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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페미니즘] 박완서의 <나목>
암울한 겨울을 걸으며 봄을 소망하기
존재론적 고독을 끌어안고, '봄에의 의지'로 의연한 나목






신년이라면 누구나 새로운 소망들을 하나씩은 갖게 마련이다. 아무리 제각각 어렵고 힘들다는 말들만 무성하더라도, 신년에는 ‘이번 해에는, 올해만은’ 이라고 꼽아 보면서 무언가를 소망하곤 한다. 그래서 신년은 늘 겨울인데도, 마치 봄인 듯 느껴진다. 그리하여 ‘겨울에 봄을 소망하기’란 겨울 동안 헐벗은 나목들 뿐 아니라, 차가운 신년을 맞은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할 터이다. 박완서의 소설 <나목>으로 신년을 열어 본다.

한국 문단에서 박완서처럼 오랜 세월 동안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해 온 이도 흔치 않다. 1970년 <나목>으로 <여성동아>의 장편 소설 모집에 당선되었을 당시, 그의 나이는 불혹이라는 40이었다.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는 35년 간 쉬지 않고, “역시 박완서야”라는 탄복을 자아내게 만드는 작품들, 혹자에 의해 ‘천의무봉(天衣無縫)’이라고도 칭해진 소설들을 써내고 있다.

그의 소설들에는 한국 여성들의 삶이 그녀들의 일상에 오롯이 녹아있다. 우리들의 어머니, 할머니, 또는 우리 자신들의 삶. 그가 펼쳐 보이는 여성들의 삶은 생생한 생활에 녹아난 한국 여성들의 역사이기도 해서, 페미니즘 이론을 굳이 들이댈 필요조차 없어 보인다. 그런 그에게 등단작인 <나목>은 오랜 작품 활동의 시발점으로서, 이후 많은 작품들의 발아 지점을 보여준다.

회색빛 삶 속에서 오히려 강력한 생의 갈망
한국전쟁을 겪은 많은 서울내기들처럼, 화자인 이경도 전쟁을 혹독하게 겪었다. 그녀의 단란한 가정은 전쟁 직전 아버지의 죽음에 이어, 전쟁 중 폭격으로 행랑채 벽장에 숨어 있던 오빠 둘 까지 저 세상으로 보내며 처참하게 파괴된다. 오빠들의 참혹한 죽음 이후 겨우 목숨만 부지한 그녀와 어머니. 그러나 어머니가 정신이 들어 처음 한 말은 “어쩌다 계집애만 살아 남았노”라는 탄식이었다. 이후 어머니는 ‘살려는 의지가 없는’, ‘죽음보다 더 지독하게 죽은’ 삶을 영위하며, 나에게 “어떤 형태의 증오보다도 가혹”한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나는 어머니가 싫고 미웠다. 우선 어머니를 이루고 있는 그 부연 회색이 미웠다. (…) 그러나 무엇보다도 견딜 수 없는 것은 그 회색빛 고집이었다. 마지 못 해 죽지 못 해 살고 있노라는 생활 태도에서 추호도 물러서려 들지 않는 그 무섭도록 딴딴한 고집. 나의 내부에서 꿈틀대는, 사는 것을 재미나 하고픈, 다채로운 욕망들은 이 완강한 고집 앞에 지쳐가고 있었다."

그런 ‘회색빛’ 어머니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기에, 나는 너무 젊고 건강했다. 나 역시, “오빠들을 통해서만 모든 사물을 받아 들였고 이해하려 들었었”고, “특별히 나라는 개체가 필요 없는 가족이란 ‘우리’를 통해서 사고”하면서 살아왔기에, 그 상실감이 치유할 수 없이 크지만, 나는 죽지 않았기에 살아야 한다. 늘 넋을 놓고 있는 어머니와 함께 폭격(오빠들의 목숨을 앗아간)으로 무너진 고가를 지키며, ‘나’라는 주체로 살아 내어야 했던 것이다.

또한 나는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싱싱한 젊음이 있기에, 삶에의 “다채로운 욕망들”이 마음 속 깊이에서 끓어 오른다. 그것은 “내 속에 감추어진 삶의 기쁨에의 끈질긴 집념”으로, “아직도 지치지 않고 깊이 도사려 있으면서 내가 죽지 못해 사는 시늉을 해야 하는 형벌 속에 있다는 것에 아랑곳 없이 가끔 나와는 별개의 개체처럼 생동을 시도”한다.

