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통 튀게, 가볍게, 그리고 싸게가을 프로그램 개편 때 신설·강화, 시간 때우기 비난도

[배국남의 방송가] 안방극장 시트콤 부활
통통 튀게, 가볍게, 그리고 싸게
가을 프로그램 개편 때 신설·강화, 시간 때우기 비난도


논스톰5

시트콤(Situation Comedy)이 넘쳐난다. 방송 3사가 이번 가을철 프로그램 개편을 소폭으로 했지만 가장 큰 변화는 시트콤의 급증이다. 이뿐만 아니다. 위성방송과 케이블방송들은 미국의 ‘섹스 앤 시티’ 등 수입한 외국 유명 시트콤들을 내보내고 있다.

우선 SBS는 이번 가을철 개편에서 일일 시트콤 ‘’를 신설, 10월 11일부터 방송하고 있다. 빙의(憑依)라는 이색적인 형식과 캐릭터를 빌어 전개하고 있는 ‘’는 무능한 잡지사 기자(신동엽)가 자신의 조력자이기도 하고 분신이기도 한 귀신(공형진)과 동고동락을 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 중심의 시트콤이다.

- 방송 3사·케이블TV 시트콤 급증

‘논스톱’ 시리즈로 장기간 청춘 시트콤을 줄기차게 방송해온 MBC는 10월 4일부터 새로운 연기자와 배경으로 전개되는 논스톱 시리즈 다섯번째인 ‘뉴논스톱 5’를 내보내고 있다. 개그맨 김용만이 백수 역으로 오랜만에 연기에 복귀했고 ‘내 여자이니까’를 불러 신세대 스타로 부상한 이승기와 진구, 김지우, 홍수아, 구혜선, 강경준 등이 대학 영화동아리 회원들로 나와 청춘 시트콤의 명맥을 잇고 있다.

또한 11월 6일부터 ‘미라클’ 의 후속으로 주간 시트콤인 ‘조선에서 왔소이다’가 시청자와 만나고 있다. ‘두근 두근 체인지’에서 샴푸를 하면 변신하는 판타지 시트콤을 국내에 처음 시도한 뒤, 투명인간과 외계인을 등장시킨 이색 시트콤 ‘미라클’ 등 12부작 미니시리즈 형태의 시트콤의 연장선상에서 방송되는 ‘조선에서 왔소이다’는 과거와 현대를 오가는 내용이다.

조선시대 인물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현대로 오면서 양반에서 서민으로, 천민에서 재벌회장으로 뒤바뀌는 인생 유전을 그리는 시트콤. NRG 멤버 이성진과 조여정, 최창익, 서동원 등이 출연한다.

KBS 역시 일일 시트콤 한편을 방송하다가 이번 개편에서는 시트콤을 더 신설해 시청자와 만나고 있다. 11월 1일 첫 방송을 한 ‘’은 한두 개의 에피소드로 진행되는 기존의 시트콤과 달리 반전과 대사, 그리고 상황 설정으로 웃기는 콩트적 요소를 강화한 시추에이션 콩트를 지향하고 있다. ‘’은 박준형, 강성범, 김영철, 정종철 등 ‘개그 콘서트’에서 활동하고 있는 개그맨들을 주요 캐릭터로 포진시켰다.

혼자가 아니야

또한 일일 시트콤 ‘달래네 집’ 후속으로 11월 15일부터 한국판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표방한 ‘올드미스 다이어리’를 방송한다. 3명의 노처녀(예지원, 김지영, 오윤아)의 사랑과 일을 에피소드 중심으로 전개하고 또 한편으로는 3명의 할머니(김영옥, 한영숙, 김혜옥)의 이야기를 곁들인다. 또한 11월 6일부터 새롭게 단장해 방송하기 시작한 버라이어티쇼 프로그램 ‘즐거운 일요일’의 한 코너 ‘노가네’를 시트콤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같은 시트콤 강화 추세는 위성방송이나 케이블방송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무비플러스의 ‘내사랑 레이몬드’, 동아TV의 ‘프렌드’, 온스타일의 ‘섹스 앤 시티 3’ 등 주로 외국 유명 시트콤을 들여와 방영하고 있다.

