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우연성과 다면성에 대해지나간 젊음과 사랑을 붙든 안타까움과 회한의 한 시간

[시네마 타운] 제시와 셀린의 이야기 <비포 선셋>
삶의 우연성과 다면성에 대해
지나간 젊음과 사랑을 붙든 안타까움과 회한의 한 시간


9년만에 다시 만난 제시와 셀린의 이야기 ‘비포 선셋’은 전편 ‘비포 선라이즈’처럼 두 배우의 대화만으로 가득찬 독특한 영화다. 여전히 그들은 영화 속에서 별다른 사건 없이 끊임없이 이런 저런 이야기만을 나눈다. 둘의 이야기 옆에 지나가는 몇몇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은 말 그대로 스쳐 지나갈 뿐이다.

프랑스 파리로 바뀐 대화의 장소는 세느 강과 유람선과 도시 곳곳을 보여주지만 말 그대로 그들의 수다가 배경그림이 될 뿐이다. 여전히 그들은 부둥켜 껴안기는커녕 손목한번 잡지 않는 밋밋한 관계다. 그러나 여전히 영화는 그들의 첫 만남처럼 신선하며 짜릿한 느낌을 던져준다. 훌륭한 대사만으로도 잊지 못할 영화한편이 나올 수 있다는 걸 ‘비포 선셋’은 다시 한번 증명해준다.

영화 속에 펼쳐지는 메인 이벤트가 없다고 해서 영화 속에 관객을 사로잡는 긴장이 없다는 건 아니다. 94년 6월 비엔나에서 꿈과 같은 하룻밤을 보내며 아쉬운 이별을 했던 그들의 재회에 관객들은 여러 가지를 궁금해 할 수 밖에 없다. 과연 그들은 약속대로 6개월 뒤에 만났을까.

만나지 못했다면 그들은 서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 남자와 그 여자는 결혼은 했을까. 했다면 그 파트너들은 제시와 셀린보다 더 어울리는 사람일까. 혹 세월이 그들을 그저 세상 속에 닳고 닳은 속물로 변해버리게 만든 건 아닐까. 그렇다고 해도 그 세월 속에서 이들은 서로를 그리워하지 않았을까. 결국 그들은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일까. 다시 만난다면 그들은 다시 헤어지려고 할까.

- 9년 만의 만남과 가슴 설레는 교감

영화는 이런 궁금증들을 조금씩 조금씩 해결해주면서 영화가 끝나도록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는다. 9년 전의 하룻밤을 책으로 펴낸 제시가 파리의 서점에서 책 사인회를 하고 그 장소에 셀린이 등장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우선은 반갑고 그렇지만 서로에 대해 어색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은 처음엔 별 의미 없는 주변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전편에서 하룻밤이라는 시간을 나눌 수 있었던 이들에게 이번에 주어진 시간은 제시의 미국 행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인 1시간 정도. 관객은 그 짧은 시간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궁금증을 둘이 빨리 해결해주기 바라는 긴장감에 속이 타기 시작한다. 9년이라는 시간이 벌려놓은 그들의 간격은 어쩔 수 없는 어색함으로 이들을 우선 감싼다. 하지만 “그때 정말 거기 왔었니?”라며 정말로 궁금해 하는 질문을 던지며 이들은 다시 우리가 기억하는 익숙한 친밀감 속으로 서서히 들어간다.

그런 뒤 그들이 펼치는 9년간의 이야기는 ‘성숙함’이라는 것이 가져다 주는 삶의 다면적인 모습들이다. 30대가 되어 버린 이들은 성공한 작가로, 혹은 세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환경운동가로 세상에 단단히 서있지만 행복하지 않은 결혼 생활과, 잇다른 연애의 실패라는 슬픈 뒷모습도 읽어버린 상태다.

-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

그렇지만 둘 사이에 흐르던 잊지 못한 교감만은 여전하다. 쓸쓸한 삶의 모습을 두 어깨에 걸친 이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로맨스는 여전히 가슴을 설레게 한다. 제시는 “결혼을 하는 그 순간에도 나는 너를 생각했었다”고 고백하고 셀린이 마지막 9년 전 그들의 하룻밤을 가사로 옮긴 왈츠 노래를 기타와 함께 부를 때 더 할 나위 없는 낭만이 이들을 감싼다.

