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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극단 연희단거리패 <오구>
통과의례로 형상화한 삶과 죽음
인생예찬의 역설 그려내며 굿의 연극적 요소 이끌어내기




저승사자 등장
굿판 장면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오구 죽음의 형식’이 연극열전 열세 번째 작품으로 동숭홀에서 공연중이다. 이윤택 작·연출의 이 작품은 1989년 초연 이후 15년간 250만 관객의 관람을 기록하며 지속적으로 재공연되어온 극단의 간판 레퍼토리다.

지난 10월 공연됐던 2004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참가작 ‘초혼’(장일홍 작, 이윤택 연출)과 더불어, 굿과 연극 간의 긴밀한 관계에 대해 한번쯤 성찰해 볼 것을 유도하는 작품이다.

연극의 기원에 디오니소스 신을 위한 축제와 제의가 있었다면 한국의 제의 양식인 굿은 한국 연극의 모태이자 원형적 자산이라는 것이 이윤택의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연극에 굿 장면을 삽입한 ‘오구’ 이후에도 그가 연출한 연희단거리패의 ‘햄릿’에서 햄릿이 선왕의 유령과 만나는 장면을 접신으로 해석한 장면이나, ‘문제적 인간 연산’에서 굿과 신 내림을 통해 연산이 모친의 한을 알게 되는 장면 등에서 반영되어 왔다.

‘초혼’에서는 극에서 벌어지는 요왕굿(바다에 빠져 죽은 넋을 위한 무혼굿)이 연극의 시작이자 끝이 되면서 굿과 연극이 하나로 통합되기에 이른다. 이런 궤적은 굿과 연극에 대한 이윤택의 지속적인 관심을 여실히 반증한다. 이는 앞으로의 극 창작에 있어서 굿이 어떤 방식으로 연극과 소통하며, 새로운 연극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기대를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굿을 연극에 그대로 옮겨 놓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굿이 얼마나 연극적으로 잘 통합이 되어서 오늘날의 문제를 담고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가가 중요하다. ‘오구’나 ‘초혼’은 그런 점에서 많은 가능성을 보여 준 작품들이다.

- 죽음의 물화, 연극

연극이 관념의 물화(物化), 즉 작가가 가진 관념을 형상화하기 위해 다채로운 물질적 형식을 부여한 것이라면 연극 ‘오구’는 죽음의 과정에 일련의 형식을 부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극은 총 8장면으로 구성된다.

대동아전쟁에 출전하여 젊어서 사별한 남편을 꿈에서 본 노모는 죽음을 예감하고 아들에게 극락왕생을 축원하는 산 오구굿 한 판을 열어줄 것을 당부한다(1-3장). 한바탕 굿판이 벌어지고 마을 사람들 모두가 어우러진 축제 분위기 속에서 노모는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다(4장).

염을 하는 등 장례 준비로 온 집안이 분주하고 초상집 장면이 무대에 재현된다(5-6장). 저승사자가 당도하여 산자들과 시비를 가리고 노모는 이들과 함께 떠남으로써 이승을 하직한다(7-8장).

죽음을 소재로 해 그 과정을 단계적으로 보여주는 이 극에서 죽음은 고통스럽거나 비극적으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당연한 일부분으로, 누구나 거쳐가야 할 통과 의례의 하나로 유쾌하고 코믹하게 묘사된다. 시신을 염하는 과정이 상세히 언급되고 그 장면이 실제로 눈 앞에서 재현된다.

다시 살아난 노모가 재산분쟁을 벌이는 아들을 나무라는 장면
굿판 장면

솜털로 숨이 멎었는지를 확인하고, 시신을 닦고 수의를 입히며, 저승길에 쓸 쌀과 돈을 고인의 입에 넣고 입관하는 장면을 재현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낯설음과 두려움을 불식시킨다. 노모를 데리러 온 저승 사자들이 현실 세계에 개입하는 방식 또한 독특하다. 현실 세계와 상상 세계가 분리되지 않고, 산자와 죽은 자가 서로 소통한다.

