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간의 갈등과 화해, 행복찾기훈훈한 감동의 가족이야기, 2001년 초연 이후 매해 12월 재공연

[문화 비평] 연극<크리스마스 웨딩-신부의 아버지>
부녀간의 갈등과 화해, 행복찾기
훈훈한 감동의 가족이야기, 2001년 초연 이후 매해 12월 재공연


신년을 맞이하여 주간한국 애독자 여러분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한다. 앞으로도 좋은 공연 많이 만나시도록 충실한 길라잡이 역할을 하고자 한다. 새해 첫 공연장 나들이로는 소박하고 감동적인 가족 연극 한 편이 어떨까 한다. 혜화동 로터리에 위치한 예술극장 ‘나무와 물’은 12월 12일로 개관한지 만 일년이 된 170석 규모의 아담한 소극장이다. 그간 이곳에서 공연된 ‘기차’, ‘양덕원 이야기’, ‘행복한 가족’, <거기> 등의 면모를 살펴보면 이 극장의 차분한 기조를 짐작할 수 있다. 극장 이름이 환기시키는 자연과 생명, 휴식과 편안함이 그러하듯 관객이 믿고 찾는 대학로 공연장의 하나가 되기 바란다.

이 곳에서 공연중인 ‘크리스마스 웨딩-신부의 아버지’는 2001년 초연 이후 해마다 12월이면 재공연되고 있으며, 필자가 찾은 날도 공연장이 관객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 공연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이해하기에 쉽고 공감이 가는 가족, 연인, 친구간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하여 가족이나 연인, 친구들과 함께 관람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하고, 처음 공연장을 찾는 이들을 위해서도 추천할 만하다.

극의 줄거리를 일일이 알려 드릴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단지 부녀간의 갈등이 있고 그 갈등이 결국 화해에 이른다는 것과, 크리스마스 즈음하여 딸이 행복한 결혼에 이른다는 것 정도를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등장 인물이자 해설자인 아버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웃음과 눈물을 함께 담고 있는 이야기에 충분히 매료될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극에 해설자가 있으면 연극의 환상을 의도적으로 깨뜨리는 브레히트의 ‘거리두기’를 연상하게 되지만 이 공연에서는 연극적인 재미를 더하면서 오히려 더욱 극에 몰입하게 된다. 무대에는 세 개의 서로 다른 공간이 나란히 일종의 동시무대처럼 설치되어 있어서 별다른 무대 전환도 필요하지 않다.

살아있는 캐릭터들
극에 등장하는 아버지(남우성 분)와 딸 서연(김미애 분), 사윗감인 우진(김태린 분), 아버지 친구 학수(손경원 분), 그리고 딸의 구혼자들(일인 다역, 홍성기 분)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마치 그 역할이 이들을 위해 씌어진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적역이다. 그만큼 자신의 역할과 이미지를 제대로 구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만큼이나 극중 등장 인물들의 캐릭터도 살아있다.

젊은 시절 시인을 꿈꾼 글쟁이 아버지는 다정다감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무능한 전직 출판업자이다. 그의 아내는 그런 남편 뒷바라지를 하다 숨을 거둔지 오래되었고 그는 혼자서 딸을 키우며 살아왔다. 딸은 어머니의 고생과 죽음을 아버지 탓으로 돌리고 아버지에 대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다. 아버지는 이렇다 할 변명도 하지 않은 채, 그런 딸에 대해 변함 없는 애정을 가지고 딸만을 위해 일상을 살아 간다. 극의 중심에 이렇듯 한없이 헌신적인 아버지 상이 놓여 있다.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에 대한 호감은 극 자체에 대한 호감으로, 그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진다. 시를 쓴다는 핑계로 어머니를 고생시킨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언제나 냉랭하고 차가운 딸은 극에서 갈등의 원인이자 응어리를 제공하는 인물로서 관객은 그녀의 심경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그녀가 아버지와 화해하기를 바라게 된다. 이 두 사람의 갈등 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역할을 맡은 이들은 바로 아버지의 친구 학수와 사위 우진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번번이 이웃 동네로 따라서 이사를 할 정도로 친한 배꼽친구, 마치 순정 만화에서 곧장 튀어나온 듯한 핸섬하고 매너 좋고 선하고 사려 깊은, 모든 미덕을 갖춘 사위 감, 몇 가지 전혀 다른 스타일을 가진 구혼자의 역할을 혼자서 변신을 거듭하며 능청스럽게 소화하는 일인다역의 배우 등 꼭 필요한 인물들만으로 극은 구성되어 있다.

화해와 웃음, 그리고 눈물
차갑고 반항적이던 딸이 아버지와 화해하게 되는 계기는 아버지의 친구나 세심한 사위의 설득 때문이라기보다는 결국 극중 주인공인 아버지가 앓는 지병과 시한부 삶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부모가 유한한 삶을 살지 않는가? 그녀의 때늦은 후회는 그녀의 결혼식을 무사히 치르게 하려던 아버지의 배려 때문에 더더욱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극의 결말이 이렇다 하더라도 극은 결코 무겁지 않으며 극을 보는 동안 관객은 시종 유머와 웃음으로 인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우선 관객의 웃음을 불러 일으키는 등장 인물들의 유쾌한 성격, 그리고 흔히 희극에서 다루어지듯 극중 인물보다 관객이 정보의 면에서 우위에 있기 때문에 생기는 웃음 등에서 그 즐거움은 기인한다. 아버지는 자신의 지병을 친구의 것이라고 둘러 대고 그것을 믿은 사위는 아버지의 친구를 충심으로 위로하면서 뜻하지 않은 웃음거리가 생겨난다. 어리둥절한 학수와 진지한 사위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관객은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웃음 짓게 된다.

‘크리스마스 웨딩-신부의 아버지’는 부녀간의 이야기이자 친구간의 훈훈한 우정 이야기, 그리고 젊은이들의 따뜻한 사랑 이야기이다. 극이 해 주는 이야기 하나 하나를 전해 들으며 관객은 자신의 여러 가지 모습들을 비추어볼 수 있다. 혹시 우리 자신은 일에 빠져서 가족을 게을리 하고나 있지 않은지, 처음 사랑을 키워 나가던 때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평생을 함께 하다가 무덤까지 따라 올 그런 ‘징글징글’한 친구는 있는지 등 말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인생의 만년에 징글벨을 울리려면 이런 벗이 필요하지 않을까? 따스함이 그리운 계절, 이 한편의 연극으로 마음을 훈훈하게 데우시면 어떨까.

2005년에는 굵직한 공연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2월 말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프랑스 오리지널 팀이 내한 공연하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4월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그리스 연출가 마르마리노스와 한국 배우들이 공연할 희랍 비극 ‘아가멤논’, 6월 엘지아트센터 5주년을 기념하여 무용극의 거장 독일의 피나 바우쉬가 서울을 주제로 한 작품을 준비 중이다. 2004년 성공을 거둔 ‘연극열전’을 모델로 하여 우리 여배우 6인의 릴레이 공연도 기획되었다. 공연예술에 대한 독자의 많은 관심과 즐거운 만남을 기대해본다.

2004년 12월 10일~2005년 2월 20일 예술극장 나무와 물 제작 PAMA 프로덕션 작 · 연출 김태린 출연 남우성, 손경원, 김미애, 김태린, 홍성기 공연문의 예술극장 나무와 물

송민숙 연극평론가


입력시간 : 2004-12-22 15:26


송민숙 연극평론가 ryu1501@korne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