그러나 이들의 로맨스 역시 30대가 되어 버린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동감할 惻ぐ?시간에 대한 회한과 함께 다가온다. 지난 세월을 더듬으면서 그들은 서로 뉴욕에 함께 몇 년이나 살았지만 서로 모른 채 지나갔으며 우연히 델리에서 마주쳤던 그 여자가 바로 셀린이었음을 확인하면서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그들의 대사에서 마저 표현하지 않은 둘의 속마음에는 “과연 우리가 정말로 맺어져야 할 제짝이 아니었을까”하는 의구심이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이들의 한 시간여의 대화는 삶의 우연성이라는 것과 잃어버린 기회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인생의 수많은 선택에 대한 상념을 자아내는 기회를 관객에게 던져준다. 내일이라곤 존재하지 않는 듯 아름다운 비엔나의 밤거리를 쏘다녔던 20대의 제시와 셀린이 30대가 되면서 그들의 이야기는 훨씬 더 세상의 범속함에 가까이 다가가고, 그들의 젊음과 낭만과 꿈이 차지하던 자리는 안타까움과 회환과 씁쓸함으로 대체 됐지만 삶이라는 것에 더 옭아 매여진 그들의 대화는 한층 성숙하고 현실감이 있다.

주연배우 에단 호크과 줄리 델피를 직접 시나리오 제작에 참여 시킨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더할 나위 없는 자연스러운 대사와 연기로 마치 한편의 다큐멘터리인 듯한 느낌의 독특한 러브 스토리를 다시 한번 완성했다. 1시간 정도가 남아있다던 제시와 셀린의 이야기는 “그러다가 비행기 놓치겠다”라는 셀린의 이야기를 끝으로 실제로 85분만에 막을 내리며 다시 한번 그들의 만남을 어떤 결론으로도 귀결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전편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관객들은 그들의 재회가 또 어떤 뒷이야기를 낳을지, 그들은 다시 몇 년 만에 만나도 똑같은 설렘과 호기심으로 만나게 될지 궁금해질 것 같다.

■ 시네마 단신
- 서울유럽영화제, 유럽 화제작 27편 상영

제5회 서울유럽영화제가 27일부터 5일 간 서울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다. 올해 영화제에는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작 ‘클린’과 각본상을 탄 ‘룩 앳 미’, ‘몬순웨딩’으로 알려진 미라 네어 감독의 신작 ‘베니티 페어’, 빔 벤더스 감독이 오래간만에 선보이는 극영화 ‘풍요의 땅’ 등 27편의 유럽 화제작이 한 자리에 모인다. 올해 영화제의 주제는 ‘페르소나 에피소드’(Persona Episode). ▲내셔널 초이스 ▲유러피안 뉴웨이브 ▲핫 브레이커스 ▲심야상영 섹션-미드나잇 익스프레스 ▲특별상영-유럽의 향취 등 다섯 개 섹션으로 나뉘어 열린다.

- 공포영화 <샘스 레이크> 크랭크 인

영화사 미로비전(대표 채희승)은 13일 미국 영화사 매버릭 엔터테인먼트(대표 마크 모건)와 공동으로 제작하는 공포영화 ‘샘스 레이크’를 지난 달 말부터 촬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매버릭 엔터테인먼트는 팝스타 마돈나가 설립에 참여하며 화제가 됐던 영화사. ‘에이전트 코디 뱅크스’, ‘퀸 오브 로데오’ 등의 영화를 제작한 바 있으며 ‘폰’, ‘엽기적인 그녀’의 공동 제작사이기도 하다. 마돈나는 현재도 이 회사를 공동 소유하고 있다. 미로비전은 기획과 캐스팅 단계에서 촬영까지 영화의 제작을 주도하고 있다.


입력시간 : 2004-10-20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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