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몰입이 아닌 연기를 해야"쉰 넘어서야 연기에 자신감, "연기는 그야말로 연기다"2인극 의 재단사 박동만으로 관객 웃기고 울려

[서화숙의 문화속으로] 연극배우 오영수
"배우는 몰입이 아닌 연기를 해야"
쉰 넘어서야 연기에 자신감, "연기는 그야말로 연기다"
2인극 <늙은 부부 이야기>의 재단사 박동만으로 관객 웃기고 울려


객석에서는 젊은 청년들의 울음 섞인 콧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앞쪽에 앉은 중년여성은 눈가로 손이 자주 가는 게 눈물을 흘리는 모양이었다. 불과 10분전까지만 해도 박장대소를 하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보고 있는 연극은 2인극 ‘늙은 부부 이야기’. 늘그막에 만나 짧은 사랑을 나누고 이별한 노부부의 마음 찡한 사연을 따라 객석이 출렁거렸다. 극본? 좋다. 연출? 무난하다. 무대장치? 무대디자이너, 아직 젊던데 1960년대 신개발지에 우후죽순으로 들어선 서민주택을 어쩜 그리 용하게도 잘 옮겨놓았는지.

하지만 수훈감은 배우다. 국립극단 단원이기도 한 오영수(60)씨가 연기하는 재단사 박동만이 객석을 쥐락펴락하는 주인공이다. ‘늙은 부부 이야기’는 동두천에서 양복점을 하다 물난리에 망하고 아들과 살다가 의가 틀어진 박동만이 30년 전에 남편을 잃고 음식점을 하면서 딸 셋을 키워 여읜 뒤 혼자 살고 있는 이점순네 방 한 칸에 세들어 살면서 시작된다.

방을 구하러 나타타 처음부터 이점순에게 수작을 붙이는 품새가 만만치 않다. 마른 그의 몸은 베이지색 양복속에서 느물느물하면서도 속 정 깊은 박동만 역에 착착 달라 붙는다. 그는 몸이 마른 것이 아니라, “매일 아침 평행봉을 80번이나 해서 몸이 좋은 것”이라고 말한다.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서 사는 그는 아침마다 집에서 10분 거리인 연화공원에 나가서 운동도 하고 대사도 외운다.

25살에 연극 입문, 굵직한 역 두루 연기
극단 광장에 있던 친구 덕에 연극을 보러 다니던 그는 군에서 제대한 스물 다섯 살에 “연극이 그냥 해 보고 싶어서” 다니던 대학(동국대 법학과)도 중퇴하고 극단으로 들어갔다. 1968년에 극단 광장의 ‘동거인’으로 데뷔했고 70년에 극단 자유로 옮겼다. 극단 자유를 그는 “유연성이 부족하고 배우될 자질이 부족한 나를 부드럽게 만들어준 곳”이라고 기억한다. 극단 자유에서 그는 ‘백양섬의 욕망’의 앙젤로 역으로 동아연극상(79년)을 받았다. 87년에는 국립극단에 들어갔다. 국립극단에서 연기한 ‘피고지고 피고지고’의 국전 역으로는 백상예술대상 연기상(94년)을 받았다.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은 모두 150여편. 36년 동안이니 1년에 4편 이상 출연했다.

72년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에서는 스탠리를, 75년 ‘파우스트’에서는 파우스트를, 76년 ‘휘가로의 결혼’에서는 휘가로를 맡았으니 70년대에 멋지고 세련된 남자 주인공은 그의 몫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파우스트 역할을 생각하면 괴롭다”고 했다. 뭐가 뭔지도 모르고 해서 돌이키고 싶지도 않다고. 다시 ‘파우스트’를 한다면 메피스토펠레스를 하겠다고 했다. 그 때 고민이 오죽했던지 당시 그는 무대에서 30초간 깜빡 정신을 잃기도 했다고 한다.

