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슬픔 속에 묻어난 희망불행과 아픔으로 뒤얽힌 진부한 삶, 그러나 결코 절망하지 않는 봉순언니

[문학과 페미니즘] 공지영 소설 <봉순이 언니>
아련한 슬픔 속에 묻어난 희망
불행과 아픔으로 뒤얽힌 진부한 삶, 그러나 결코 절망하지 않는 봉순언니


1998년 처음 출판되었고, 이후 MBC 특별 기획 ‘책을 읽읍시다’에 선정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공지영의 <봉순이 언니>는 아마도 공지영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쉽게 잘 읽히는 책일 것이다. 공지영의 소설들은 쉽고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를 부드럽게 전달하기 때문에, 은근 슬쩍 독자들을 책으로 몰입하게 만들어 마지막 페이지까지를 한 번에 읽게 만들고야 마는 묘한 힘이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공지영의 장기가 잘 발휘된, 그러면서도 매우 대중적일 수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봉순이 언니>는 재미있고, 아련하며, 즐겁고도, 아프다.


봉순이 언니, ‘첫 사람’이자 ‘최초의 세계’
다섯 살인 ‘짱아’의 시선을 따라 서술되고 있는 이 소설은, 열한 살에 우리집 가정부로 들어온 봉순이 언니에 대한 회상을 담고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나의 얼굴을 가장 처음 본 사람인 봉순이 언니, 열세 살의 어린 나이에 나의 어머니를 대신해 갓 태어난 나를 안고 잠을 설쳤던 봉순이 언니가 20년이 지난 어느 날 불현듯 나의 기억 속으로 찾아왔기에, 그녀의 삶은 72편의 토막 이야기로 고스란히 복원된다.

서술자인 ‘짱아’, 곧 나에게 봉순이 언니는 우는 나를 달래주고, 잠자리의 베개를 고쳐놓아 주며 ‘내가 서러울 때, 따돌림당할 때, 혼자 외로울 때 나를 안아 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때문에 그녀는 나에게 ‘첫 사람’이었고, ‘나와 마주친 최초의 세계’였다. 그 봉순이 언니는 나의 기억 속에서 소상히 복원된다.

그리하여 불행을 이고 지고 살아낸 한 여성의 삶이, 이미 넘겨 버린 책장처럼, 그렇게 아쉽고, 어쩔 수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이름들로 다 커버린 ‘짱아’를 찾는다. 그리고 그 기억의 갈피들을 헤치는 작업, 72편의 토막 이야기들을 엮어 만든 소설은 봉순이 언니를 ‘생이 암전되어 버렸던 어떤 순간’에 떠올린 사람, 생을 버리고 싶었던 절망의 순간에도 오히려 그 막막한 생을 부여잡게 만들었던 사람으로 자리매김한다.


추락하기만한 생에서도 잃지 않은 웃음
봉순이 언니는 예닐곱 살에 의붓아버지의 매를 피해 도망친 이후, 가난한 삶의 켜켜이 숨은 불행들을 다 맛보며 자랐다. 맡겨진 친척집에서는 창경원 벚꽃놀이를 가서 버려졌고, 이후 고아원에 잠시 지내다가 교회 집사네 집에 맡겨졌다.

그러나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밥도 제대로 못 얻어먹어 비쩍 마르고, 온 몸이 성한 구석이 없도록 매만 맞고 지냈다. 그 열 한 살의 소녀는 친절한 셋방 아줌마(나의 어머니)네 가족이 이사를 나갈 때 따라 나섰고, 그리하여 봉순이 언니는 우리집 식구이자, 가정부가 되었다.

나를 키우며 훌쩍 나이를 먹어버린 그녀는, 어느 날 어머니가 소중히 여기던 다이아반지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는 스물도 안 된 나이에 눈이 맞았던 건달 총각과 도망을 쳤다. 그 황홀한 첫 사랑에 참혹하게 실패하고 온 몸이 멍투성이가 된 만삭의 몸으로 되돌아온 봉순이 언니는 눈물을 쏟아내며 아이를 지워야만 했다. 이후 선을 본 남자와 결혼을 했지만, 남편은 이미 중병이 걸린 사람이었고 그 남편과의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그는 죽어 버린다.

’억척스레 일만 잘 해서, 누가 꼬셔서 데려다 부려 먹기만 좋은’ 봉순이 언니는 그 이후에도 몇 남자와의 만남과 이별을 거듭한다. 그리고 그녀의 생은 ‘더 이상 젊지 않은, 예쁘지도 않고 돈도 없고, 가진 것이라고는 배고픈 아이들과 아직도 튼튼한 몸뚱이 뿐인, 저물어가는 나이의 여자’의 그것으로, ‘미끄럼을 타고 하염없이 추락’하기만 한다.

