며 구절양장 호숫길을 그렇게 달리다보면 어느덧 양구 선착장. 여기서부터 길은 호수와 헤어져 양구 읍내로 향한다.

양구읍 공리마을 길가에 서 있는 기념비. 거기서 길손은 구한말 의병 항쟁기에 춘천을 중심으로 강원 의병을 지도한 의암 류인석(毅庵 柳麟錫 1842∼1915) 의병장을 만난다. 류인석 의병장은 을미의병, 정미의병 이후 국외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안중근, 홍범도 등과 함께 활약하면서 국내외 통합의병기구를 추진하기도 했고, 1910년 13도 의군이 조직된 후엔 도총재로 추대되었던 독립운동가다. 또 8도 의병이 연합해 서울진공계획을 세우기도 했던 의병장 류인석. 비록 그 작전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선열들의 그런 정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가을이 있는 게 아니겠는가. 묵념하지 않을 수 없다.


- 소양강 상류에서 태어난 박인환 시인

사이다처럼 톡 쏘는 맛이 있는 추곡약수.

이후 길은 양구를 지나 남진하다 양구교를 건너 인제군으로 이어진다. 남면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왼쪽에 호수를 끼고 4차선 확장 공사가 한창인 국도를 20여분 달리면 인북천과 내린천이 만나는 합강나루. 바로 소양강의 시작이기도 하다. 전망 좋은 자리엔 합강정(合江亭)이 서있다. 조선 숙종 때 세워졌다는 이 정자에서 길손은 한 시인을 만나게 된다. 바로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같이 애절한 시를 남긴 박인환(朴寅煥 1926∼1956) 시인이다.

30세의 나이로 요절한 박인환 시인은 명동의 댄디 보이라 불리며 술과 로맨티시즘에 젖은 보헤미안이었다. 늘 정장을 하고 다니면서 항상 진한 커피를 마셨고, 멋지게 시가를 피워 물곤 했던 시인의 고향이 바로 소양강의 최상류 부근인 인제읍 상동리였던 것이다.

합강정 한쪽에 서있는 시비엔 ‘세월이 가면’ 초고가 새겨져 있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그 눈동자 입술은/내 가슴에 있네./바람이 불고/비가 올 때도/나는/저 유리창 밖 가로등/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중략)” 시인이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즉석에서 써내려 갔다는 시를 읊조리다 고개 들면, 어느새 품에 안긴 가을이 뺨을 어루만진다. 지금은 떠나간 옛 연인의 손길처럼.

▲ 숙식 소양댐 주변엔 숙식할 곳이 많다. 소양댐 아래의 세월교 근처엔 샘밭막국수(033-242-1712) 등 막국수집이 많다. 청평사 들어가는 길목에 몇 개의 산장형 민박집이 있다. 추곡약수터에선 약수밥, 신남선착장 주변에선 청국장을 맛볼 수 있는 식당과 민박집이 여럿 있다.
▲ 교통 서울→46번 국도→가평→춘천→세월교→소양댐(청평사 배편)→46번 국도(양구 방면)→추곡약수→양구→양구교→남면 삼거리(좌회전)→44번(46번 공용) 국도→인제→합강정.

민병준 여행 작가
'이 땅에 가장 아름다운 여행지' 저자

입력시간 : 2004-10-13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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