“스탠리나 리처드3세 같은 것도 주인공을 맡았다 뿐이지, 다 못했다”고 말하는 이 배우는 얼마나 욕심이 많은가! 그는 “쉰이 지나서야 자신감이 생기고 연기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세일즈맨의 죽음’의 윌리 로먼과 ‘리어왕’의 리어를 꼭 다시 하고 싶다고 했다. 이제는 잘 할 수 있단다. ‘늙은 부부 이야기’에서 박동만이 이점순에게 수작을 붙일 때나 둘이 사랑을 나눌 때는 포복절도시킬 정도로 망가져야 하고, 이점순이 병들어 죽어가는 장면에서는 울음을 속으로 삼켜야 하는 쉽지 않은 배역. 오 씨는 문에 기대는 ‘섹시한’ 포즈’나 반박자를 정확히 맞추는 대사 조절로 관객 속으로 파고 든다. 특히 그가 아내를 떠나 보내고 혼자 독백하는 장면은 눈물을 왈칵 쏟게 한다.

배로 호읍하는 발성법 제대로 익혀
그가 생각하는 연기는 그야말로 연기이다. “요즘 소극장 무대가 많아지면서 소극장 연극은 일상 생활과 똑 같이 말하고 행동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게 아닙니다. 무대 언어는 일상 언어와 달라요. 호흡이 들어가야 하는데 그걸 몰라요.” 그는 배로 호흡을 하는 연극 발성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는 배우들 때문에 큰 극장은 물론 소극장에서도 대사가 전달이 잘 안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역할도 그 인물이 되도록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물, 그 상황을 연기한다는 것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자는 것이다. 스타니슬라브스키가 말했듯이 “배우가 자는 모습을 연기해야지 잠을 자서는 안 되는 것”처럼.

흔히들 연극하면 배 곯는 직업이라고 하지만 그는 무대에서 환갑을 맞기까지 그렇게 어려웠던 적은 없다. 70년대 잠깐 성우를 한 적은 있지만 연극만으로 살아 왔고, 아내가 은행원이어서 궁핍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만 내가 과연 배우를 잘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으로 잠시 방황한 적이 있을 뿐 연극에 몰두했고 아주 만족스럽게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그는 “극단 자유의 이병복 선생님과 김정옥 선생님이 늘 ‘사람이라면 좀 더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인생의 지침이 되었다”고 말했다.

시간이 나면 인터넷으로 바둑을 두는 게 유일한 취미인 그는 연극을 마치면 집에 돌아가 혼자서 소주 반 병쯤을 마시면서 연기를 복기한다. 특히 첫날 첫 공연은 앞으로의 장기 공연에서 그가 표본을 세우기 위해 객석 반응을 가장 민감하게 살피는 자리라며 단체 관람객을 거절하게 만든 까다로운 배우이기도 하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영화 ‘동승’과 ‘봄 여름 가을 겨울’에서 스님 역을 맡아 머리형이 아예 짧은 머리로 바뀌었다. 고 이근삼씨는 오씨를 모델로 ‘오 코치의 화려한 외출’이라는 희곡을 쓰기도 했다.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

‘늙은 부부 이야기’는 연출자인 위성신이 가닥을 잡아 오영민과 공동집필한 작품으로 2003년 서울공연예술제에 처음 선을 보였다. 웃음에서 눈물로 자연스레 넘어가는 희곡의 감동 때문인지 2년 사이에 6개월간이나 장기 공연됐다.

여자를 보면 수작을 붙이는 동두천 출신의 양복 재단사와 신림동에서 국밥집을 하면서 딸 셋을 키운 욕쟁이 할머니가 만나 티격태격하면서 사랑을 만들고, 살만하니까 할머니가 죽어서 할아버지 혼자 남는다는 줄거리. 일상성에 바탕한 대사가 감칠맛 난다. “동시패션 있고 쪽은 없는 거로 합시다. 자뻑은 피 두 장, 밤일낮장 먼저 뜨쇼. 그나저나 이렇게 조용한 봄날 저녁에 우리 이점순여사하고 박동만이하고 오붓하게 마주 앉아갔고 고스톱 치고 있응게 꼭 신접살림 차린 것 같네.”

30대가 맡던 노역을 14일부터 오영수씨와 이혜경(48)씨로 올렸다. 기획사인 축제를 만드는 사람들은 14일부터 오영수씨에게 주역을 맡긴 것을 시작으로, 신구 박인환씨 등 명배우들로 옮겨 가며 이 연극을 상설 공연할 계획도 갖고 있다. 오영수씨가 나오는 연극은 2005년 1월 23일까지 서울 종로구 명륜동 축제소극장에서 계속된다. (02)765-4891

서화숙 한국일보 대기자


입력시간 : 2004-12-22 15:42


서화숙 한국일보 대기자 hssu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