죽은 노모는 다시 살아나 재산을 다투는 자식들을 나무라고, 저승 사자가 과수댁과 정을 통하는 장면은 마치 하나의 무용극처럼 연출된다. 극 전체는 관객과 소통하기 위한 놀이판으로 꾸며지고 관객은 굿판에 온 구경꾼이 되어 굿에 참여하게 된다. 객석을 즐겁게 하기 위한 배우들의 헌신은 감동적이다. 이들은 배우(俳優), 한자를 파자하여 읽으면 사람도 아니면서 사람을 걱정해 주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 오구(惡鬼)굿

오구굿은 죽은 자의 넋을 극락으로 천도하는 굿이지만 여기서는 산사람의 극락왕생을 빈다는 점에서 ‘ 산 오구굿’이라고 할 수 있다. 굿이란 일반적으로 무당이 주축이 되는 굿 행위를 통해서 굿에 참여한 이들의 고통의 원인인 악귀를 물리치는 일종의 정화의식이다.

또는 ‘초혼’의 요왕굿처럼 억울한 원혼들을 달램으로써 사람들의 정신적 위안과 안정을 구하는 의식이다. 굿 참여자들의 정신의 쇄신을 위한 일련의 형식이 유형화된 것이 굿이다. 배우가 현실 속에 상상의 세계를 구축하고 연출가가 그 행위를 주도하듯 무당은 현실계와 영계를 연결해주는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 또한 굿에서는 사설과 춤, 음악, 동작 등이 동시다발적이며 총체적으로 수행된다.

굿은 특별한 장소와 시간, 특정 복장과 행위, 그 행위를 행하는 이와 지켜보는 이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연극적이다. 굿 행위는 필연적으로 굿에 관련되는 이들의 다양한 사연들을 담고 있으므로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성을 가진다. 요컨대 굿은 연극이 그러하듯 집단적 정화 의식인 것이다.

죽음의 과정을 묘사해가는 이 공연의 핵심은 역시 굿 장면이다. 굿의 현세구복적인 성격이나 그 축제적 성격은 살아 있음의 환희와 생에 대한 애절한 집착을 재확인하게 한다. 프로시니엄 무대인 동숭홀의 물리적 여건을 극복하기 위해 공연은 관객석의 통로를 배우들의 등ㆍ퇴장 장소로 적극 활용한다.

이는 일본의 전통연극 가부키에서 객석과 무대를 연결하는 배우의 통로이자 간이 무대인 ‘하나미치’처럼 관객을 공연 속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를 가진다. 떠들썩한 타악기와 피리 반주에 맞추어 객석의 뒤편에서부터 무당 석출과 무녀들이 등장하여 굿판을 맑히기 위한 주문을 왼다(“ 일쇄동방 결도량 이쇄남방 득청량 삼쇄서방 구정토 사쇄북방 영안강 도량청정 무하예 삼보천룡 강차지 아금지송 모진언 원사자비 밀가호 아석소조 제악업 개유무시 밤진치 종신구의 지소생 일체아금 개참회 옴살바 모짜모찌 사다야 사바하아”: 청보1장, 불교의 천수경 중 도량계).

주술 언어는 프랑스의 시인이자 극작가, 극 이론가인 앙토냉 아르토가 ‘극과 형이상학’에서 언급한 분절 언어의 새롭고 독특한 사용에 대한 주장을 상기시킨다. 언어는 주문으로 사용되면서 말 자체가 가진 의미에서 벗어나 음 자체의 가치와 리듬, 주술 행위의 일부로서의 중요성을 띠게 된다.

20세기 서양 연극의 방향을 새롭게 제시한 아르토의 주장에서처럼 공연을 통한 배우와 관객의 완전한 합일과 이를 통한 정신적 정화는 이미 오래 전부터 한국에서 굿이라는 형태 속에서 수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오구 죽음의 형식’은 죽음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희화화하여 그 부담을 덜어 내고, 살아 있음의 소중함을 역설적으로 확인시키는 공연이다. 극 속에 별신굿 장면을 포함하고 있는 오태석의 ‘백마강 달밤에’의 경우도 그러했지만 공연공간이 프로시니엄 무대라고 하더라도 돌출형의 열린 공간으로 조정되어 꾸며졌다면, 더욱 관객과의 적극적인 교감이 가능했으리라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때 11월 28일까지 |* 곳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 * 제작 연희단거리패 | * 작·연출 이윤택 |* 출연 강부자 남미정 하용부 조영진 정동숙 김혜민 한갑수 김소희 외 | * 문의 극단 연희단거리패 02-763-1268




송민숙 연극평론가 ryu1501@kornet.net


입력시간 : 2004-11-03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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