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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 즐겁다] 지리산 만복대
가슴 벅찬 능선의 장쾌함
들리는가, 억새의 은빛노래가…
지리산 서쪽은 온통 억새의 바다


은빛으로 휘날리는 억새꽃의 노래를 들어라. 억새의 계절이 돌아왔다. 가을의 길목에 들어서며 피어나기 시작한 억새꽃은 10월 중순이 되면 전국의 산과 들을 새하얗게 뒤덮는다. 영남알프스의 신불산과 영축산, 정선의 민둥산, 포천의 명성산 등 유명한 억새 명승지가 적지 않지만, 우리 민족에게 ‘어머니의 산’으로 불리는 지리산의 서쪽에 솟은 만복대(1,433m)도 결코 억새 나들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상지로 꼽힌다.


- 시원한 눈맛 일품인 만복대 능선





만복대는 가슴 떨리는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다. 산 동쪽엔 듣기만 해도 설레게 하던 ‘하늘 아래 첫 동네’ 심원ㆍ달궁마을이, 서쪽에는 봄마다 2,500여 그루의 산수유가 노랗게 무더기로 피어나는 상위마을, 북쪽에는 늦봄과 초여름의 신비경을 연출하는 바래봉의 철쭉 등등….

그렇지만 뭐니뭐니 해도 이런 계절엔 만복대의 시원스레 펼쳐진 능선을 수놓은 억새가 부르는 은빛 노래를 들어보아야 제격이다. 용암보다 뜨겁던 지리산의 붉디붉은 단풍 불꽃이 사그라질 때쯤이면, 이 만복대 능선엔 새하얀 불꽃이 번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눈에 걸릴 것 없이 펼쳐진 만복대 능선에 서서 파도처럼 일렁이는 억새꽃 물결 너머로 천왕봉과 가슴 시원한 지리연봉을 바라보노라면 별천지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만복대 억새는 10월 초순부터 피기 시작해 11월 초순쯤에 절정을 이룬다. 억새는 만복대에서 묘봉치 사이 능선에 가장 많이 피어있는데 이른 아침엔 은빛 억새가 되고 해질녘 황혼에 물들면 황금빛 억새가 된다. 이 사이를 거닐 때 바람이라도 불면 ‘삐이익’ 하고 ‘으악새’ 우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만복대 정상에 올라서면 사방으로 탁 트인 조망이 펼쳐진다. 주위는 온통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억새밭이다. 완만하고 부드러운 능선은 시골 초가집 지붕이나 여인의 가슴 곡선을 닮았다. 소리를 지르며 내달리고 싶은 광활한 초원지대인 것이다. 만복대 능선은 대체적으로 심원 계곡이 있는 동쪽 사면은 완만하고, 산동마을이 있는 서쪽사면은 급경사를 이룬다.

따라서 서쪽의 남원, 구례, 운봉 같은 큰 고을로부터 접근하려면 가파른 능선은 자연스레 천연의 요새가 된다. 이 때문에 마한의 피난 왕조는 물론이요, 빨치산들도 한동안 심원계곡 일원에 진을 치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정령치(鄭嶺峙)는 기원전 84년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정(鄭)장군을 이곳에 파견하여 지키게 하였다는 데서 유래한 지명이고, 노고단 입구의 성삼재(姓三峙)는 각성받이 3명의 장군이 지키던 수비성터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만복대 산행길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다.

성삼재나 정령치에서 접근하는 능선길, 상위마을에서 묘봉치로 오르는 길, 그리고 심원쪽에서 오르는 길 등이 있다. 이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면서 가장 안전한 길은 한반도의 근간을 이루는 백두대간 분수령의 성삼재∼만복대∼정령치를 잇는 능선 코스다. 산행은 성삼재나 정령치 어디서 시작해도 큰 무리가 없다.

- 종주 산행엔 3∼4시간쯤 걸려

지리산 서쪽을 지켜온 만복대

성삼재나 정령치에서 접근하기로 하고 승용차를 가지고 갔을 때는 만복대 정상까지 오른 후 되돌아 내려와야 하지만 같은 코스를 오르내리는 게 다소 지루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일행이 많은 경우에는 한 사람이 산행을 포기하고 차를 몰고 가서 산행 후 도착할 고개에서 기다리는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성삼재에서 고리봉, 묘봉치, 만복대 정상을 거쳐 정령치로 내려오는 데 넉넉잡아 3∼4시간쯤 걸린다.

정령치에서 시작해 성삼재로 가는 역코스도 걸리는 시간은 비슷하다. 보통 계절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메마른 가을철에 건조한 억새밭을 지날 때 더욱더 불조심을 해야 한다. 또 지리산 일원은 11월 초에 첫눈이 내린다는 소식이 들릴 만큼 기온이 낮고 바람 또한 매섭게 부는 곳이므로 바람을 막을 수 있는 방풍복을 준비하는 게 좋다.

산행 계획은 오후의 억새를 보느냐, 오전의 억새를 보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만복대가 산세가 험하진 않아도 해발 1400m가 넘기 때문에 오전에 둘러볼 요량으로 계획을 세우는 게 좋다.

경험 없이 오후 늦게 억새를 보려다가 늦어져서 길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착하는 날 심원이나 달궁마을 민박촌에서 잠을 자고, 이튿날 일찍 길을 나서면 이른 오후에 산행을 마칠 수 있을 것이다.



▲ 교통 수도권과 중부지방에선 일단 남원까지 간다. 남원→19번 국도(구례 방향)→밤재터널→사림리 삼거리(좌회전)→861번 지방도→천은사→시암재→성삼재 정상. 남원서 정령치로 가려면 남원→730번 지방도→주천→60번 국지도→육모정→고기리 고촌마을 삼거리(우회전)→737번 지방도→6km→정령치 정상.

▲ 숙식 지리산 주변에 민박집을 비롯해 모텔 등 숙박시설이 무척 많지만 ‘하늘 아래 첫 동네'라 불리던 심원, 달궁 마을에서 하룻밤 묵어보는 것도 괜찮다. 30∼40집이 민박을 친다. 달궁엔 오토캠핑장도 마련되어 있다.


'이 땅에 가장 아름다운 여행지' 저자



민병준 여행 작가 sanmin@empal.com


입력시간 : 2004-10-27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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