모순적인 삶 속에서 찾아낸 위안, 사랑이라는 환상
‘죽고 싶다’와 ‘살고 싶다’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모순. “두 상반된 바람이 똑 같이 치열해서 어느 쪽으로도 나를 처리할 수 없”는 나는 “새롭고 환한 생활에의 동경과 지금 이대로에서 조금도 비켜설 수 없으리라는 숙명 사이에서 아프게 찢기고”, “전쟁은 누구에게나 재난을 골고루 나누어 주고야 끝나리라”는 “거의 광적이고 앙칼진 열망”과 “또 문득 덮쳐오는 전쟁에 대한 유별난 공포” 사이에서 “찢기고 시달려, 균형을 잃고 피곤했다.” 그러나 나는 ‘새로움’과 ‘생기’ ‘삶에 대한 갈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러던 내가 겨우 찾아낸 위안은 화가 옥희도와의 만남이었다.

미?PX에서 초상화부 사환으로 일하던 나는, 그 곳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어리석지 않은 선량함”을 지닌 옥희도를 만난다(한국 현대 미술이 막 피어나던 시기에 가장 한국적인 그림을 그려낸, 한국 현대 미술의 대표적 화가 박수근이 옥희도의 실제 모델이다).

그림이 없이는 살 수 없는 화가 옥희도, 그러나 생계를 위해 미국인의 초상화를 그릴 수밖에 없었던 그에게는 늘 “아주 황량한 풍경의 일각 같은 것”, “너무 짙은 상심”이 어려있다. 그리고 “그의 피곤과 상심은 남의 어설픈 헤아림이나 보살핌이 들어설 여지가 없는 어쩔 수 없는, 그만의 것”으로 보인다.

이미 ‘삶이 아닌 죽음’을 살아내고 있는 어머니와 함께 고가를 지키는 나는, 그 옥희도의 눈빛에서 공감할 무엇, ‘황량함’과 ‘고독’, ‘존재에의 갈망’을 읽어낸다. 그리하여 그들은 “아무리 허우적대도 벗어날 길 없는 첩첩한 회색”의 삶 속에서 서로에게 “환상과도 같은, 회상과도 같은 황홀한 빛들”을 발견한다. 태엽을 감으면 반복적으로 술을 마셔대는 행동을 하는 침팬지 인형을 매개로, 나와 옥희도의 고독과 진부한 일상을 공감하고 인형의 행동을 지켜보며 각자 자신들의 삶을 확인하며, 서로의 고독을 이해하면서 회색빛 삶을 견딘다.

둘은 각자 지닌 고독감을 이해하기에 사랑하고, 그것을 공유하려 해보기도 하지만, 결국은 홀로일 수밖에 없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그가 자기만의 고독을 아무에게도 나누려 들지 않듯이 나도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나만의 일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어쩌면 상대에 비춰진 각자의 존재를 확인하고픈 욕망으로 그들은 만나고 희뿌연 회색빛 서울에서 사랑을 키워간다. 사랑이라는 단어보다는 “아무도 안 써 본 슬프고 진한 어휘가 그와 나 사이엔 필요하다"고 말할 만큼 둘은 깊이 사랑하지만, 그 사랑으로 각자의 고독을 메울 수는 없다. 사랑 역시 또 다른 결핍, 고독의 생성 지점이며, 무엇보다 그들에겐 그들의 사랑을 현실화 할 아무런 방편도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고독의 생성을 지켜볼 수밖에.

<나목>에서 내가 연모한 화가 옥희도는, 가장 한국적인 그림을 그려내었지만 힘겹게 살고있던 때에는 제대로 주목조차 받지 못했던 화가 박수근이 그 모델이었다.

그리고 위의 박수근이 그려낸 <나무와 두 여인:1962년 작>. 실제 스무 살의 내가 지난 날 본, "꽃도 잎도 열매도 없는 참담한 모습의 고목" "빛과 빛깔의 빈곤, 그러니까 삶의 기쁨에의 기갈"이 담긴, 죽은 나무 고목(枯木)이라 여겼던 그림 속의 나무는 10년을 훌쩍 넘긴 나에게, 겨울을 의연하게 견디는 벌거벗은 나무 나목(裸木)으로 보인다. 다음과 같이 말이다.

