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과 아름다운 삶에 대하여

[Books] 대화
나이 듦과 아름다운 삶에 대하여

‘대화’는 흔치 않은 소중한 만남의 기록이다. 수필가이며 영문학자인 금아 피천득 선생과 13대 국회의장을 지낸 김재순 월간 ‘샘터’사 고문, 법정 스님과 소설가 최인호씨가 나눈 두 편의 대담을 수록했다. 각각 90대, 80대, 70대, 60대인 네 사람은 자신들이 살아오면서 체득한 삶의 지혜와 경륜을 꾸밈없는 대화 속에 풀어놓고 있다.

1910년생, 올해로 94세인 금아는 자신의 수필집 제목이기도 한 인연과, 예술, 신앙, 여성, 나이듦 등을 주제로 김재순 고문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도산 안창호와의 인연에 대해 “내가 살아오면서 본 것 중에 정말 명성 그대로라고 느낀 것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금강산이고 또 하나는 도산 선생이었다”고 회고했다. “선생의 삶은 진실 그 자체였다. 아마 일생을 두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셨을 듯싶다. 살다 보면 부득이 선의의 거짓말을 해야 할 때가 생긴다. 그런데 도산 선생은 ‘만약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동지에게 큰 해가 돌아갈 때만 거짓말을 해야 한다. 그럴 때도 침묵을 지키며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게 더 좋은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며 금아는 도산을 진실한 지도자로 회고했다.

“더 이상 모차르트를 들을 수 없는 것”으로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말한 만년의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금아는 “나이 든다는 것은 젊은 날의 욕망, 분노, 초조감 같은 것들이 지그시 가라앉고 안정된다는 것”이라며 죽음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잘 늙는 경지에 이르면 노년도 아름다울 수 있고 또 어느 순간 죽음이 닥쳐와도 두렵지 않다”는 것이다.

법정 스님과 최인호씨는 종교와 죽음, 사랑, 가족, 행복, 교육 등 우리가 삶에서 겪을 수 있는 철학적 주제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 하면서도 요즘 사람들은 행복이 아니라 즐거움을 찾고 있다. 행복과 쾌락은 전혀 다른 종류인데 착각을 하고 있다”고 최씨가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법정 스님은 “안목은 사물을 보는 시선일 텐데 그것은 무엇엔가 순수하게 집중하고 몰입하는 과정을 통해서 갖추게 된다. 똑 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어떤 이는 가격이 얼마라는 식으로 보고, 또 어떤 사람은 아름다움의 가치로 본다. 이는 똑 같은 눈을 가졌으면서도 안목에 차이가 있기 때문 아닐까”라고 답했다.

우리 전래의 심청 이야기를 빗대 ‘늘 깨어있는 마음’을 말하는 최인호씨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는 공양미 삼백석이야말로 우리 마음의 깨어있음을 가로막는 ‘벽’이라는 것이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공양미 삼백석은 있어야 한다는 자기 논리, 그게 일종의 ‘바보의 벽’이다. 심봉사가 눈을 번쩍 뜨는 것처럼, 그런 눈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으려면 오히려 공양미 삼백석을 없애야 한다. 공양미 삼백석이 없어도 뜰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세상을 바로본다면 우리의 삶은 기적의 연속이다. 늘 깨어 있으면 심봉사의 눈뜸과 같은 자아의 발견, 존재의 발견이 가능한 것이다.”

하종오 기자


입력시간 : 2004-10-20 18:31


하종오 기자 joh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