이야기가 이쯤 되면 “에이, 너무 뻔하잖아” “진부해”라고 할 만하다. 그렇다. 이 소설은 진부한 불행에 뒤얽히면서 산, 한 진부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이 누구나에게 따뜻하면서도 시큰하고 아프게 기억되는 것은 그 진부한 봉순이 언니가, 정말 ‘진부하게도’ 결코 절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엾어서, 그러고 있는 게 가엾어서 내가 도와 주고 싶었어. 밥도 따끈하게 퍼 주고 셔츠 깃도 깨끗하게 빨아 주고 저녁에 돌아 오면 대야에 물 데워서 따끈한 물에 발도 닦아 주고 싶어. 게다가 엄마 손 한 번 못 느껴 본 그 가엾은 아이들이라니’라고 중얼거리며, 결국엔 자신에게 상처만 남기고 떠날 그들 남자들을 물리치지 못한 봉순이 언니.

점점 더 가난뱅이가 되어갔고 성이 각기 다른 애들 넷을 두게 되었지만, 쉰이 다 된 나이에도 또 다른 남자와 도망을 친 봉순이 언니. 봉순이 언니는 ‘그놈의 정’ 때문에 수많은 불행들을 만났지만, 그 스스로는 결코 불행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낙천성’으로, 그녀는 어쩌면 그 불행의 굽이굽이를 따라 춤을 추었을 지도 모른다.


차마 마주치지 못 했던 그 눈빛, 희망
1960~70년대,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나 정상적으로 교육받지 못한 어린 소녀들은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모여 들었다. 그 상경 소녀들이 택할 수 있었던 정상적인 일은 공단 근로자, 혹은 시내버스 안내양. 그도 아니라면 식구이되 가족은 아닌 채 살아가는 숙식 가정부였다.

이 소설에는 그 중 한 명인 봉순이 언니 뿐 아니라, 이미 세상에 닳아 버린 마음으로 주인도 없는 집을 지키는 미자 언니, 잠시 가정부로 있다가 고향이 그리워 도망을 치면서도 보석이나 은수저가 아닌 동생들이 입을 옷을 훔쳤던 미경 언니가 나온다. 그리고 그 시절 가난의 풍경들이 펼쳐진다.

그와 대비되게, 60년대 초 산동네 세입자에서 인텔리 가장의 승승장구에 힘입어, 갑작스럽게 계급적 상승을 하는 나의 가족들이 그려진다. 집을 늘려가며, 점점 더 고급한 사치들을 즐기고, 서양식 아침과 양과자들을 먹으며, 처음 지어진 아파트로 이주를 하고는 5년마다 더 넓고 좋은 집으로 이사를 한다. 그리하여 어렵던 시절 “봉순이는 우리 식구야”라고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던 나의 어머니는, ‘더 무서운’ ‘있는 집 사람’이 되어 “쟤가 너무 잘해주었더니 이젠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오려고 하네. 어디라고 지가 따라나서, 나서길, 주제를 알아야지” 라며 봉순이 언니를 가족의 울타리에서 밀어낸다.

토스토와 우유를 먹는 나의 가족 곁에서, 부뚜막에 홀로 앉은 봉순이 언니는 오직 밥먹기를 고집하며 남은 밥을 바가지에 담아 훌훌 물에 말아 먹는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는 따뜻한 밥의 온기, 그저 인간이 서로 부비며 따스했던 시절의 남루하지만 순수했던 온기가 남아 있다.

중산층 부모 밑에서 역시나 ‘잘 자라’ 불행한 봉순이 언니를 지우면서 살아온 나는, 어느 날 전철 맞은 편에 앉아 더러운 보따리를 끼고 졸고 있는 여자, 어쩌면 봉순이 언니일 여자를 보고도 모른 척 전철에서 내리고 만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데 그런데 날 더욱 뒤돌아볼 수 없게 만들었던 건, 그건 그 눈빛에서 아직도 버리지 않은 희망…… 같은 게……. 희망이라니, 끔찍하게……’라는 무수한 문장들이 새로 씌어 진다.


사는 건 죽고 싶을 만큼 힘들어도, 밥을 퍼먹으며 비시시 웃는 것
희망이라는 단어만으로 힘겨운 세월을 버텨낸 그 시절 가여운 소녀들. 이제는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어 있을 그 시대 여성들이 그러했을까. 희망이라는 단어, 삶에 대한 희망, 자식에 대한 희망, 사랑에 대한 희망…. 실은 아무런 의미도 없을 그 텅 빈 단어가 그녀들의 삶을 얼마나 잠식했던가. 희망이라는 단어로 삶을 잠식당한 그들에게 어쩌면 불행은 존재하지도 않은 것인지도 몰랐다.

<봉순이 언니>는 그 끔찍한 희망을 스멀스멀 전염시킨다. 어떠한 불행과 절망에도 굴하지 않는 낙관과 낙천을 만난 독자에게는 눈물이 쏟아지는 비천하고 굴욕적인 삶의 굽이굽이에서도 비시시 웃으며 밥을 우적우적 퍼 먹는 모습의, 이쁘지도 않은 둥글넙적한 얼굴의 봉순이 언니가 그려진다. 그 무렵 나는 나도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봉순이 언니는 내게 말하고 있었다. 사는 건 그런 거라고. ‘죽고 싶을 만큼 힘들어도 죽으라고 밥을 퍼먹으며 비시시 웃는 것’ 그런 게 사는 거라고 말이다.

권민정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12-08 17:37


권민정 자유기고가 eunsae7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