"김장철 소스리 바람에 떠는 나목, 이제 막 마지막 낙엽을 끝낸 김장철 나목이기에 봄은 아직 멀건만 그의 수심엔 봄에의 향기가 애닯도록 절실하다. 그러나 보채지 않고 늠름하게, 여러 가지들이 빈틈없이 완전한 조화를 이룬 채 서 있는 나목, (…) 여인들의 눈앞엔 겨울이 있고,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 봄에의 믿음. 나목을 저리도 의연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이리라."

환상을 떠나 현실을 살아낸 내게 찾아 온 나목
내가 사랑한 옥희도에게는 희고 긴 목을 지닌, 궁핍하지만 단정하고 우아한 아내가 있고, 다섯 아이들이 있다. 그 아내에 대한 질투와 선망이 나를 앓게 만들기도 하지만, 나는 그 아내의 품에서 이미 영혼이 병든 어머니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던 포근함을 찾기도 한다.

그러다 폐렴으로 어머니가 죽고, 장례를 치른 뒤, 나와 옥희도의 사랑은 서로에게서 서로의 환상을 본 것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고 끝이 난다. “경아는 나를 사랑한 게 아냐. 나를 통해 아버지와 오빠를 환상하고 있었던 것 뿐이야. 이제 그 환상으로부터 자유로워져봐, 응? 용감히 혼자가 되는 거야”라고 말하며, 나를 떠나는 옥희도는 “사막에서 목마른 자가 신기루나 환각으로 오아시스를 보는” 심정으로, “예술가로서”“미칠 듯이 암담한 몇 년을, 그 회색빛 절망을, 그 숱한 굴욕을” 견디기 위해, “곧 질식할 것 같”은 자신을 부여잡고, “경아라는 풍성한 색채의 신기루에 황홀하게 정신을 팔았”다고 고백한다. 그의 나에 대한 사랑은 ‘신기루에 바친 소년 같은 동경’이었던 것이다.

현실로 돌아와 자신이 가졌던 공포와 고독감에도 객관적인 자리를 마련해주게 된 나는, “다시는 꿈을 꾸기도, 남의 꿈이 되기도 싫어요, 다시는”이라고 말하며, 나를 짝사랑했던 현실적인 남자, 내게 매번 “갈망의 눈”을 보이던 태수의 아내가 된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나는 옥희도의 유작전을 찾는다. 그리고 그 곳에서 “내가 지난 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발 속의 고목”을 본다.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이었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나는 또한 내가 그 나목 곁을 잠깐 스쳐간 여인이었을 뿐임을, 부질없이 피곤한 심신을 달랠 녹음을 기대하며 그 옆을 서성댄 철없는 여인이었을 뿐임을 깨닫는다.”

'고독'이란 끌어 안고 살아가야 할 우리 삶의 일부
이미 많은 평론가들이 지적했듯이, <나목>의 뛰어난 점은, 인간으로서 지닐 수밖에 없는 근원적인 외로움과 고독을, 벗어나야 하는 실체 혹은 이겨내어야 하는 과제가 아닌, 우리의 존재와 삶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나와 옥희도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나 사랑을 얻지 못하는 태수의 절망과 고독. 절망적인 가정 상황 속에서 그 “시궁창 속에서도 향기”로움을 잃지 않는 미숙, 사랑했던 남자와의 아이가 둘씩이나 되지만 양색시로 돈을 벌 수밖에 없었던 다이아나 김. 그들은 모두 인간이기에 필연적으로 고독하지만, 그 때문에 타인에 대한 열망, 사랑을 생성한다. 또한 그 사랑은 늘 겹핍을 낳기에 또 다른 고독들의 자리를 마련한다. 결코 타인과는 공유할 수 없는 지점들이 있기에, 인간은 늘 고독하지만, 그 때문에 타인을 향하고 있다는 진실들을 <나목>은 은은하게 그려낸다.

절망할 것이 아니라, 이 고독들을 안고도 다시 사랑을 찾고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고 이 겨울 <나목>은 전한다. 봄은 아직 멀었지만, 다들 이미 생이 끝나버린 고목(枯木)이 아니라 잠시 헐벗고 있는 나목(裸木)이라면, “봄에의 믿음”을 가져보자. 믿음만으로 그 기다림은 의연하고 굳건해 지리라.





권민정 자유기고가 eunsae77@naver.com


입력시간 : 2004-12-29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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