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정에 얽힌 살인사건에서 찾는 인간본성

[시네마 타운] 금지된 욕망이 부른 파국 <주홍글씨>
치정에 얽힌 살인사건에서 찾는 인간본성

한적한 강가에 서 있는 승용차 한 대에서 돌연 총성이 울린다. 총탄이 만들어 낸 구멍이 보이고 분명 소리가 울렸는데 이 총탄이 어디서 발사된 것이며 누구를 향한 것이었는지가 보이질 않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영화 ‘주홍글씨’는 정면을 드러 내지 않는 이 첫 장면의 사건으로 돌아 오는 과정속에서 그 사건의 주인공들이 얽혀든 비밀의 실체를 조금씩 드러내보이는 식으로 진행된다.

다시 시간순으로 사건의 첫장면이 등장한다. 형사 한석규가 어느 동네의 사진관에서 생겨난 살인 사건의 수사를 시작한다. 치정 사건의 냄새가 역력한 사진관 주인의 죽음에 가볍게 착수한 형사는 그러나 보기보다 간단치 않은 사건을 파헤치면서 사진관 여주인공의 모호한 매력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걸어 들어가게 된다.

영화는 다시 이 사건의 시작으로 되돌아 오기 위해 그 속에 숨어 있는 관계의 비밀을 되짚어가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중의 이야기 구조로 진행이 된다.

스릴러의 외피를 가진 이 영화는 장르적으로 역시 영화 속 사건들의 비밀을 쫓아감과 동시에 그 속에 얽혀든 남자와 여자간의 관계와 욕망, 그리고 그것들의 결과로 다가오는 거대한 파국을 그린 멜로 드라마라는 이중의 층을 가진 영화다.

치정 관계와 살인 사건이라는 흥미로운 설정 속에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고찰이라는 철학적인 시선을 대위법적으로 배치한 영화의 화법은 세련됐으며, 이는 배우들의 진중한 연기와 매끈하게 처리된 화면과 편집등으로 더욱 빛을 발한다. 단순히 뛰어난 장르 영화로서만 머물지 않고 그 속에 담겨진 감독의 인간에 대한 전언을 한번쯤 생각게 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확실히 대부분의 상업 영화들보다는 좀더 큰 야심을 가지고 있는 드라마임을 느낄 수 있다.

다시 영화의 스토리속으로 눈을 돌려 보면, 주인공 한석규가 맡게 되는 사건의 원형은 김영하의 단편소설 ‘사진관 살인 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이다. 사진관 주인이 어느날 피를 흘리며 죽었고 여기에 그 남편과 그다지 좋지 못한 관계였던 아내 성현아가 일단 용의자로 몰린다.

사진관을 찾던 한 남자와 묘한 관계에 있었던 그 여자는 노련한 형사 한석규에 의해 쉽게 범인으로 몰릴 처지다. 그에게 이 정도 사건은 그리 어렵지 않게 풀리는 문제였다. 그는 자신의 모든 인생이 자신이 풀어왔던 사건들처럼 조금만 치밀하다면 앞뒤를 딱딱 맞춰 풀어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처럼 보인다.

겉으로는 임신한 아내를 끔직히 생각하는 더 할 나위 없이 가정적인 남편의 얼굴을 띄고 있지만, 속으로는 아내의 절친한 친구인 이은주와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있는 자신의 이중적인 인생을 아무런 어긋남 없이 조화시켜나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처럼.

“모든 유혹은 다 재미 있다. 그걸 왜 피하겠는가”라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유혹에 탐닉했던 형사는 그러나 유혹에 얽혀 든 사건이 자신이 마음 먹은대로 풀려나가지 않는 것처럼 자신이 빠져든 유혹의 그물 역시 엉켜들기 시작하는 것을 본다.

사진관에서 벌어진 사건들의 실체가 거기에 연관된 사람들의 엇갈린 시선에 따라 각각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것 처럼, 자신이 빠져든 치정의 관계에 얽힌 사람들의 각기 다른 욕망에 따라 단순한 듯 보였던 이 관계의 새로운 일면들이 모습을 하나씩 드러낸다.

자신만을 바라보는 듯한 천사 같은 아내는 벌써 다른 사람의 아기를 유산한 경험이 있었고, 욕망만을 탐닉하는 관계로 생각했던 애인 이은주는 진실한 사랑을 그에게 원하며 그의 아이를 임신한다.

언제든 빠져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 얽힌 관계속에서 어느 순간 더 이상 돌아 나오기 힘든 진창에 몸을 담그는 것 같은 자신을 발견했을 때 주인공 형사는 우연히 애인과 자동차 트렁크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의 자신을 이끌어 왔던 유혹이 거대한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 순간이다.

숨쉬기도 힘든 이 좁은 공간에서 죽음을 맞대면서 이들의 뒤틀린 욕망과 가느다란 소망과 관계속에 얽혔던 진실과 그 속에 담고 있던 진심같은 것들이 불꽃튀듯 터져 나온다. 배우들의 열연속에 파국을 맞이한 인간이 뿜어내는 교차되는 감정들이 들끓는 이 에너지 넘치는 장면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는 결코 인간의 죄악에의 탐닉과 그 유혹의 달콤함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악마적인 속성을 드러내보이는 것으로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보려는 영화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영화의 마지막을 보면서 결국 감독은 그 유혹에 빠져든 인간들의 더 할 나위 없는 초라한 결말을 그려내면서 죄의 댓가를 치르도록 한다.

성경의 구절을 인용하며 시작됐던 영화는 결국 죄와 벌에 대한 종교적인 윤리 의식으로 주인공들의 운명을 마무리 짓는다. 감독 스스로의 종교적이며 윤리적인 성향이 이끌어낸 선택으로 보여지긴 하지만, 세속적인 남녀 관계들을 조롱하며 윤리와 도덕 관념을 뛰어 넘는 새로운 인간상들을 그려내는 새로운 세기의 발랄한 영화의 주인공들에 비하면 확실히 뭔가 지나치게 무겁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이윤정 영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4-11-03 14:51


이윤정 영화평론가 filmpoo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