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달리한 두 사상가의 내면 엿보기

[Books] 루쉰의 편지·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시대를 달리한 두 사상가의 내면 엿보기

■ 루쉰의 편지
루쉰, 쉬광핑 지음ㆍ임지영 옮김
이룸 발행ㆍ1만7,900원

■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정수일 지음
창비 발행ㆍ1만2,000원

중국의 혁명가 루쉰(魯迅ㆍ1881~1936)과 무함마드 깐수로 알려진 정수일이 쓴 편지 모음집이 각각 발간됐다.

‘루쉰의 편지’는 루쉰이 자신과 사제지간으로 나중에 두번째 부인이 된 쉬광핑(許廣平ㆍ1898~1968)과 주고 받은 편지 40여 편과 일기를 모은 책이다.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는 정수일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996년 체포된 후 2000년 8월 석방될 때까지 아내에게 보낸 편지들을 모았다.

루쉰의 편지에는 사상가, 혁명가로서의 면모와 함께 한 남자로서의 면모가 남김없이 드러난다. 그의 문학작품이나 사상서로서는 짐작할 수 없었던 측면이다. 편지 전편에 흐르는 쉬광핑과의 연애, 결혼에 관한 감정은 또한 신문화 조류의 과도기에 당대의 문화와 사상, 도덕, 정서, 일상생활의 방식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베이징여자사범대학 학생이던 쉬광핑은 1923년 10월부터 1925년 봄까지 루쉬의 강의를 들었다. 강인한 성품과 굳은 의지를 타고 난 그녀는 당시 학생자치회 지도자로 선출되기도 했다. 두 사람이 주고 받은 편지는 1925년 3월부터 1932년 말까지의 것들. 루쉰이 베이징에서 중국 정부의 문화 탄압에 위협을 느껴 샤먼(夏門)으로, 다시 광저우(廣州)와 상하이(上海)로 피신해 다닐 때 주고 받은 서신들이다.

‘작은 연꽃송이와 작은 고슴도치’ 같은 유희적 필치로 자신들의 사랑을 표현한 글이나, “온통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고민, 고민, 고민…”이라며 스스로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낸 루쉰의 편지에서는 사회개혁을 논하는 그의 강철 같은 글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인간적 측면을 알게 해 준다.

정수일의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는 마치 한국근현대사를 집약해놓은 것 같다. 일제를 피해 중국으로 이주한 유민의 후손으로 태어나 해방 후에는 중국의 외교관으로 봉직, 이후 북한과 남한에서 대학교수로 있다 결국 수의를 입은 그가 겪은 인생의 부침과 역사에 대한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대의 소명에 따라 지성의 양식(良識)으로 겨레에 헌신한다’는 것을 삶의 화두로 삼고 있다는 그는 이 편지들로 스스로의 삶을 중간결산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옥중에서 원고지 2만5,000장이나 되는 연구물을 생산, 출옥 후 ‘씰크로드학’ ‘문명교류사 연구’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등 전공 분야의 놀라운 성과를 출판한 그의 학문에 대한 열정은 놀랍다.

용수통을 뒤집어 책상으로 쓰거나, 책을 여러 권 보자기로 싸서 그걸 책상으로 삼아 집필하면서 느낀 고통을 술회하는 대목이 그렇고, 7종의 동양어와 5종의 서양어 등 12종의 언어를 섭렵하고도 옥중에서 다시 산스크리트어 등 2~3종의 고전어를 습득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편지를 써본게 언제인지,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며 부박한 몇 마디 통신용어로 안부를 삼는 요즘의 우리들에게 정신이 담긴 편지의 소중함을 새삼 일깨워주는 책들이다.

하종오 기자


입력시간 : 2004-10-13 15:27


하종오 기자 joh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