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고 노란 바닷가의 무궁화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황근
곱고 노란 바닷가의 무궁화

오갈피나무처럼 누구나 잘 알 것 같지만 막상 나무를 보면 잘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언제 어디서 흔히 보아 눈에 익지만 이름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무도 있다. 하긴 ‘우리 풀 우리 나무’가 바로 그런 식물들을 한번 쯤 제대로 알아보자고 시작한 칼럼이기는 하다.

황근은 많은 이들이 잘 알지도, 흔히 본 적도 없는 그런 나무이다. 하지만 한 번 이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보면 이 정도는 알아야 하는데 왜 아직까지 몰랐을까? 왜 많은 이들이 관심을 두지 않았을까 싶은 그런 나무이다.

우선 황근이 눈에 익지 않은 이유는 분포지가 워낙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의 토끼섬(언젠가 소개해 드린 문주란의 자생지이다)으로 가는 길목, 바닷가 돌밭 같기도, 공터 같기도 한 그런 곳에서 자란다. 그 이외에 제주도 몇 곳, 보길도, 대통령들의 남쪽 별장이라고 알려진 진해 근처 한 섬 바닷가 등이 자생지로 알려져 있다.

더욱이 제주도 한 바닷가에서는 예전에 있었는데 없어졌다 하여 복원 사업까지 할 정도이니 누구나 볼 수 있는 그런 나무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우리가 이 나무를 모르는 핑계가 되기는 어렵다. 금강초롱도 희귀식물이고, 더욱이 아주 높은 산에 올라가야 볼 수 있지만 황근은 바닷가에 해변 도로를 지나다 차를 세우고 10m만 내려가도 쉽게 볼 수 있으니, 결국 마음이 부족했던 탓이다.

게다가 황근에는 아주 아름다운 꽃이 핀다. 적절한 높이로 자라는 작은 키 나무인데, 한 여름이 찾아 와 꽃이 피게 되면 이 나무 전체에 아이들 주먹만한 노란 꽃들이 여기저기 달려 보기에 아주 좋다. 남쪽에 자라는 나무인데도 상록성이 아니라 낙엽이 지는 나무이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물드는 진한 노란빛 단풍빛도 아주 곱다.

이 정도면 희귀 식물이라고 하여 사라질 것을 염려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증식하여 남쪽 지방 정원에 심어 두면 좋으련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간 우리가 이 나무에 대해 소홀히 한 것이 틀림없다. 다만 겨울에는 밖에서 월동이 어렵다는 결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나무가 어디 한 둘이랴.

우리가 황근에 주목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우리의 나라꽃 무궁화와 같은 집안의 형제같은 식물이라는 사실이다. 무궁화를 목근화라고 부르니 황근이란 이름도 노란꽃이 피는 무궁화란 뜻이 된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여러 가지 좋은 의미를 많이 가진 우리의 무궁화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구구한 설에 따른 일부 기록을 제외하고 실제 이 땅에 현재, 자생지가 없다는 사실인데, 바로 형제나무인 황근은 이 땅에 분명 자라고 있다.

더욱이 무궁화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다양한 색깔과 모양의 꽃들이 심지어는 한 송이 꽃의 수명을 며칠로 연장할 수 있는 품종들이 육성되어 있지만 아직까지 노란색 계통의 품종, 그리고 향기가 나는 품종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고 하니, 같은 집안의 노란꽃을 피우는 황근이야말로 나라꽃 무궁화를 위해서도 정말 눈여겨 보아야 할 나무인 것이다.

이렇게 무궁화와 연계하여 설명하면 황근이 섭섭할 수 도 있겠다. 황근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 의미있는 식물인데 말이다. 얼마전 제주도의 한 마을에서 새로이 발견된 황근은 높이가 5m에 달하고 밑둥의 둘레가 1m가 넘는 큰 나무라고 한다.

한 번 상상해 보자, 바닷가 한 마을에, 가지가 빼곡하게 만들어진 집채만큼 큼직하고 둥근 수형을 만든 나무 가득 피어 있는 연노랑 꽃송이들을. 이 황근을 진짜 황금빛의 무궁화로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오늘 우리가 이 나무를 한 번 읽고 마음에 담아 두는 일부터 시작이 아닐까.

연말이다. 여러 가지 어려운 시기라고 하지만, 서로 나누는 마음 만큼은 황근의 밝은 꽃만큼 환하게 피어났으면 싶다.

입력시간 : 2004-12-17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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