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 위의 소달구지, 느림의 아름다움에 푹푹 빠지다하루 두번 썰물 때 만나는 소달구지 행렬

[주말이 즐겁다] 서산 웅도
갯벌 위의 소달구지, 느림의 아름다움에 푹푹 빠지다
하루 두번 썰물 때 만나는 소달구지 행렬


서해의 가로림만 앞바다에 떠있는 웅도(熊島)는 하루에 두 번만 들어갈 수 있는 섬이다. 뭍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인 콘크리트 다리는 밀물 때 잠겨 있다가 썰물이 되면 온몸에 소금기를 드리우고 드러난다. 이 섬에 사는 주민들의 일상은 갯벌을 끼고 있는 서해의 여느 섬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허나 웅도는 갯벌 위로 20여 대의 소달구지 행렬이 이어지는 장면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 섬이다.

갯벌서 캐낸 바지락 운송수단
웅도 입구. 얼마나 기다렸을까. 드디어 콘크리트 다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다리를 건너 자그마한 언덕을 넘자 바다로 나가는 소달구지가 몇 대 보인다. 길엔 소똥이 여기저기 떨어져있다. 소들의 걸음은 바쁠 것 없다는 듯 느릿느릿하다.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언덕을 몇 개 넘어 주민들이 ‘동동바위’라 부르는 곳에 이르니 갯벌이 반긴다. 눈 닿는 곳까지 모두 갯벌이다. 바닷물은 어디에도 없다.

소들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갯벌로 들어선다. 질척질척한 갯벌에서 걷기가 꽤 힘이 들 텐 데 잘도 전진한다. 바지락을 캐는 작업장은 갯벌 입구에서 2~3km쯤 떨어져 있다. 예전에 소가 없을 때는 주민들은 작업장까지 직접 발품을 팔아야만 했다. 아낙네들이 갯벌에서 바지락을 잡아 삼태기에 담으면 남정네들은 지게에 옮겨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갯일도 고됐지만 푹푹 빠지는 갯벌을 걷는 일은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웅도 주민들이 갯일에 지금처럼 소달구지를 처음 이용한 건 40여년 전인 1960년대 초반. 지금은 일흔을 훌쩍 넘겼지만 당시엔 팔팔한 30대 중반이었던 김희곤 노인이 소달구지를 몰고 처음으로 갯벌로 들어갔다고 한다. 당시 갯벌 밖으로 져낸 바지락을 실어오려 달구지를 끌고 갔다가 마을 노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갯벌 안까지 몰고 들어 갔던 것이다.

잘못하면 전 재산인 소까지 잃을 수 있는 무모한 모험이었데, 다행스럽게도 소는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같은 갯벌이라 해도 물이 흐르는 갯강은 섬에서 흘러 나간 모래가 적당히 섞여있다는 사실을 사람보다 소가 먼저 알고 있었던 덕택이었다. 김노인은 그 해에만 열 대 가까운 달구지를 만들었다고 기억한다.

한창 산업화 바람이 불 때 경운기와 트랙터가 보급되면서 소달구지 대신 기계를 이용하기도 했지만, 뻘 씻어내는 일도 보통이 아니고 소금물에 기계가 쉽게 부식하는 바람에 수명도 아주 짧았다. 무엇보다 기계의 기름 때문에 갯벌이 오염된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기계의 편리함을 물리치고 소달구지를 계속 끌었다.

어느덧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한 가구당 정해진 하루 수확량은 80kg. 오랜 경험으로 눈어림으로 수확량이 되었다 싶으면 저마다 바지락을 소달구지에 싣고 갯벌을 되돌아 나온다. 소달구지가 ‘동동바위’ 앞에 도착하면 중간업자가 와서 바지락 계량 작업을 한다. 가격은 계절따라 들쭉날쭉하지만, 대체로 1kg에 2,000원 정도니 80kg을 캐면 16만원인 셈이다.


물때를 잘 맞춰야 갈 수 있는 섬
웅도는 해안선의 길이가 5km도 안 될 정도로 작고, 면적도 고작 1.58㎢밖에 안 된다. 장골, 큰골, 동편말 등의 섬마을에 사는 주민은 모두 54가구에 190여명. 예전엔 일년 내내 외지인 그림자 보기도 힘들던 작은 섬이었다. 그러다 몇 년 전 매스컴을 통해 ‘소달구지 타고 바지락을 캐러 나가는 섬마을’로 소문이 난 뒤부터 관광객들이 수시로 찾아 든다.

그런데 관광객들이 함부로 갯벌로 들어가는 바람에 굴과 바지락 등이 자라는 어장이 많이 손상되었다. 또 카메라를 든 사람들은 갯일을 하느라 비닐 옷과 장화에 뻘이 잔뜩 묻어 있는 주민들을 양해도 없이 찍어대기도 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아무리 순박한 주민들이라 해도 “동물원의 원숭이가 따로 없다”며 불편해 할 수 밖에 없다. 세월의 바쁜 흐름에서 한 발짝 비껴있는 이 섬을 찾아갈 때엔 좀 더 조심을 해야겠다.

한편, 웅도에 들어가려면 물때를 잘 맞춰야 한다. 6시간 단위로 밀물과 썰물이 바뀌고 물때는 매일 30~40분씩 늦어진다. 대산읍사무소(041-681-8004)에 문의하면 들어갈 수 있는 물때를 알려준다.

* 별미 : 웅도식당
웅도가 고향인 김종희씨 부부가 대산 읍내에 차린 웅도식당(041-663-8497)은 웅도에서 잡아 올린 해산물로 요리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이다. 신선한 낙지와 주인 내외가 직접 재배한 박을 넣어 맑게 끓여낸 박속낙지(3~4인분 3만원)와 굴된장찌개(1인분 5,000원) 등을 잘한다. 또 서산 일대 고유음식인 ‘겟국찌’도 맛볼 수 있다. 가을에 담근 꽃게장 국물에 김치와 황석어젓, 새우 등의 재료를 넣어 끓여 내는 겟국찌는 시원하게 입에 착 달라 붙는 뒷맛이 일품이다. 다른 음식을 시키면 겟국찌가 밑반찬으로 나온다. 겟국찌를 따로 판매(1kg에 4,000원)하기도 한다.

* 숙식
웅도 안엔 가게는 물론 숙박할 곳이 없다. 대산읍내에 그린파크(041-663-8521) 한남파크장(041-664-6356) 대산장(041-663-9336) 등의 숙박 시설과 식당이 여럿 있다.

* 교통
서해안 고속 도로를 이용한다. 서산IC→32번 국도→서산→77번 국도→지곡면→대산면사무소→500m→웅도분교장 표지판(좌회전)→5km→웅도.

글ㆍ사진 민병준 여행 작가


입력시간 : 2004-12-08 18:12


글ㆍ사진 민병준 여행 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