1950년대 미국에서 처음 포맷과 내용을 개발해 내보낸 시트콤이 국내에 도입된 것은 1992년 SBS가 가족 시트콤 ‘오박사네 사람들’을 방송하면서부터. 이후 1회 완결구조를 갖추고 가벼운 주제의 코믹한 터치, 빠른 템포의 전개, 신세대 연기자들의 대거 투입 등을 특성으로 하는 시트콤은 시청자의 시청 호흡이 빨라지고 심각한 내용보다는 가벼운 것을 좋아하는 취향, 일회용 문화의 심화 등 시청자들의 기호와 문화적 분위기에 부합해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

시트콤의 장르도 다양해져 ‘LA 아리랑’ ‘순풍산부인과’ 등 가족 시트콤에서부터 ‘남자 셋 여자 셋’ ‘점프’ ‘행진’ 등 주로 대학생들을 등장시킨 청춘 시트콤, 그리고 ‘세 친구’ ‘연인들’ ‘허니 허니’ 등 성인 시트콤, ‘두근두근 체인지’ 같은 판타지 시트콤 등이 선을 보였다.

시트콤은 안정적인 시청률을 올리고 일반 드라마 제작비의 절반 수준밖에 들어가지 않는데다 대부분 스튜디오 제작이라는 이점 때문에 한 방송사에서 한때 3~4개씩 내보내기도 하면서 한국 방송에서 전성시대를 맞았다.

- 진부한 에피소드 나열

방방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범람하는 시트콤은 많은 문제를 노출했다. 소재가 고갈돼 진부한 에피소드만 전개됐고 스테레오타입 식의 형식이 계속 반복됐다. 또한 연기 경험이 없는 신세대 연예인들을 대거 투입해 송승헌, 한예슬, 조인성, 조한선, 현빈 등 수많은 스타로 양산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거뒀다. 하지만 연기자들이 정밀하게 계산된 고도의 코믹 연기 대신 과장 연기로 일관하면서 시트콤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문제를 노출시켰다.

또한 전문 연출자, 작가의 절대부족으로 인한 졸속 제작은 획일적인 시트콤의 양산 현상을 심화시켰고 이러한 문제점들로 인해 시청자들은 시트콤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시청률이 10% 미만으로 떨어지자 방송사들은 시트콤을 폐지하면서 명맥만을 이어오다 올 들어 MBC를 시작으로 부활을 선언하고 방송사당 2~3개의 시트콤을 내보내고 있는 형편이다.

신설된 시트콤들은 판타지 시트콤 등 새로운 내용과 소재를 선보였으나 대부분은 그동안의 문제점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뉴논스톱 5’는 신세대 연기자들의 연기력 부재의 문제가 심화됐고, ‘’은 일부 개그맨의 개인기와 애드립에 너무 의존하고 출연 개그맨들의 조화가 이뤄지지 않아 산만한 전개가 계속되고 있다. 또한 ‘’는 신동엽과 공형진의 캐릭터 정형화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다른 출연자들의 캐릭터는 아직까지 자리잡지 못해 구성이 엉성하다.

- 한국적 소재발굴·형식 만들어야

이제 국내 방송에서 시트콤의 역사는 12년에 이른다. 그 역사에 걸맞은 독창적인 한국형 시트콤의 형식과 소재 개발이 시급하게 이뤄져야 한다. 시트콤 편성 수의 증가로 그것이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양이 아닌 질로 승부하는 시트콤이 나와야 시트콤이 부활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적은 제작비로 쉽게 제작하는 시간때우기 식 편성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4-11-10 15:08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knbae2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