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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말, 그 훈훈한 이야기 속으로의 여행
세상속으로·이준희 지음·문이당 발행 8,800원



“ 말의 허망함을 깨닫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세상을 떠도는 말들은 대개 한 조각 삶의 진실조차 담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었다. 말은 세상을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세상을 가르고 허무는 데 더 유용한 것이었다.”

저자 이준희 한국일보 논설위원은 20여 년 기자 일을 해오면서 느낀 말의 허망함, 말에 대한 불신, 말을 다루는 기자 일에 대한 회의를 토로하는 것으로 이 책의 서문을 연다. 이 때 그가 이야기하는 ‘ 말’이란 “ 은근한 욕심을 포장하는 그럴듯한 명분”이거나 “ 내용의 공소함을 은폐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정연한 논리” 같은 것들이다. 뉴스 생산자로서의 기자를 의식한 취재원들, 이를테면 관료 정치인 기업인 학자 등 이른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내뱉는 공허한 말들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 다른 말’을 찾아 나섰다. 그것은 기왕에 보여 왔던 바 기자로서의 말을 털어 버리고, 세상을 온전히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진짜 이웃들의 말을 찾는 일이었다. 책에는 저자가 이렇게 전국 각지의 골목길과 시골 장터와 병원, 산과 들녘을 찾아 다니며 마주친 우리 이웃 30여 명의 다른 말, 곧 삶이 4가지 큰 주제로 나뉘어져 담겨 있다.

살아 가면서 누구나 한번은 마주치기 마련인 갑작스런 사고, 인생을 통째로 바꿔버리기도 하는 그 사고를 딛고 일어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대구 사는 김창윤ㆍ정경숙 부부의 사연에서 읽힌다. 부부는 딸의 졸업식 날 일어난 대구 지하철 참사로 아들 딸을 한꺼번에 잃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보다 더한 고통, 그러나 그들은 먼저 간 자식들을 가슴에 묻고 네 살 바기 아이를 입양해 키우며 미처 다하지 못한 사랑을 아이에게 주고 있다.

세상 일에 지칠 때 우리가 떠올리곤 하는 고향의 따뜻함, 그 아련함은 경북 봉화의 철도역 임기(林基)역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전해진다. 임기역은 경북 영주와 강원 강릉을 잇는 영동선의 간이역, 동네 노인들이 읍내 장에 갈 때나 붐비는 작은 역이다. 그래서 더욱 고향 같고, 역무원들은 마을 노인들을 부모처럼 돌봐주며, 마을 사람들은 어쩌다 찾아 온 외지인에게 옥수수 하나라도 건네며 고향의 훈훈함을 되새겨 준다.

전국의 오일장을 떠도는 장돌뱅이 여인 안효숙씨의 사연은 희망의 전언이다. 시련을 겪고 세상의 가장 후미진 곳에 처하더라도 희망이 우리를 지탱해 준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의류 대리점을 하던 남편, 아이들과 단란하던 안씨는 IMF사태로 모든 것을 잃었다. 대학에서 유아 교육을 전공하고 결혼 후에도 문예창작과에 진학해 시를 공부하는 작가 지망생이었던 그는 아이들을 굶기지 않기 위해 화장품 행상을 시작했다. 고통 속에서 그를 지탱한 것은 글쓰기였다. 장을 돌다 파김치가 된 몸으로 밤을 새우며 안씨가 쓴 글은 인터넷에 올려져 숱한 네티즌들을 울리고 책으로도 묶였다.

저자는 “ 초봄 스산한 시골 장터에서 햇빛 한 자락 깔고 앉아 시를 읽고 있던 장돌뱅이 여인을, 자식 잃은 슬픔을 억누르며 돌아서던 아버지의 그 허허로운 등을, 시골 초등학교에서 찾아낸 그 보석 같은 아이들의 눈을 … 결코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가 찾아낸 ‘ 다른 말’은 바로 평범함의 경이로움이었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입력시간 : 2004-10-27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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